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는 낭만이다
중고책 사이에 껴있는 작은 메모들, 도서관에서 누군가 자신의 생각들을 필기해놓은 흔적들, 자디잔 낙서들까지도 내게는 상상의 나래를 춤추게 할 수 있는 단서들로서 나만의 유희를 충족시켜주곤 했던 것이다.
나는 새 책보다는 중고책이나 도서관의 책들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사람들의 때가 묻고 흔적이 남은 책들을 좋아한다. 그러한 책들의 축척된 시간들에서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왔다. 그 힘의 원천을 생각해보자면,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이 책에 잠시 머물렀을 나와 비슷한 존재들의 서사를 그려보며 상상해보는 것에서부터 왔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빈틈의 상상을 항상 즐겨왔다.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 그 틈을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그것을 완전히 알고 싶어 하지만 절대로 완벽히 알 수 없는 탓에, 빈틈이라는 것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의 깊이와 실로 알고 있는 앎의 수준에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를 우리는 상상으로 메우게 된다. 그리고 그 빈틈을 채우게 된 상상을 앞으로도 좋아할 동력으로 삼아 대상에 대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상상들은 내겐 아주 오래된 유희의 일종이자 생활양식이다. 나는 이 습관을 내 삶의 대부분의 것들에 적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옷도 빈티지를, 음악도 90년대 이전의 음악들을, 책도 작가가 사후 30년 이상된 책들만 취급하며 그 빈틈들을 나만의 상상들로 채워나가며 즐기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상상들은 매우 즐겁고 우리의 삶에 의미를 구축해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사랑 앞에서 무기한적으로 커진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상대방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얼마나 세상이 허탈해보이던가?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면서 좋아하는 상대를 다 안다고 스스로의 착각에 빠지곤 한다. 안다는 것은 스스로의 상상에 불과하고 그녀는 나만의 상상으로 부풀려진 기대의 존재에 불과한데 말이다.)
나는 허튼간에 중고책들을 사랑하고 있다. 중고책이나 도서관 책들에 존재하는 전사람의 흔적들에서 나는 내 상상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중고책 사이에 껴있는 작은 메모들, 도서관에서 누군가 자신의 생각들을 필기해놓은 흔적들, 자디잔 낙서들까지도 내게는 상상의 나래를 춤추게 할 수 있는 단서들로서 나만의 유희를 충족시켜주곤 했던 것이다.
책 사이에 껴있는 영수증에서 나는 그 사람의 김밥사랑에 대한 서사를 뚝딱 지어내었으며, 책에 그어져 있는 밑줄에서 나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숭고한 사랑의 지평들을 다시금 생각해보았으며, 책 말미에 그려놓은 낙서에서 그 사람이 원숭이를 대하는 태도와와 재치에 대한 묘사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책들을 더 즐겨줬으면 한다. 중고책이야말로 책을 그저 딱딱하게 읽는 것이 아닌 유기적으로 느끼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말해왔듯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시간에 음악도 듣고 음료도 즐기며 좀 더 다감각적으로 책을 느끼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내게 있어서 오래된 책에 존재하는 흔적들은 모두 책을 더욱 풍성히 느끼게 해주는 하나의 장치이다. 책을 느낄 수 있는 장치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은 책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책을 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