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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Aug 20. 2023

7. 스무 살, 사회초년생의 짠테크와 가계부

첫 자취 필수템은 가계부였다.

스무 살, 타지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경제관념'이 생겼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모든 걸 혼자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출도 많이 생겼다.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살았던 10대 때와는 달랐다. 모든 지출의 결정을 내가 해야 했고, 지출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했다. 그래서 살면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가계부 어플을 깔아 나는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모든 지출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재테크의 'ㅈ'자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이 할 수 있었던 건 절약 그뿐이었다. 그리고, 딱 하나의 전략이 있었다.

"티클모아 태산 이름하여 짠테크"


마트에서 같은 제품을 사더라도 비교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더 저렴한 건 왜 저렴한지, 비싸다면 그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비교하며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본 첫 장보기

과자 혹은 냉동식품은 무조건 1+1 행사 코너에서 골라 담았고, 맥주도 무려 500ml에 900원 하는 가격이 싼 맥주를 구매했다.

나름의 알찬 소비를 하고 나면 꽤 뿌듯한 표정으로 계산대 앞에 설 수 있었다. 사실 처음 장 볼 때는 계산대 앞에 서서 혼자 온갖 긴장을 다했다. 카드를 어떻게 내밀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먼저 해볼 정도였다. 뭐든 첫 경험은 늘 긴장되고 어려운 법이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잘 해내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는 어느새 혼자 장보기의 달인이 되었다.









자취에서 가장 소비가 큰 부분은 외식이다. 혼자 살고, 대학교를 다니다 보니 공강 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은 대부분 물가가 비싸서 다른 지역보다 같은 메뉴라도 2000원씩은 더 비싼 것 같았다. 그래서 비교적 저렴하고, 메뉴가 많고, 퀄리티 좋은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4~5군데 정도 단골식당을 정해서 이곳저곳을 다녔다.

집에서 가까운 마트 내에 있는 식당가를 자주 이용했다. 식당가를 둘러보면서 요일별 할인메뉴 행사를 하는 설렁탕 집을 발견했다. 정말 어찌나 감사하던지. 예전 같았으면 쳐다도 보지 않고 지나쳤을 법한 할인 문구를 나는 유심히도 살펴봤다. 그리고 나는 월요일에 설렁탕을 사 먹었다.

월요일은 내 공강 날이었다. 공강 날이라 집에서 과제하거나, 팀플 과제 때문에 잠시 학교에 갔다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팀플 과제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오후 3시쯤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배는 고픈데 냉장고를 열어도 찬장을 열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았지만 정작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죄다 인스턴트식품에 과자 그뿐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마른과자를 몇 개 집어먹다 눈물을 터뜨렸다. 너무 배가 고프고 엄마 음식이 그리운데 먹을 수 없는 현실이 나를 너무 외롭고 청승맞게 만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따끈한 국물에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설렁탕 집이었다. 설렁탕 집에 도착하니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식당 이모님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계셨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이모님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설렁탕을 주문했는데 설렁탕은 내 생각과 달리 너무 양이 적었다. 고기 세 점에 밥 반공기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은 듯한 부실한 내용물에 허기진 배는 채워지지 못했다. 그러나, 설렁탕과 함께 나온 깍두기 김치가 일품이었다. 밥을 다 먹고도 김치를 잘라서 여러 번 더 먹었다. 자취를 하다 보니 가장 그리운 건 본가에서 먹었던 김치였다. 어릴 적엔 김치를 정말 싫어했는데 역시 한국인은 김치인가? 하는 걸 드디어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주로 사 먹었던 음식 리스트이다. 주로 한 끼에 10000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메뉴를 골라 끼니를 해결했다. 내가 정한 상한선이 딱 10000원이었다.

순대국밥 8,000원

나는 국밥이 굉장히 활성화된 부산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국밥이 익숙했고 오랫동안 먹지 않으면 꼭 때가 되면 생각나는 그런 향수 같은 음식이었다. 서울에 올라오고 오랜만에 국밥이 생각났다. 그런데 부산처럼 쉽게 국밥집을 찾아볼 수 없었고 체인점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체인점 국밥집에 들어가 순대 국밥을 주문했다. 국물은 한강 같았지만 그 안에 순대와 고기는 가뭄에 콩 나듯 하나씩 있었다.


내 어릴 적에 비해 물가가 많이 오르고 인심이 팍팍해졌다는 건 늘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나에게 가장 정겨운 음식이었던 국밥이 이렇게 부실하게 나오는 걸 보고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옛 추억이 뭔지... 변해가는 세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금 옛 기억을 꺼내오는 내가 이제는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국밥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언제나 속을 든든하고 따뜻하게 채우는 그런 한 끼였으면 했다.



칼국수 7,500원

학교 앞에 칼국수&샤브샤브 전문점이 있었다. 하얀 곰국을 떠올리게 하는 국물에 잘 익은 칼국수 면발 그리고 고기와 채 썰은 채소고명. 내가 여태 사 먹은 칼국수 중에 가장 맛있다 단언할 수 있었다. 여기에 곁들여 먹는 아삭한 배추김치와 면발을 건져먹고 쓱 국물에 밀어 넣어 보는 밥 반공기까지. 든든한 한 끼를 내게 선물해 주었던 칼국수였다.


서울에서 칼국수 7,500원은 엄청난 착한 가격이었다. 그래서 홀로 혹은 누군가와 같이 언제든 이곳을 자주 찾았다.





김밥천국 오므라이스 7,500원

처음엔 오므라이스 7500원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나는 오므라이스를 자취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늘 엄마가 집에서 해주시는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오므라이스라 단언했다. 그래서 한 번씩은 꼭 때가 되면 포근한 계란이 올라가 있는 엄마의 오므라이스가 떠오른다.


