안녕하세요, 개로만족의 브런치팀입니다!
개로만족은 지난 <카카오같이가치 펀딩(click!)>에서 "여성 시니어 롤모델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펀딩에서 함께 모아주신 응원 덕분에 교사, 모델, 양말목 메이커, 청소노동자, 펫푸드셰프로서 일하고 있는 여성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만난 이야기를 이 브런치북, <범상치 않은 할머니를 만나다>에 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할머니들의 일과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범상치 않은 할머니를 만나다>의 2편으로
4년 차 시니어모델로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 80세 최순화 선생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빛나는 선생님의 모습을 담아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나는 나대로 한번 해보자
제가 굉장히 극한 상황에 있었어요. 제 생애 생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거든요. 남에게 빌려준 돈을 못 받게 되었어요. 돈을 빌려간 사람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그 사람이 말하는 본인의 상황이 사실이래도 거짓말처럼 느껴졌어요. 머리에서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매 순간 괴롭더라고요. 제가 견딜 수 있게 잠깐이라도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그게 바로 ‘실버모델’이었어요. (과거에는 실버모델이라고 불렸답니다.)
제가 병원에서 보조 간호원으로 일할 때 환자가 실버모델이 있다는 걸 알려줬어요. 어울리겠다고 한 번 해보라고. 그때 제 나이가 72세였어요. 처음에는 '내가 이 나이에 되겠나...'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도 한 번 해봐야겠더라고요. 제가 옷을 예쁘게 입는 걸 좋아하거든요. 잡지 보는 것도 좋아해서 모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모델에 도전해보려고 한국국제예술원이라는 학교에 들어갔어요. 대학교처럼 학점을 쌓으면서 공부하는 곳이었죠. 마침 그때쯤 돈을 빌려갔던 사람에게 돈을 조금 받게 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그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교수님이 지금의 The showproject라는 회사를 개업했죠. 저도 이 회사에 합류하면서 모델로서 처음 활동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나이가 제일 많아서 마음이 위축되고 쫄기도 했어요. 가보니까 다른 분들은 전부 날씬하고 삐까뻔쩍해 보였죠. 완전히 내 인생에서는 상상을 못 해본 세계였어요.
그래도 저는 한 번 시작하면 밀고 나가는 사람이니까.
'나는 나대로 한번 해보자.' 하고 밀어붙였죠.
모델 최순화의 '나 혼자 산다'
젊을 때는 보조 간호원으로 병원에서 일했어요. 병원 근무를 3년 정도 했다가 애들 키우느라 가정에 뿌리박았죠. 그때는 어린이집 같은 게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잊어버렸었어요.
그러다 60대 후반에 빚이 생겨 쩔쩔매다가 70대에 모델이 된 건 저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어요. 자식들하고 따로 살면서 저 개인의 삶이 시작되었거든요. 모델이 되지 않았다면 시골에서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데... 제가 부엌일밖에 더했겠어요?(웃음) 지금이 너무 좋아요.
시니어모델 STEP 1
제일 처음 해본 활동은 저희 학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패션쇼예요. 그 패션쇼를 하면 제가 런웨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막 느껴지더라고요. '아 내가 할 수 있구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구나.' 그러다가 어떤 디자이너 선생님께 연락이 와서 패션쇼에 메인으로 서게 되었어요. 그때는 큰 무대 경험도 없었던 터라 놀랐죠. 가슴이 정말 두근거렸고 '디자이너 선생님 쇼인데 내가 잘해야겠다...'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EP1 : 내 키는 170 발은 250
시니어모델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정말 많은데요. 쇼를 할 때 누구는 어디에 서고, 어디를 돌아서 나오라는 내용이 담긴 콘티가 있어요. 그걸 잘 기억해야 되는데 처음에는 자꾸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요. 중간에서 턴을 했어야 하는데 못 하고 그냥 들어왔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실수도 하면서 조금씩 성장했죠.
또, 제가 동대문 DDP에서 쇼를 할 때 신발이 너무 작았던 적이 있어요. 제가 250이라 발이 꽤 크거든요. 제 다섯 발가락이 간신히 들어가는 아픈 신발을 신고 걸으면서도, 저의 온 신경은 쇼를 잘 마쳐야 한다, 워킹을 잘해야 한다는 것뿐이었어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사진을 보면 다행히 꽤 잘했더라고요.(웃음)
당신의 삶을 살아라
모델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고 행복해졌다는 거예요. 그전에는 애들 키우느라 온 신경이 아이들한테 가있었어요. 물론 아이들이 잘 크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죠. 그렇지만 저 자신을 위한 삶은 너무 없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의 중심이 저예요.
지금은 저를 위해서 살고, 옷 하나를 사도 저를 위해서 사요. 예전에는 10년 입을 생각으로 유행하지 않는 옷만 샀는데, 이제는 제가 입고 싶은 옷이면 직접 디자인도 해서 입어요.
스스로를 위한 삶을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 나이에 여자 혼자 사는 건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운데요! 내 마음대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눈치 볼 게 하나도 없어요.(웃음)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살라고 권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힘들여서 키운 자식에게 매이는 것보다는 내 삶을 사는 것이 더 재밌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EP2 : 새벽 12시 야밤의 모델 워킹
지금도 워킹은 정말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제가 아는 남성 모델분은 '워킹 뭐 그거 한 두 달 하면 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남성 모델들은 11자 걸음이라 워킹 한 두 달 한다고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여성 모델들은 1자 워킹인데 라인도 드러내야 하고, 포즈도 이쁘게 해야 하고, 얼굴 표정도 신경 써야 해요. 오늘 무대에서는 어떤 워킹이 알맞겠다고 판단하는 순발력이 필요하기도 해요.
