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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Aug 14. 2023

5.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아무것도 없고

스무 살, 요리 경단녀의 첫 자취 요리

요리 경력 無,

칼질 경력 無,

화장실 청소 경력 無,

세탁 경력 無,

분리수거&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경력 無


나는 한마디로 살림 경력단절, 경단녀 였다. 이런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더딘 속도로 쓱싹 대는 설거지와 방청소 그뿐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덜컥 엄마 캥거루의 주머니에서 벗어나 타지에 툭 하고 떨어진 셈이다.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당장 밥을 해 먹어야 했고, 요리를 해야 했다. 엄마가 자취하기 전에 간단한 요리 몇 개라도 배우고 가라고 외치는 걸 나는 강력히 거부했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는 그다지 재능도 없고 요리는 더더욱 하기 싫었으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요리를 거부했던 나의 모습을 후회할 때가 찾아왔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1

장보기부터 큰 난관이었다. 내가 마트에서 혼자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먹기 위해 장을 본 적 있는가? 당연히 대답은 NO이다. 엄마 따라 시장을 가고 마트를 가고 장을 보는 엄마 옆에 찰싹 붙어서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맛있겠다. 이런 소리만 해댈 줄 알았지 내가 직접 식재료를 사본 건 처음이었다.


혼자 살면서 배달시켜 먹고 외식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건강도 금세 망가질 것이고 구멍이 생긴 듯 줄줄 빠져나가는 돈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계부 어플을 핸드폰에 깔아 소비 내역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장을 볼 때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가격비교를 하게 됐다. 조금 더 싸고 양도 많은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했고, 알뜰살뜰 장을 봤다. 떡볶이 떡 하나를 사더라도 1000원이라도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담았다.


내가 자취하며 처음으로 혼자 만들어 먹은 음식은 '떡볶이'였다. 일주일에 꼭 두 번씩은 떡볶이를 먹을 만큼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첫 요리로 선택했다. 떡을 사서 물에 불리고, 어묵은 미리 뜨거운 물에 한번 데쳐서 기름을 빼주고 냄비에 담은 후에 물을 적당히 붓고 떡과 어묵 그리고 고추장(떡볶이 양념장)을 풀고 끓였다. 다 끓고 난 떡볶이에는 기호에 맞게 설탕과 참기름을 넣어준다. 그게 다였다.


이 간단한 떡볶이를 나는 부끄럽지만 20살에 처음 만들어 보았다.

아무리 간단한 떡볶이라 할지라도 잘 저어주지 않으면 떡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기도 하고, 덜 끓이면 떡이 딱딱하고, 너무 푹 끓이면 떡이 흐물흐물 해져 식감이 살아나지 않기도 했다. 그 쉬운 떡볶이 레시피에서도 나는 실패를 거듭했다.




 


2

두 번째로 내가 한 요리는 '흰쌀밥'이다. 사실 요리라고 하기에도 부끄럽다. 밥은 없어서는 안 될 당연한 존재이니까.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전기밥솥에 밥을 하는 것보단 가마솥 혹은 냄비에 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당연했고 내게는 익숙했다. 검은 쌀, 흰쌀, 현미 등등 다양한 곡물이 섞인 잡곡밥을 먹으며 자란 나는 자취를 시작하자마자 그 잡곡들이 사치가 되어버렸다. 흰쌀밥 하나 하는 것도 냄비를 태워먹고 오두방정을 떠는데 잡곡밥이 웬 말인가?



밥 하기 귀찮고 힘들 때는 때론 '햇반(즉석밥)을 사 먹으면 쉬울걸? 왜 이렇게 어렵게 가야 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즉석밥을 사 먹는 걸 길들이다 보면 내 가계부에는 또 하나의 지출만 늘어갈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서툴지만 직접 가마솥에 흰쌀밥을 짓기로 했다. 우선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쌀 양을 계량했고, 쌀을 세 번~네 번 정도 손으로 저어 물에 씻은 후에 채를 통해 물을 빼냈다.


(물론 지금은 채 없이도 대충 손으로 잘 막아서 쌀알들이 물에 휩쓸려 가지 않게끔 잘 조절한다. 하지만 자취 초반에는 채가 없으면 쌀을 씻을 수 없었다.)

 

그 후 쌀을 가마솥에 담고 물을 적당히 계량한다. 어떤 요리에서든 가장 어려운 것은 물 계량이었다. 정확히 '어떤 그릇으로 물을 두 번 담아 넣으세요~' 하고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물을 넣는 건 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밥을 할 때 넣는 물의 양도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하다 보니 금세 적응됐다.



물을 넣고 인덕션에 불의 온도도 적당히 올려주고 기다린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물이 없어지기도 하고 물이 넘치기도 하니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 한 번씩 확인해 주는 건 필수이다. 다소 귀찮을 수도 있으나, 가마솥에 직접 하는 밥의 맛은 확실히 햇반과는 달랐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마른 쌀이 물을 골고루 잘 흡수해 탱글탱글 밥알이 된다. 


