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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Aug 16. 2023

6. 하루 만에 잘린 알 바 없는 알바생

스무 살, 첫 아르바이트 경험

어느새 타지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 나는 첫 알바를 경험해보고자 했다. 과제가 많은 주말이면 늘 과제를 하느라 바쁘지만 과제가 없는 주말이면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알바천국' '알바몬' 어플을 핸드폰에 깔아 알바 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집 근처, 그리고 내 적성에 맞는 종류로 알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시급, 적성, 집과의 거리 이 세 가지가 모두 딱 맞는 곳을 찾아 알바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이력서에 붙일 최근 증명사진도 없어 부랴부랴 사진을 찍었고, 이력서에 내가 쓸 수 있는 내용은 별 것 없었다. 알바를 해본 경력이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거라곤 기본 인적사항과 대학교 전공 그뿐이었다. 알바도 경력직을 뽑는 이 세상,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인데 세상은 매몰차게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딱히 내세울 만한 알바 경력 사항이 없는 상태였지만 연기를 전공하고 있어 서비스직 업무에 잘 어울린다는 점과 글을 꽤 쓸 줄 알아 지원동기를 그럴 싸하게 잘 쓴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 두 개로 첫 알바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첫 알바는 '교정 치과 인포메이션'이었다. 데스크에서 환자 접수를 받고 결제를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맞이하 일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웬걸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다.


면접을 보러 간 그 순간부터 위기는 내게 찾아왔다. 치과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건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번쩍번쩍 지어놓은 치과의 겉모습과 달리 내실(체계)이 부실해 보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면접을 보기 위해 진료실에서 기다리다 보니 치과 의사가 직접 내 면접을 보러 왔다. 처음 문을 열고 진료실에 들어온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내 밝은 인사가 무색하게 의사는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고 첫마디가 "이력서"였다. 반말과 함께 내게 내민 손이 그의 첫인사였다. 이력서를 쓱 훑어보더니 내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로 질문해 왔다.


"대학교 위치는 어딘데?"

"집 위치는 어딘데?"

첫 만남에 반말과 더불어 무례하기 짝이 없는 호구조사로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래도 나는 성실히 대답했다.


"학교 위치는 OO에 있어요"

"집은 여기 주소 쓴 것처럼 가깝고 걸어서 15분 거리고 OO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어요"


"너는 OO지하철 역 앞이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아니? 건물을 말하라고. 무슨 건물 앞에 있는지!"

대뜸 버럭 화를 내며 내게 따지듯 묻는 의사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사회생활에서 이 정도의 무례함은 재치로 넘겨야 한다고 생각해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를 지언 정 최선을 다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무례한 호구조사에 가까운 면접이 끝나고 의사는 내게 말했다.


"이번주 토요일 8시 30분까지 나와. 열심히 할 수 있지?"

"네, 그런데 제 업무는 알바 모집 글에 올려놓으신 것처럼 환자분들 접수 도와드리는 인포메이션 담당 맞죠?"

"응, 근데 너 왜 자꾸 실실 웃어? 이것도 연기 아냐? 네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연기 같아"

"ㄴ.. 네?"


하다못해 이젠 내 표정까지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의사였다. 병 주고 약 주고 모든 말이 불쾌하고 무례하다 생각되었지만 굳이 뽑아준다는데 마다할 수는 없어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토요일아침 출근을 했다. 첫 알바, 첫 출근이라는 명분으로 설렘을 갖고 말이다.



