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것
부모에게 자식은 그 무엇보다 소중히 가꾸어야 할 생명이지만, 실제로 작물을 키워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는 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게 된다. 말문의 트여 어느 정도 자기 의사 표시를 하고,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된다는 2~3돌쯤까지 충분히 아이를 돌보고 나서 어린이집에 보내면 좋겠지만, 주변을 보면 언감생심이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는 어쩔 수 없이 돌이 안 된 아이도 일찍 어린이집에 맡기는 농가가 많다. 옛날 어느 날에는 논밭 근처 나무에다가 밧줄을 길게 달아 아이 허리춤에 묶어놓고 일을 했다고도 하던데, 요새는 왠지 어림없는 소리 같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간단히 뒷정리라도 하고 나면 해가 높이 뜬 10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4시 전까지는 볕이 가장 뜨거울 때지만, 오롯이 밭일을 하려면 별 도리가 없다. 그마저도 돌이 지나지 않은 막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 시간이라도 생기면 감지덕지하여 밭에 나가 밀린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아이가 있는 농촌 새댁은 대부분 농사, 가사 노동 및 육아 톱니바퀴에 맞물려 살아간다.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는 돈을 벌고, 아내는 가사노동과 자녀 육아를 담당하는 전통적인 성역할과 달리 부부가 함께 벌고, 함께 돌보는 삶을 산다. 하지만 돌봄의 비중은 꽤 다르다. 여성농민은 잠잘 때도 언제 깰지 모르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대기 중인 채로 잠을 조각내고, 코로나로 휴교, 휴원을 하거나 방학 기간에는 돌봄 노동이 더욱 증가한다.
농사․살림․양육이라는 굴레에서 여성농민은 스스로를 돌보며 충전할 여유는 거의 없는 편이다. 이런 강행군을 하다 보면 내가 무슨 일인들 못하랴 싶기도 하지만 왜 기혼 여성농민의 경제적 자율성은 확보되지 않으면서, 이런 과중한 노동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야 하는가 의문이 생긴다.
더욱이 30~40대 여성농민의 삶은 중노년 여성농민의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옛날에는 밭 매다 아이를 낳았고, 아이 낳고 며칠 안되어 김매러 다녔다는 씩씩한 이야기도 들어보았지만, 그때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 그때 막내를 낳고서 몸이 망가졌다는 한 맺힌 소리도 왕왕 듣는다. 기계처럼 일을 잘하는 여성 농민들을 보고 ‘대단하다~’라고 하기엔 골병이 깊이 들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기까지 한다.
이제는 지자체마다 ‘농어가 도우미 제도’가 있어 임신․출산한 시기에 몸을 추스려야 하는 여성농민을 대신할 도우미의 인건비로 90일간 지원금을 보조받고 자부담을 조금 보태어 쓸 수 있다. 또한, ‘출산급여’로 여성농민이 농업경영체로 등록되어 있고, 출산 전에 3개월 이상 소득 발생 확인이 된다면 월 50만원씩 3개월치인 1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남편만 농업경영체로 등록되어 있거나, 자신의 통장으로 거래하지 않는 여성농민들은 현실 조건에 맞지 않아 출산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장 운영의 문제를 단 3개월간의 복지 정책으로 버티기에는 메꿔야 할 공백이 크다.
아이가 있어 참으로 기쁘지만, 농사일이 빠듯하니 근심이 늘었다. 꼬물거리는 아이를 돌보다 보면 또 요런 아이를 더 낳아 기르고 싶지만 그리해서는 한창 일하여 기반을 마련할 나이에 농사도 잘 못 짓고, 과한 노동으로 몸이 축날 일이 눈에 선하니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렇듯 후대의 기혼 여성 농민들은 건강과 일, 육아와 농사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갈림길에서 방황하지 않기를, 누구라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즐겁게 농사를 짓다가 충분한 육아가 가능한 사회가 되도록 간절히 바란다.
돌봄의 가치가 경시되어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치부되고, 가사와 육아를 여성농민에게 주로 책임지우는 성별에 따른 노동 시스템이 농촌에서는 특히 견고하다. 이 판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생애주기별로 돌봄 시스템을 촘촘하게 만들어 나간다면 농촌의 문화, 복지, 인구, 경제 등 다방면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둥을 받쳐 주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