 

처음엔 밥을 하다 냄비를 태워먹기도 했고, 내가 한 밥은 왜 인지 모르게 맛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우당탕탕 경험이 쌓일수록 내 밥도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직접 밥을 해보면서 흰쌀밥 하나 하는 것에도 꽤 많은 힘이 들어간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여태 얼마나 큰 정성이 들어간 엄마의 밥을 먹으며 자라왔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3

자취 요리의 또 다른 난관은 과일 깎기였다. 계절별로 사과, 오렌지, 참외 등등 제철과일을 엄마가 서울 자취집으로 택배를 보내주셨다. 삼시세끼, 밥을 먹고 숟가락만 놓으면 매번 과일을 먹는 습관을 길러온 지 20년이다. 자취를 한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과일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젠장...

나는 과일을 더럽게 못 깎는다. 여태 엄마가 깎아주는 무수한 과일을 먹어만 봤지 깎을 줄 모르는 나는 불효자였다. 나는 겁이 많다. 원체 겁이 많기 때문에 칼, 물, 불 이 모든 걸 무서워한다. 가스 불에 요리하는 걸 무서워하고 칼질을 하는 걸 두려워한다. 그런 내가 삼시세끼 과일을 먹는 호화를 누리려면 끊임없이 과일을 깎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열아홉, 

수능이 끝났을 무렵 엄마는 조금씩 내게 과일을 깎는 연습을 시키셨다. 추운 겨울 사과를 깎을 때면 냉장고에 있던 사과를 꺼내 깎다 보니 '손이 시려서 못 깎는다, 내 손 자를 까봐 못 깎는다' 등등 별의별 이유를 대며 겨우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30초 만에 깎을 사과를 나는 30분씩 들고 있었다. 그게 내 과일 깎기의 첫 시작이었다. 그렇게 겨우 몇 번 연습한 게 다인데, 자취를 하다 보니 내가 한 번도 깎아보지 않은 과일과 마주하는 시간도 있었고 학교 가기 전에 시간이 없어 금방 깎아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급한 상황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주어지니 어떻게든 나의 과일 깎기 능력은 조금씩 향상했다.






4

자취의 필수템은 즉석식품, 밀키트, 무조건 간단한 음식이다. 한번 구매해서 먹어보고 맛있었던 건 무조건 기억하고 다음에도 또 사는 패턴을 갖고 있었다. 다 만들어져 있는 닭갈비를 사서 한번 냄비에 보글보글 데우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조차도 해보지 않아 미숙했다. 도대체 불 조절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금세 다 된 닭갈비를 태워먹기도 했다.



서울에는 돼지국밥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내 고향 부산에서는 다대기와 부추를 넣어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돼지국밥 맛집이 무수히 많다.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날 뜨끈한 국물을 먹기 위해 돼지국밥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차갑고 허한 속을 달래기 위해 돼지국밥집을 찾기도 했다. 그 습관이 남아있어서 인지 서울에 와서도 돼지국밥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돼지국밥' 밀키트를 구매했다.


배가 고플 때도 배가 덜 고플 때도 언제나 맛있었던 유일한 밀키트 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가장 간편한 밀키트는 '~밥'이었다. 새우볶음밥, 곤드레 나물밥, 그리고 잡채밥

냉동보관 했던 밀키트를 꺼내 포장지를 뜯고 밥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 4분'


전자레인지 4분은 언제나 손쉽고 간편한 마법의 주문이었다.




더운 여름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시원한 음식은 '메밀 소바'였다.

면만 삶으면 거의 반이상 완성되는 간편한 음식이었기에 자주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완벽한 메밀 소바는 아니었지만 대충 흉내라도 낼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했다.





집 앞에 있는 엔젤리너스 카페에서 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뙤약볕 아래 룰렛 돌리기 경품 행사를 했었다. 점심시간, 직장인들은 모두 제 손에 커피를 든 채로 삼삼오오 모여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다른 때라면 당연히 나는 이 장소를 지나쳤을 것이다. 그 더운 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사람 많은 곳에 혼자 덩그러니 끼여 있겠단 말인가?


하지만, 시원한 커피 혹은 엔젤리너스 기프티콘을 주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그 인파에 동참했다. 그리고 얻은 '7000원짜리 반미 샌드위치'


이는 내게 든든한 한 끼가 되었고 이에 정말 행복했다. 자취를 하다 보니 사소한 것 하나에도 큰 기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공간은 내 책상이다. 내 요리의 끝, 그리고 식사의 시작은 항상 이 작은 책상이었다. 꽤 복잡한 내 책상은 참 많은 용도로 사용됐다. 책상 위에 앉아 공부하기도, 과제를 하기도, 화장을 하기도, 그리고 티비를 보며 밥을 먹기도 했다. 제대로 된 책상 의자도 아닌 다이소에서 구매한 5000원짜리 의자에 앉아 이 공간에서 많은 걸 해결했다. 자취를 끝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올 무렵 나는 이 책상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이 작은 공간이 내겐 참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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