 

면접을 보고 나가기 전에 나름 치과인데 복장이 정해져 있지 않을까 싶어 인포메이션에 있는 간호사 분에게 질문했다. 이번주 주말부터 출근하게 되었는데 필요한 복장 같은 게 따로 있지 않냐고 말이다. 잠시 고민하시더니 병원에서 입어야 하는 옷은 다 준비되어 있으니 '머리망'만 사 오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보통은 치과에서 줘야 하는 건데 지금 남는 머리망이 없으니 치과 앞 다이소에서 머리망을 하나 구매해서 영수증을 첨부하면 내 계좌로 돈을 붙여줄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호기롭게 머리망도 2000원을 주고 하나 장만했고 주말아침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출근했다. 평일과는 달리 고요한 주말 아침 오픈 전 치과풍경이었다. 간호사는 나를 제외하고 한 분 더 있었고 간호사 한분 그리고 의사 인원은 이 세 명이 다였다. 오픈 준비로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할 줄 알았는데 오픈 30분 전에 불러 놓고 아무것도 가르쳐 주는 것도 오픈 준비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내게 옷부터 갈아입고 나오라며 탈의실로 밀어 넣었지만 탈의실 락커 안에 준비되어 있는 옷은 단 한벌도 없었다. 당황한 나는 탈의실을 나와 의사에게 한번 더 물었다.


"선생님, 탈의실에 준비되어 있는 옷이 없습니다."

"그냥 대충 아무거나 꺼내 입어!"

"그러니까, 어디에서 꺼내 입나요?"

"지금 세탁된 옷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여기서 대충 찾아서 사이즈 맞는 걸로 꺼내 입어."


의사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세탁기 안 이었다. 세탁기 안에 세탁하려고 넣어둔 뒤엉킨 세탁물 속에서 대충 사이즈 맞는 옷을 골라 입으라는 의사의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있으면 손님들이 올 시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세탁기를 뒤졌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깨끗해 보이는 옷은 한벌도 없었고 사이즈는 내게 다 컸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무언가 덜 묻어있는 옷을 골라 입고 나왔다. 의사는 나를 보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유~ 더러워. 좀 깨끗한 옷을 골라 입으라니깐"

"다른 옷들도 다 이 정도 상태예요. 더 깨끗한 옷은 없습니다."

"그래 뭐 말아~"


의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오픈 10분 전인데도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유니폼을 찾아 입은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제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손님들 오면 인사 열심히 해. 그리고 전화받으면 내용 써놓고 조금 있다 전화한다고 해."

"그게 다 인가요?"

"그럼 뭘 더해! 지금 너네 둘 다 잘 모르는데"


알고 보니 내 옆에 있던 간호사분도 여기에서 시작한 지 고작 4일밖에 되지 않았다. 나보다는 알고 있는 매뉴얼이 많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배운 건 단 하나였다.


인사 열심히 하기







그 상태에서 정각 9시가 되자 치과는 문을 열었고 미리 예약된 환자분들이 10분 간격으로 쏟아졌다. 배운 대로 나는 환자분들께 살갑게 인사했고 성함을 여쭤보고 진료실로 안내했다. 이 업무가 다인 줄 알았건만 진료실 너머 의사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OOO!!!"

"네?"

"여기 카트 끌고 와!"

"카트가 어디...?"

"저기 있잖아! 보면 몰라? 그리고 이거 세척해 와"


사전에 약속되어 있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은 일들을 시키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 분야에 있어서 전공분야가 아닌 내게 의료기구를 만지게 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것저것 의료기구를 만지다 혹여나 환자분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었다. 환자분들은 철썩 같이 내가 간호사라고 믿고 있을 텐데 나는 그분들의 믿음과는 달리 의료기구에 대해 무지했다. 나는 이 상황 속에 나는 누구인가를 제외하고는 정말 아는 바가 없었다. 이렇게 의료기구를 만지고 환자 진료를 보조하는 일은 이 분야를 전공한 전문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겨우 의사의 심부름과 비난을 받아내며 첫 환자분 진료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나와 내 옆에 있는 간호사분에게 물어봤다.


"근데, 간호사님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게 맞나요?"

"저 간호사 아니에요. 저 이쪽 분야 전공하지도 않았고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그냥 이 치과에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간호사 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와 똑같은 알바생 언니였다. 나는 이 험난한 의사의 비난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이겨내기 위해 옆에 있는 알바 언니와 손을 잡고 허둥지둥 서툴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겨우 겨우 일을 했다.


