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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Jul 24. 2023

1. 안녕하세요, 갑자기 어른입니다.

스무 살, 서울상경 그리고 맨땅에 헤딩

2022년 2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위해 나의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나 또한 뿌듯했다. 이제 예쁘게 꾸미고, 좋은 남자친구를 만들고, 새로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오로지 봄날뿐이겠구나. 서울로 올라와 나 혼자만의 공간인 자취방을 얻었고 집을 꾸려 나갔다. 그런데 이 공간의 설렘도 잠시, 이 방 안에서 알 수 없는 적막감에 숨이 턱 막혀왔다.


모든 환경이 한 번에 달라진 탓일까?



교복을 입고 있지 않은 거울 속의 내가 어색하고, 집에 돌아오면 날 반겨주던 부모님은 이제 없다. 시시콜콜한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던 익숙한 친구도 이젠 내 곁에 없다. 매일 아침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그 사이에서 아무도 나를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수능을 끝나고 보니 난 아무런 준비가 안 됐는데 나이 앞자리 숫자가 갑자기 2로 바뀌더니 차갑고 고독한 세상으로 홀로 떠밀려 온 것 같다. 그냥 언제나처럼 국영수사과만 공부하면 되었던 학창 시절과는 다르다. 이제는 내가 뭘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이도 없다. 오로지 모든 것이 내 몫이었다. 갈피를 잃고 말았다. 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걸까?


시험지에 맞으면 동그라미, 틀리면 엑스표 줄을 그어줄 빨간 색연필의 심지는 이제 다 닳아 없어진 걸까?














남들은 어렵게 시작한다는 첫 자취, 나는 비교적 쉽게 시작했다.



한창 짐정리가 이루어졌던 이사 첫날

서울 도심에 지하철역은 집에서 10분 거리였고, 월세/전세 비싸기로 악명 높은 서울에서 나는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가 아닌 엘리베이터 버젓이 있는 6층 원룸에서 시작했다. 4년 전 나보다 먼저 서울로 상경한 언니는 내가 살 집을 미리 알아보고 구해줬고, 집 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및 대학 등록금은 모두 부모님이 지원해 주셨다. 나는 한마디로 내 짐만 싸들고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서울집에 도착했다.


내가 가져온 짐들을 정리하고, 부산에서 우체국 택배로 붙였던 짐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대학 입학 일주일 전, 나는 엄마와 함께 서울집에 올라왔고 일주일 동안 엄마와 함께 서울 집에서 생활했다.






네 언니는 알아서 척척 할 것 같은데 넌 내가 못 믿겠어

엄마는 내게 이 한마디를 하셨다. 집안의 둘째이자 막내로 태어나 가족들의 예쁨이란 예쁨은 다 받으며 자랐다. 첫째인 언니와는 다르게 나는 눈치도 빠르고 애교도 많고 살가운 둘째가 가질 모든 사랑스러운 면을 감사하게도 다 가졌다. 그래서 늦둥이 딸을 본 아빠에게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었고, 조금은 무뚝뚝한 엄마에게 나는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딸이었다.


강하게 두 딸들을 키우는 엄마의 육아법과는 달리 아빠는 딸에게 애지중지 모든 걸 다 해주셨다.

"딸 아르바이트 하지 마. 공부만 해"

"딸 무거운 거 들지 마. 아빠가 해"

"딸 아빠가 학교 데려다줄게. 힘들게 걸어가지 마"








이 모든 것에 적응되었던 내 삶은 서울에 올라오면서 한순간에 180도 달라졌다. 모든 걸 온전히 스스로 해야 하는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한마디로 눈 떠보니 해가 바뀌어 있었고, 난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등학교에서는 끊임없이 수능에 초점을 맞춰 틀에 끼워 맞추듯 정답을 주입했고 오로지 대학에 가는 방법만 공부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법은 그 어떤 교육과정에도 없었다.









탁 트인 넓은 집에서 살던 때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에도, 누군가 반겨주는 온기가 있는 방이 그리운 날에도, 따뜻한 엄마의 집밥이 그리운 날에도, 내 편이 있는 부산이 그리운 날에도 나에게 있는 건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이 작은 방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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