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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기 Oct 09. 2024

콩고의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의 죽음

그를 죽인 벨기에와 미국 그리고 가난한 아프리카와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냉전체제에 돌입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선 냉전을 자유 진영 대 공산 진영이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표현에는 미국 중심의 서구 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소련 및 공산 세력은 독재체제를 지향한다는 식의 인식이 깔려있다. 또한, 이런 식의 논리와 표현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과정에서 탈식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한 역사적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는 효과도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탈식민주의에 반대되는 행동의 대명사 격인 베트남 전쟁을 한국의 반공세력들이 어떻게 인식했고, 또 현재까지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파트리스 루뭄바의 암살을 다룬 서적

한국에선 아직도 자유월남과 같은 현실과 괴리된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탈식민주의에 전적으로 반하는 행위를 한 대표적인 사례다. 베트남 전쟁의 기원은 프랑스 식민주의에 있으며, 미국이 반공의 논리를 내세워 적으로 간주한 호찌민을 포함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과거 일본과 프랑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혁명가들이며 독립운동가들이었다. 반면에 미국이 반공의 논리를 내세워 전적으로 지원한 남베트남의 지도부 및 정치인들은 과거 식민지 당국에 협력한 민족반역자들이었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은 본질적으로 호찌민을 포함한 베트남 민중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저항한 민족해방전쟁이었다. 


비단 베트남 전쟁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의 초과이윤 생산에 방해가되는 행위를 하는 국가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폭력행위를 가했다. 대표적으로 칠레를 생각해보자. 1970년 칠레에서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자 정치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됐다. 미국은 아옌데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전부터 이 정권에 대한 정치공작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아옌데 정부에게 경제제재를 가하여, 기본적인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게 했으며, 그래도 아옌데 정부가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자 당선된 지 불과 3년 만에 불법적인 쿠데타를 통해 체제를 전복했다. 그 결과 칠레는 17년 동안 피노체트의 군사독재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3만 명에서 6만 명에 달하는 칠레인들이 학살당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체제에 저항하는 국가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폭력을 선보였고, 불법과 파괴 그리고 정치공작 행위를 행했으며, 무수히 많은 전쟁범죄를 자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자행한 전쟁범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시아·라틴아메리카·중동·유럽·아프리카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그리고 미국이 지원한 국가들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미국이 세운 수많은 친미국가들 대다수가 친미성향을 가진 지도자에 의해 독재가 행해지고, 정치적 탄압과 학살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해방 이후 남한에 이승만 독재체제가 세워진 것도 이와 같은 세계사적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련의 정치인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1947년 9월 코민포름 연설에서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제국주의와 반민주주의 진영” 그리고 “반제국주의와 민주주의 진영”으로 정의한 것도 일리가 있는 판단이다.


앞서 간략하게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이런 체제전복 및 친미독재정권 건설 행위는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벨기에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콩고가 그러하다. 오늘은 미국과 벨기에 제국주의의 파트리스 루뭄바 정권 전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9세기와 20세기 당시 유럽의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대륙

아프리카 한 가운데에 있는 콩고는 19세기 말 벨기에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됐다.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트 2세는 20년 동안 콩고의 자원을 마음껏 수탈하고 콩고인들을 잔혹하게 착취 및 학살했다. 벨기에인들은 콩고인들에게 천연고무나 코끼리 상아와 같은 수익성 있는 상품을 생산할 것을 강요했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콩고인들은 손목이 잘리거나 처형했다. 이런 레오폴트의 통치로 인해, 콩고인 1,000~2,100만 명이 학살당했다는 추정치가 있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벨기에가 식민지 통치를 하며 학교를 건설했다고 하지만, 식민지인들을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복무하게 한 것일 뿐이었다. 심지어 콩고가 독립하기 2년 전인 1958년에 벨기에가 이 콩고인들을 동원하여 인간동물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당시 벨기에의 식민 통치가 얼마나 반인륜적이었는지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UN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한지 10년 뒤에 소위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벨기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셈이다.

