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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경아 Jul 21. 2022

보드게임 강사의 커다란 가방

즐거움이 가득 들어 있는 가방

책 한 권은 넣고 다녀야지. 필기구도 넣고 다니고. 수첩은 당연하고, 손수건도 하나... 음... 필통도 필요할 것 같아. 가끔 칼도 필요하고 수정테이프도 필요하거든...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내 가방 안을 남편은 궁금해한다. 대체 항상 뭘 그렇게 가지고 다니는지, 그리고 왜 무겁게 가지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가끔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읽지도 않은 책은 왜 항상 넣고 다녀 결국 헌 책을 만드는지, 어쩌다 한번 쓰는 수정테이프랑 색 볼펜은 왜 꼭 넣어 다니는지... 아마도 필요할 때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가방에 무언가를 가득 넣어 다니게끔 하는 것 같다.


가방! 그 안을 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차 안이나 트렁크를 들여다보면 차 주인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내 차 안 의자 위에는 작은 보드게임이 가끔 자리를 차지한다. 가끔인 이유는 눈에 보이는 차 안에는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서 무언가 잘 올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트렁크 안은 보드게임으로 꽉 차 있다. 항상 가득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자주 그렇다. 그렇다면 나의 관심사는?


내게는 내가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보다 몇 배는 더 큰 가방이 있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몽땅 사면, 가방 가득 담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런 큰 가방이다.  이 가방에는 마트 물건이 들어있지 않지만,   평일에는 꼭 들고 다닌다. 왜? 이 안에는 무엇보다 소중한 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 차 트렁크에 있는 것들이 이 가방에 담겨 운반이 된다.


난 보드게임 강사이다. 꽤 인기 좋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양심에 찔린다.

난 이 커다란 가방을 한 손으로 들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이다.

노트북 한 개 들고, 어깨에는 작고 예쁜 가방을 메고 우아하게 수업할 장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절대 그러지 못한다.   가끔은 진짜 바리바리 싸 들고 간다는 말이 맞을 듯 가방 끝을 겨우 잡을 정도로 위에까지 가득 넣어 두 손으로 거의 안다시피 가방을 들고 가기도 한다. 그런 날은 들어가야 할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이미 지쳐있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많은  보드게임 강사들은 나와 같지 않을까 짐작을 해본다. 그들은 커다랗고 가볍고 튼튼한 가방을 좋아할 것이다. 요즘은 바퀴가 달린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강사들이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보드게임이 든 가방은 크기도 크기지만 무게가 더욱 문제이긴 하다.  무거운 보드게임이 들어 있는 가방을 팔에 걸고 가다가 다음날 팔이 아파 돌리지도 못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또는 끌고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는 어린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계실 수도 있다. 어디를 가든 나는 반김을 받는다. 그것이 그 무건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힘의 원천이 되게 한다. 나뿐 아니라 보드게임 강사들은 즐거운 놀이를 같이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인지향상을 도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지만 그건 인지에 도움이 돼서 그런 것보다는 즐거운 놀잇감을 가져와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는 건, 우리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 그런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우리 보드게임 강사들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 그 안에 들어 있는 보드게임. 몇 개가 들어 있는지를 보면 대충 인원이 파악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보드게임과 함께 손소독제, 소독 물티슈를 넣고 다니기도 한다. 아이들도 소중하고 우리의 보드게임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혹시 보드게임이 비에 맞을까 보드게임이 젖지 않도록 덮고 우산도 가방 쪽으로 더 기울인다. 우리에게 보드게임은 명품인 것이다. 



내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가면서 난 다른 강사들의 가방은 어떨지 궁금했다. 가끔 가까운 선생님들의 수레 안을 보기는 하지만 다들 이러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더 궁금해졌다. 아는 강사가 많지 않은 난,   당신의 보드게임 가방을 보고 싶어요라고 부탁할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겨우 아시는 분들을 상대로 수업 가는 중에 보드게임 가방을 찍어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몇 분의 강사들이 자신의 가방을 찍어 보내주셨고 그 사진을 이곳에 올렸다. 조금 더 모아서 올릴까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내가 많은 강사들을 아는 것도 아닐 테니 이렇게 보내주신 것들만 올리는 것에 만족했다. 


보드게임 자체가 부피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강사들은 차를 이용해 수업을 다닌다. 항상 그렇듯 모두 그런 건 아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수업을 다니시는 강사들도 있다. 나도 커다란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꽤 먼 곳에 있는 학교에 수업을 다닌 적도 있다. 수업하는 때가 오후 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보니 여름에는 땀으로 범벅이 되기도 하지만 그 길이 그렇게 즐거웠다. 모든 수업이 만족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든 수업이 나를 성장하게는 했다. 그렇게 뚜벅이 강사생활을 할 때 내 보드게임 가방은 최대한 작게, 가볍게라는 계획으로 움직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방은 컸고 내 발걸음도 어깨와 팔의 무게에 지지 않고 크고 활기찼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 보드게임들... 그것들에게는 즐거움이 묻어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기고 싶어 하는 갈망이, 가끔이 졌던 아쉬움이,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이기는 게 목표이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 역시 묻어있다. 이 가방을 들고 가면 항상 반겨주고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오늘은 뭐할까 궁금해하는 눈동자들도 이 가방 안 보드게임 덕분이다. 어떤 날은  두 손으로 가방을  들고 낑낑대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난 금요일이 최고의 날이에요. 왜냐면요. 보드게임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런 말도 해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항상 조금씩 예뻐지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듣게 하는 시간의 처음은 가방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이다. 오늘은 대체 뭐라려나?라는 호기심이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내게 한다. 가방 안... 모든 강사들의 커다란 가방은 어쩌면 삶에서 즐거움만을 가득 담아 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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