엄마의 오므라이스를 대체하듯 오므라이스를 파는 식당을 찾았고 그중에 김밥천국에 오므라이스 메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케첩을 계란 위에 뿌려 먹는 것이 익숙했는데 김밥천국에는 여기만의 특색 있는 소스가 따로 있었다. 이 소스가 맛있어 나는 여길 자주 왔다. 오므라이스 하나에 4000원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지 내 생각일 뿐이었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오므라이스는 비쌌지만 그만한 가치를 했다.






스파게티스토리 스파게티 7,000원~9,000원

서울에 가서 처음 보았던 체인점이었다. '스파게티 스토리'

요즘 양식전문점에 가면 파스타는 대부분 10000원 이상이다. 그런 세상에 스파게티가 10000원도 하지 않는 가게가 있다니 하며 찾았던 곳이었다. 대단히 맛있고 양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스파게티가 생각날 때 가볍게 들르기 좋은 곳이었다.





한솥 치킨마요 3,200원 -> 3,500원

한솥은 어릴 적 자주 먹었던 도시락 가게였다. 메뉴는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대표 메뉴라 할 수 있는 건 바로 치킨마요였다. 마요네즈와 간장 소스 그리고 김가루를 뿌려 비벼 먹으면 단짠단짠 맛있는 맛이 나온다.


요즘은 거의 없어진 줄 알았는데 학교 앞에 가게가 있는 걸 보고 신나서 달려갔다. 가격이 올랐어도 3500원 밖에 하지 않아 내 짠테크에 굉장히 도움 되었던 메뉴였다.






동경규동 7,500원 or 8,300원

친절한 직원분들이 있는 가게라 자주 갔었다. 덮밥을 먹기도 했고 우동류를 먹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더 맛있었던 건 덮밥이었다. 깔끔하고 예쁘게 세팅되어 나와서 좋았다. 좋은 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기분 좋게 했던 건 직원분들의 인사였다. 늘 가게에 들어서면 반갑게 인사해 주셔서 이 가게를 들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사람냄새나는 따뜻한 사람이 가장 그리웠던 외로운 타지생활에서 이 가게는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외에도 김밥천국 김밥 4,500원... 노브랜드 햄버거세트 4,200원 등이 더 있다. 한 끼에 5000원 채 되지 않는 메뉴를 가장 반겼다. 햄버거 세트도 4,200원 밖에 하지 않는 가게는 정말 드문데 노브랜드 버거는 꽤 퀄리티도 있으면서 싼 가격이라 자취할 때 가장 많이 찾은 버거집이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이스크림을 여름이면 잔뜩 냉동실에 쟁여놓고 하나씩 파먹는 게 내 가장 큰 행복이었는데 내 자취방 냉동실은 너무 작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 나는 주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 어릴 적 500원이었던 롯데리아 소프트콘을 나는 참 좋아했다. 500원의 행복이라고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바삭한 과자까지 어릴 적 내게 500원은 엄청난 값어치를 했다.


오랜만에 롯데리아에 들어가 보니 소프트콘의 가격은 700원으로 올라 있었다. 생각보다 오르지 않은 가격에 신나게 주문했다. 그리고 가끔 사치 부리고 싶은 날에는 초코 시럽이 올라가 있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거나 빽다방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조금씩 부려보는 사치는 내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애살을 갖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실 가끔은 사는 게 피곤하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 스스로를 갉아먹을 때도 있고 나에게 큰 압박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타지에서 처음 했던 대학교 생활도 엄청난 애살을 갖고 했다. 그래서인지 전공 필수 과목부터 교양까지 허투루 듣는 과목이 하나 없었다. 무조건 올출석에 과제도 무조건 기한에 맞춰 냈다. 그랬던 터라 짠테크에 굉장히 도움 되는 기특한 행동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 가장 고삐 풀린 망나니처럼 자유를 만끽하며 먹는 술을 나는 먹지 않았다.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1학년 1학기 동안 내가 술을 먹었던 건 다섯 번도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가끔은 나도 술이 생각나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트에서 한 캔씩 맥주와 과자를 안주 삼아 혼술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재테크를 잘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그리 잘 안다 단언할 수 없다.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로 알아가고 있기에 말이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올바른 소비였고 올바른 소비를 하기 위해서 내 소비 습관을 고치고 체크하는 것이었다. 땅 파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다 아는 어른이 되었으니 내가 쓰는 돈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족함 없이 부모님이 돈과 카드를 주시지만 그걸 허투루 쓰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번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스무 살이 되어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부터 아껴보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외식비를 아끼고 마트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음식을 사고 또 학교에 갈 때면 늘 텀블러에 보리차를 끓여 담아갔다. 목이 마르면 카페에 가서 음료 한잔 마시고,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를 사 먹을 수도 있었지만 돈도 아끼고 환경과 내 몸도 생각하면 내가 끓인 차를 가져가 먹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또한 외식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기도 했다. 긴 공강 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며 보내는 시간은 조금 무의미하다고 생각이 들어 도시락을 싸가서 먹고 확보한 공강 시간에는 틈틈이 연습과 과제를 해냈다. 조금은 외로운 순간이 있기도 했고, 아침에 도시락을 싸랴 준비를 하랴 바쁘기도 했지만 결과론 적으로 내 짠테크에는 도움이 되었다.


자취는 현실이었다. 자취 이상을 실현할 시간보다 삶에 쫓기듯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 어떤 누구도 내게 돈을 절약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제법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돈의 가치를 알고 이 돈에 부모님의 노력이 담겨있음을 알며 책임감 있게 소비할 줄 아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 이런 노력을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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