레오폴드 황제: 그는 잔혹한 식민통치로 콩고인 2,000만 명을 학살한 인물로 악명높다.
벨기에 식민지 지배 당시 손모가지가 잘린 콩고인들: 벨기에는 이들을 식민지 지배하고 노예로 부리며 이런 만행을 일삼았다.

여기서 잠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하겠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당시 한국 언론은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지원한 것처럼 말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침략자 러시아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자”고 말했지만, 이런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먹혀들지 못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들은 놀랍게도 서구가 주장한 대러제재에 전혀 동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대러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들에게 있어서 유럽은 지배자이자 착취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위선으로 보일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가 바로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식민 지배 역사다. 

1958년 까지 이런 인간 동물원을 만들어 전시한 나라 벨기에
새장에 가둔 흑인 아이를 쳐다보는 벨기에의 아이들

2022년 말 독일 및 유럽에서 홀로도모르에 대해 러시아의 제노사이드라고 국가적으로 인정한 적이 있다. 홀로도모르는 1932년에서 1933년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기 소련에서 추진된 집산화 과정에서 일어난 대기근이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인 최소 100~300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물론 관련 추정치들의 경우 서구가 과장한 것들이 많다. 예를들어, 우크라이나 1,000만 명 학살설은 1930년대 당시 우크라이나 인구 증가 추세를 보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벨기에 또한, 이 홀로도모르에 대해 제노사이드라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벨기에는 콩고를 식민지 지배할 당시, 홀로도모르의 비극을 훨씬 능가하는 행위를 역사적으로 저질렀다. 따라서 지금도 벨기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인 위선을 가진 나라라 할 수 있다.


벨기에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당연히 콩고인들은 저항을 했다. 그리고 1960년 콩고는 파트리스 루뭄바를 필도로 저항운동을 펼친 끝에 독립에 성공했다. 파트리스 루뭄바와 콩고의 독립운동가들은 예상대로 친벨기에 세력 척결 및 벨기에인에 대한 보복 등을 감행했다. 벨기에가 수십 년 동안 콩고를 어떻게 통치했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이는 사필귀정일 것이다. 1960년 5월 선거를 통해 초대 총리에 취임한 루뭄바는 같은 해 6월30일에 열린 독립선포식에서 벨기에 보두앵 국왕의 심장을 벌벌 떨리게 만들었다. 독립을 허락한 제국의 박애와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껏 인자한 얼굴로 앉아 있던 보두앵의 면전에 대고 루뭄바는 “치욕스러운 노예제도를 끝낸 눈물의, 불의, 피의 싸움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콩고를 아프리카 전역을 비추는 햇빛의 중심이 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콩고의 독립기념일: 6월 30일이 콩고의 독립기념일이다.

그러나 벨기에는 식민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기에 자국민 보호라는 핑계로 다시 콩고에 개입했다. 그리고 벨기에는 과거 자신들에게 협력한 식민지 지배자들을 앞세워 내전을 부추겼다. 이에 맞서 루뭄바는 처음에는 국제연합에 호소했다. 당연히 친서방 국가들은 이를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소련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미국은 이를 절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1959년 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따라서 미국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승인하에 파트리스 루뭄바 암살 시도에도 관여했다. 앨런 덜레스는 파트리스 루뭄바에 대해 ‘아프리카의 피델 카스트로’라고 칭했다. 미국은 루뭄바의 소련지원 요청을 보고, 콩고에 친미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특히 루뭄바가 카스트로만큼이나 위험한 공산주의자라는 심증을 일찌감치 굳힌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살인청부업자를 동원해 루뭄바를 암살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반란군에게 체포당한 루뭄바
2022년 6월 30일 콩고 수도 킨샤샤에서 독립영웅 패트리스 루뭄바의 유해 매장식

