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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Oct 03. 2024

아이코의 견생관(犬生觀)-9

  언젠가는 삐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삐꾸가 누군지 모르지요. 나와 한 지붕을 이고 사는 친구입니다. 한집에 있다고 해도 일년 내내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나도 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도 나를 알기를 꼭 유령처럼 알아서 내가 없는 듯이 행동합니다. 당연히 나도 그를 우습게 압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철저히 부인하기도 어렵습니다만 그것도 오랜 동안 시간이 지나니까 익숙하게 됩디다. 


  그는 앉아 있는 것만 보아도 거만스럽게 보입니다. 나야 항상 주인이 오면 몸을 바싹 땅에 낮추면서 귀를 뒤를 쫑긋 제끼고 주인님이 나를 쓰다듬어 주길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주인님이 머리를 쓰다듬고 때로는 기분이 나면 나를 포옹해 줍니다. 하지만 삐꾸, 얘는 내가 봐서는 하나도 잘난 것이 없는데도 한껏 목청을 높이면서 자기 태를 과시하듯이 몸을 꼿꼿하게 있습니다. 주인님이 가서 그를 아는 체 하면서 쓰다듬으려고 해도 마치 아가씨가 흥하고 고개를 젓듯이 손길을 피해버립니다. 주인님은 그저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 그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고 나옵니다. 걔가 뭘 믿고 그렇게 도도하게 구는지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저나 나나 얻어먹고 사는 주제에 주인님 비위를 맞추면 어디 덧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친구입니다. 뭐 친구라고 할 것까지도 없지만 말입니다. 나에게 견생관이 있듯이 그에게 묘생관이 따로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친구는 기분이 좋으면 갸르륵 하면서 모가지에 힘을 주면서 우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고 피부에 소름이 돋습니다.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 자기는 기분이 좋아서 하는 것이겠지만 듣는 이는 별로입니다. 먹는 것도 깨작깨작거리는 것이 무엇 하나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습니다.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발톱은 우리 주인님도 무서워합니다. 언젠가는 목욕을 하다가 한 번 난리가 났습니다. 목욕하는 것을 좋아하는 개나 고양이가 있겠습니까마는 나도 솔직히 말해 싫어합니다. 그치만 이왕에 하는 것 들어가면 순종하여 빨리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목욕탕에 들어가면 가관입니다. 소리는 냐옹냐옹 질러대지요, 때로는 갸르륵 거리기도 하고 목욕 안 할려고 발로 버티면서 발톱으로 목욕통을 붙잡고 있으면 겁납니다. 그 칼날 같은 발톱으로 할퀴면 완전 사단이 나는 것이지요. 어느 날 이 친구가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여주인님의 팔뚝을 사정없이 할켜버려 피부에 붉은 선이 좍 그어버렸습니다. 여주인님은 사색이 되어 나와서는 팔에다 약을 바르고는 그래도 마무리를 하려고 삐꾸를 달래서 데리고 나와 마른 수건으로 닦아 주데요. 나도 이 집에 식객으로 있지만 어떻게 보면 왜 주인님이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로 인해 분명히 얻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수고를 할 리가 없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때는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여 정말 주인님을 위해서 열심히 몸으로 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고양이 삐꾸 녀석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걔는 자기가 여기서 제일 잘낫다고 생각하는 녀석이니까요. 자기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똥오줌을 치워주고 가끔씩 목욕을 시켜주니 그런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태를 냉철히 파악해야지요. 주인님이 자발적으로 종노릇하는 것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종이긴 하지만 그 생활 공간에서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니까 도와주는 것인데도 그걸 잘 이해를 못하는 삐꾸가 지성이 모자라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걔는 걔고 나는 나니까 나는 열심히 꼬리를 치고 왕왕 소리를 짖으면서 나의 주인님에게 충성하려고 합니다. 내가 여기서 살기 위해서 아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천성이 그런 것이니까 오해는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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