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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Aug 03. 2023

2. 파렴치한 어른을 고발합니다.

서울살이 가장 억울했던 일

내가 첫 자취로 선택했던 집에는 하나 특이한 특징이 있었다. 식비가 포함되어 있어 아침과 저녁을 제공한다는 것, 내가 살던 원룸에는 1층에 '식당'이라 불리는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침에는 월, 수, 금 떡국과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빵이 화, 목은 비슷한 메뉴의 반찬으로 밥이 준비되었고 저녁은 반찬과 밥, 국이 항상 나왔다.




요리를 할 줄 모르는 것

내게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면 요리를 하나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베이킹이 취미인 것도 아니고, 뭔가를 만드는 데에는 소질도 없고 질색인 나는 요리도 딱 질색이다. 계란 프라이 하나도 간신히 구워내는 정도의 수준으로 자취를 시작했던 나는 엄마의 의견을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혼자 살면서 밥 해 먹는 게 얼마나 힘든 일 인지 몰라. 그러니 그냥 네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뭐라도 주는 집에  군말 말고 들어가서 살아."


내가 이 집을 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몇 가지 없었지만 사실 그중에 하나가 식당이었다. 나보다 4년 일찍 서울 자취를 시작한 언니는 여러 집을 거쳐 내가 살던 원룸 건물에 나보다 먼저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언니와 아래 위층 이웃이 된 셈이다. 운 좋게 언니 아래층에 내가 서울에 올라가는 시기에 맞춰 집 하나가 비게 되었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태 언니를 통해 식당의 단점들을 무수히 많이 들어왔다. 동생인 나와는 트러블이 무수할지언정 바깥에서 남들하곤 트러블 없이 둥글둥글 잘 지내며 착하다는 이야기까지 듣는 내 혈육이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해 주는 아줌마에 대한 불만을 늘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막무가내에, 교양 없고, 사람 차별하고, 식당에 오는 원룸의 주민들에게 식당 아줌마가 트러블을 만들어 식당 때문에 원룸을 나간 사람도 있고... 하여튼 문제가 참 많아 보였다. 인사성 밝은 언니가 식당에 들어설 때 그리고 나갈 때 식당 아줌마를 본체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말 다했다 싶었다. 그런 곳에 내가 들어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니... 인간의 삶에서 의, 식, 주 중에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식사를 그런 곳에서 해야 한다니...


이곳에 오기 전부터 언니에게 들어왔던 말이 있기 때문에 사실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위에 나열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언니가 가졌던 불만들이었기에 아직 식당에 가보지도 않은 나는 괜히 겁을 먹지 않기로 한다.


대망의 이사 첫날, 나는 언니를 따라 식당에 들어섰다. 인상을 팍 쓴 채로 식당 안에 떡하니 있는 아줌마를 보고 쉽지 않겠다 싶었지만 편견을 내려둔 채 나는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사 왔어요?"

"네. OO건물에 오늘 이사 왔어요."

"몇 호?"

"OO호요."


밝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식당 안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굳이 몇 호인지 까지 묻는 게 조금 의아하긴 했다. 간단하게 답을 마치고 식당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내 입맛에는 조금 짠 음식들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고 식당을 나와 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제처럼 언니와 함께 식당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어제저녁과 다를 바 없는 밝은 인사에도 들은 채도 하지 않는 아줌마였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넘겼다. 아직 배식을 받는 방법에 대해 식당의 시스템이 익숙지 않아 언니가 나를 도와주며 배식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떡국이 나와 기분이 좋았지만 유난히 양이 적었다. 인상을 팍 쓰고 계시니 조금 더 달라고 말을 꺼내기도 뭐 했다. 그래서 그냥 먹고 있을 무렵, 식당 아줌마는 갑자기 소리쳤다.


"너 여기 네 언니랑 같이 살지! 어디서 같이 살면서 이사 온 척이야!!"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비몽사몽 한 눈으로 다들 식당에 내려와 아침 뉴스를 들으며 각자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고요한 식당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치는 아줌마였다. 처음엔 나에게 하는 이야기 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아줌마의 날카로운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한 집에 같이 살면서 둘 다 밥 먹는 게 어딨어!!!"


냅다 반말부터 툭 내뱉으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도둑년 취급하는 식당 아줌마의 태도에 나는 너무 놀라 멍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벙쪄있는 나를 뒤로 한 채로 말한다.