언니는 나보다 진료실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고, 하물며 신경치료(수술에 가까운) 보조까지 했다. 그런데 당연히 언니도 알지를 못하니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다. 중간에 손님이 없는 시간에 의사는 로비로 나와 언니와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의사는 무얼 바랐던 걸까?


소리치며 혼을 내던 의사는 이내 치과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미소를 장착했다. 환자에게는 가식적인 미소를 펼쳐 보이며 친절한 척을 해댔고 접수를 마치고 손님이 로비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의사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인사 제대로 안 하니? 내가 아까 인사 잘하라고 했잖아. 네가 앉아서 인사하면 어떡하니? 일어나서 90도 숙이면서 인사해야지. 고개만 까딱 그게 뭐야?"


의사의 잔소리 폭탄은 끝날 줄을 몰랐고 나는 당황했다. 그 어떤 병원도 환자가 온다고 해서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병원을 나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앉아있다고 해서 내가 예의 없게 인사한 것도 아닌데 알 수 없는 봉변을 나는 또 한 번 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명백한 갑질임에도 원장인 의사가 갑, 알바생인 내가 을 임은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반말은 예사고, 환자 앞에서도 소리치고 반말하고 이해할 수 없었고, 업무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네 일, 내 일 구분 없이 하다 보니 화장실 한번 가지도 못하고 병원 영업종료 시간이 다가왔다.




마감 20분 전, 진료실에 앉아있는 의사의 외침이 들렸다.

"OOO, OOO! 너희 둘 다 와봐."

"네!"

"여기 계좌 써. 너 내일 나오지 마."

"내일 안 나오고 다음 주에 오라고요?"

"아니, 앞으로도 계속 나오지 마."


내일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잘렸다는 이야기인 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완벽하게 모든 걸 다 알고 알아서 거슬리는 행동 없이 다 잘하길 바랐던 의사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나오지 말라는 의사의 이야기에 나는 화가 나는 게 아닌 신이 났다. 속이 다 시원했다. 다 벗어진 머리에 남산만큼 튀어나온 배 그리고 억압적이고 무례한 말투까지 이 모든 걸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된다니. 첫 알바라 관두는 것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던 그 당시, 알아서 잘라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의사는 나에게 계좌번호를 받고 진료실로 돌아가려던 찰나 나는 다시 의사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친절함은 은 쏙 뺀 채로 똑똑히 말했다.


"오늘 일급에 2000원도 더 붙여주세요. 지난번에 다른 간호사님이 머리망이 필요하다고 해서 직접 사 왔거든요."


너무 작은 돈이라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이 의사에게는 나도 조금의 자비도 베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 만에 나는 2000원까지 해서 50000원을 벌었다. 돈을 쓰는 건 언제나 빠르고 쉽지만 돈을 내 손으로 직접 버는 일은 이리도 많은 고통이 따르는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치과를 등지고 오늘 함께 일했던 언니와 나오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나는 하루 만에 잘린 대단한 알바생 이었고, 언니도 나와 함께 잘렸다. 이 상황이 웃기고도 후련해 웃다가 처음 만난 우리는 샤브샤브집에 가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왕창 수다를 떨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살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꼭 하루 만에 알바 잘린 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무것도 몰랐던 20살 첫 알바라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떤 누구보다 더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 의사의 부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태도들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받아들이며 감당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배운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설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다. 반말하고 화를 내고 무례하게 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넘길 수 있지만, 의료기기를 만지는 잘못된 행동을 강요하는 의사에게 이 행동은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도 올바른 판단력을 길러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 짧은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을 배웠다. 이게 아마 10대와 20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10대에는 학교라는 작은 우물 안에서 사람을 만나는 세상이 마냥 전부라고 믿으며 생활해 왔다면 20대는 차원이 다른 커다란 우주 속에 떠있는 것 같았다. 무수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고 그 속에 부딪치고 깨지고 때론 다시 붙으며 타인의 도움이 아닌 온전히 나 스스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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