전에 병원 근무하면서 모델 일을 같이 할 때는 새벽마다 나가서 워킹 연습을 했어요.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자정이 지나고 환자분이 다 잘 때 연습한 거죠.
지금은 공원에 나가서 워킹 연습하는 게 제 일상생활이에요. '연습을 해야지'하고 생각해서 하는 건 아니고, 밖에 나갈 때마다 '이렇게 걸어보자', '저렇게 걸어보자' 하면서 생활이 되었어요.
"선생님처럼 늙고 싶어요"
패션쇼 할 때 무대에 관객이 있든 없든, 내가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많이 느껴요. 관객분들도 절 보면서 '저 나이에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나도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신대요.
젊은 분들은 "저 선생님처럼 늙고 싶어요"라는 얘기를 많이 해줘요. 이럴 때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아 뿌듯하고 저라는 존재가 자랑스러워져요.
이제는 시니어 긍정왕
원래는 긍정적인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상황 상 제가 40대에 혼자가 되어서 아이들을 어렵게 공부시키기도 했고, 60대에 빚까지 지게 되면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었어요. '내가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정말 아무도 모르게 자는 길에 갔으면 좋겠다... 아니다, 빚을 갚고 가야 자식들에게 피해가 안 가지...'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시니어모델을 하게 되면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서서히 없어지고 "최순화 너 그때 너무 잘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매번 어려워요
저도 수업을 듣고 배울 때마다 어려워요.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시는 모든 가르침을 아무리 해도 100%는 따라갈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모델은 항상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속으로 어떤 모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기준이 있어요. 남들은 너 지금 괜찮다고 해도 저 스스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있으면 계속 노력해요.
* 시니어모델이 추천하는 사진 잘 나오는 꿀팁!
포토 수업 시간에 모델들 사진 찍는 시간이 있어요. 그럴 때 포즈나 사진이 잘 나오는 각도를 가르쳐주세요. 가르쳐주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감을 잡았어요. 보편적으로 45도가 제일 잘 나오는 거 같아요.
두 번째 사회에 나가도, 시간이 해결해준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사회에 나와도 시간이 해결해주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불안해할 이유는 없어요. 나만의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시간을 두고 하다 보면, 무난하게 끝까지 가는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저보다 훨씬 오래 하신 분들을 보면서 참 멋있고 부러웠어요. 근데 모델 초보인 제가 그분들을 못 따라가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냥 천천히 내 속도로 걸어가면 되고, '난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해요.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게 제가 계속 당당할 수 있는 비결이에요.
그리고 나이가 먹을수록 바깥 생활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집에만 있으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기 어렵더라고요. 사람들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일도 하면, 건강에도 참 좋은 것 같아요. 전 80이에요. 절대 늦지 않았어요. "두 번째 인생은 내가 직접, 나를 위해 끌고 가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저랑 함께 도전해봐요.
80살 할머니는 이러고 놀아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쇼를 자주 못 해서 패션 유튜브를 많이 봐요. 외국 모델들 패션쇼도 보면서 행동, 워킹, 포즈, 표정 등을 공부해요. 공부하려고 억지로 보는 게 아니라, 저는 그 패션 유튜브 보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그래서 한번 봤다 하면 3시간도 금방 가요.(웃음) 의상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어서 제 옷을 디자인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해요.
요새 모델, 패션 이외의 관심사는 '춤'이에요. 어릴 때는 춤에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나이 들어보니까 춤이 건강에도 좋고, 활동적이니까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젊은이들 추는 춤은 따라 하고 싶어도 몸이 말을 안 들어서...(웃음) 우리 시대에 추던 댄스를 배워보고 싶어요. 지르박이나 왈츠 같은 거 요새 관심 가더라고요.
저는요, 예쁜 춤을 춰보고 싶어요.
EP 3 : 남의 말을 귀에 담지 말자.
제가 병원에서 근무할 때, TV에 시니어 모델이 나온 적 있어요. 그때 제가 돌보던 환자분이 “나이 들어가지고 저 꼬락서니가 뭐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보기엔 드레스 입고 꾸민 모습이 참 예뻤거든요. 그래서 저는 깜짝 놀라서 "어머, 나이가 먹었는데도 얼마나 이뻐요."라고 했죠. 환자분은 동의를 안 하시더라고요. 그때 '만약에 내가 모델이 되면 이런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원래 사람들의 시각은 제각각이니까요. 길을 정했으면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가세요. 절대 남의 말 때문에 '나는 그거밖에 안 되겠구나'하지 마세요.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이니까, 하고 싶은 건 눈 딱 감고 해 보세요. 그럼 정말 여러분의 삶에 큰 변화가 올 거예요.
시니어가 스스로 더욱 당당해지는 일
시니어가 자신에게 집중해볼 수 있는 직업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모델은 스스로를 많이 드러내고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이렇게 스스로 더욱 당당해지는 직업이 많아졌으면 해요.
Main interviewer & editor: 무지(PM)
Final editor: 제시(CEO)
개(犬)로(老)만족은 강아지는 간식으로, 할머니는 일자리로 만족하는 곳입니다.
노년 여성들에게 ‘시니어 펫푸드 셰프’라는 새로운 직업을 교육하며 제공하고 있습니다. 강아지에게는 맛있고 좋은 것만 건네주고 싶어 '강아지 한과' 간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9년도부터 3년 연속으로 보건복지부 노인일자리 사업단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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