"제 동생이 제 아래층에 어제 따로 이사 왔고요. 저희 같이 안 살아요. 각자 집 얻어서 따로 사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언니는 제 할 말을 마친 채 식당을 나갔다. 언니가 나간 후에도 여전히 구시렁대며 자기 말만 하는 식당 아줌마에 나는 아침을 서둘러 먹고 자리를 떴다. 언니가 상황을 설명해도 전혀 믿지 않는 듯해 보였다. 나는 너무 불쾌했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서 마음대로 판단하고 사람들 앞에서 마치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혼내듯 다 큰 성인에게 반말을 해대며 무례하게 구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에 올라와서도 분이 삭지 않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언니는 우리 집에 와서 내게 말했다. 본인이 음료를 들고 그 아줌마를 다시 찾아가서 사람들 없는데서 오해하지 마시라고 한번 더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인배처럼 이 문제를 해결은 언니가 처음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혼자 오해하고 대뜸 화를 내는 사람과는 달리 교양 있는 지식인임을 우아하게 보여주는 제법 어른스러운 면의 언니가 다르게 보였다.


언니가 말했으니 이제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날 저녁을 먹으러 혼자 갔다. 언짢은 기분은 어쩔 수 없지만 티 내지 않고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또 대뜸 내게 소리치는 아줌마였다.


"그래서 네가 몇 호라고?"

사실 여기에서 폭발할 뻔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나를 부르는 호칭은 '네', 그리고 말끝마다 반말을 찍찍해 대며 묻는 말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끝까지 나와 언니를 의심하는 행동에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사람 하나 잡아 내쫓아 낸 적도 있다더니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저는 OO호 살아요. 언니는 제 위층 살고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내 입으로 말했다. 충분히 알아듣게 설명한 것 같은데 내 말 뒤에 돌아오는 말은

"내가 직접 관리실 가서 알아봐야겠네"


많은 사람 앞에서 나는 또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게 한참 꼬이기 시작한 내 서울 살이의 시작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는 나도 식당에 들어설 때면 아줌마는 본체도 하지 않은 채, 음식으로 돌진했다. 배식을 받다 보면 웬만한 반찬과 밥은 셀프이지만 꼭 그 아줌마와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아침으로 밥이 나오는 날에는 국, 계란 프라이는 아줌마가 직접 배식했고, 떡국이 나오는 날에는 떡국을 직접 받아가야 했다.


내게는 유난히 작은 계란 프라이를 주기도 했고, 국은 늘 적게 주고, 무언가를 배식할 때 내 접시 위로 음식을 틱 던지 듯 놓는 날이 대부분이 이었다. 처음에는 아줌마가 직접 배식해 주는 음식이 나에게만 유난히 적은 양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런데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을 때 지나가며 다른 사람들 접시를 보면 내가 받은 양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걸 알았다.



저녁도 아침과 다를 바 없이 밥과 반찬은 셀프이지만, 주로 고기가 생선 등 메인메뉴로 보이는 음식이 나올 때면 아줌마가 직접 배식한다.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가 나온 날, 다른 사람 접시 위에는 두 개씩 올려지는 생선이 내게는 하나만 왔다. 그래서 나는 하나를 다 먹고 다시 가서 말했다.


"고등어 하나 더 주세요."

"맨날 남겨서 그래. 맨날"


또 듣기에 거슬리는 말을 한마디 얹으며 주는 아줌마였다. 그 사건 이후로 아줌마는 내가 들어오면 거들떠도 보지 않아서 내가 음식을 남기는 건 본 적도 없을 텐데 또 거짓부렁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당시 그 아줌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 관리실에 물어봤으면 당연히 언니와 내가 따로 사는 걸 알았을 거고, 본인의 막무가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언젠가는 알게 되었을 텐데 그걸 인정하고 반성하지도 우리 자매에게 굴었던 무례함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릴 적 동경했던 멋진 어른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른이어도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많다는 걸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매일 식당에 가는 일이 내게는 어느새 두려움이었다. 나를 이유도 없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마주하는 일은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고통스러웠다. 언니 말고는 아무도 없는 타지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벅찼던 내게 누군가의 이유 없는 미움은 내 마음의 문을 닫기에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타지생활 하느라 고생한다며 딸 같은 아이에게 많이 먹으라는 따뜻한 말을 해주며 정을 나눠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어른이 되어보니 때로는 내 마음 같지 않은 일들이 내 의지와 내 노력과 상관없이 나타나기도 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배웠다. 매일 화내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차별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그 아줌마 본인에게도 얼마나 큰 불행일까? 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은 상대를 향하지만 고스란히 그 감정이 나에게 휩싸여 나 스스로를 더 큰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아줌마는 참 불쌍한 사람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미워하고 차별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랴? 그러니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서 식당에 갈 때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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