CIA는 파트리스 루뭄바를 소련의 꼭두각시로 간주했다. 루뭄바를 암살하는 CIA의 임무는 시드니 고틀립이라는 인물이 맡았다고 한다. 그는 루뭄바를 직접 살해하기 위해 외교행낭에 보틀리눔 독을 넣은 유리병을 담아 콩고에 갔다. 1960년 9월 26일 콩고 수도 레오폴드빌에 도착한 그는 미국대사관으로 갔고, 암살 계획을 실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루뭄바 총리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으며, 그들이 준비한 독은 약효를 잃었다. 결국 고틀립은 보틀리눔 독을 염소에 탄 다음 콩고 강에 던져 버리고 아프리카를 떠났다고 한다. 비록 CIA의 초기 암살은 실패했지만, 중요한 건 한 국가의 지도자를 미국이 자신들 멋대로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CIA는 벨기에와 더불어 조제프 모부투를 루뭄바의 후임으로 내세웠다. 모부투는 한때 벨기에 식민당국의 협력자였다가 루뭄바를 만나 잠시 독립운동에 뛰어든 인물이기도 했다. 1961년 모부투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루뭄바는 그해 1월 17일 벨기에 용병에게 총살당했다. 그의 시신은 훼손되었으며, 금니만 남았다고 한다. 총살당할 때, 루뭄바의 나이는 35살이었다. 루뭄바가 총살당한 이후 콩고는 모부투가 다스리는 나라가 됐다. CIA의 역사를 다룬 재『의 유산(Legacy of Ashes)』의 저자 팀 와이너는 모부투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는 30년 동안 집권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부패한 독재자 중 하나였다. 다이아몬드와 각종 광물, 전략적 가치가 높은 금속 등 콩고의 그 막대한 자원으로 얻은 수입 수십억 달러를 착복하고, 권력 유지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미국이 내세운 콩고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
1982년 대한민국 우표에도 등장했다.

참고로 모부투의 경우 친미 독재자로서 대한민국의 전두환 전 대통령과도 사이가 좋았다. 1982년 6월 10일자인 대한뉴스 제1388호를 보면, 전두환이 방한한 모부투 세세 세코를 환영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이들이 만난 이후 전두환과 모부투의 얼굴이 등장하는 우표가 대한민국에서 나오기도 했다. 즉, 이런 식으로 미국은 아프리카에 자신들의 앞잡이를 내세워 친미 국가를 세웠다. 친미 국가가 세워진 바탕 아래 아프리카에서는 과거 식민지 당국에 부역하던 이들이 집권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루뭄바 제거 이후 모부투의 집권이다. 모부투는 과거 벨기에 식민 당국의 군 장교로 복무한 인물이었고, 루뭄바 정권 하에서 그를 배신한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은 아프리카 지도자들: 왠쪽부터 얘기하자면 토마스 상카라, 무아마르 알 카다피 그리고 파트리스 루뭄바다. 이들 모두 미국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아프리카에서는 독립을 이룬 다음에도 제대로 된 주권을 사실상 휘두르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여기에는 미국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루뭄바와 비슷한 예시로는 부르키나파소의 지도자 토마스 상카라가 있다. 토마스 상카라는 1983년 군사 반란으로 집권했지만, 1987년 CIA에 의해 암살당한 인물이다. 그는 아프리카의 체게바라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암살당한 이유도 루뭄바와 거의 비슷하다. 좌파성향을 가진 군인이었고, 서구의 독점적 지배와 자원 강탈을 반대하여 이를 국유화 하려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젊은 좌파성향의 군인 이브라힘 트라오레가 군부 쿠데타로 집권했고, 현재는 미국 및 서구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현재 재조명되고 있는 토마스 상카라: 2021년 국내 JTBC도 이에 대해  아프리카의 빈곤층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각광받고 있다며 보도한 적이 있다.

루뭄바와 상카라 그리고 트리오레를 보면 특징이 있다. 공통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아프리카를 착취했기에 이러는 것일까? 지난 2023년 쿠데타가 일어난 니제르의 상황을 보면 답이 명확해진다. 2023년 기준 니제르의 우라늄 광산 지분의 63%는 프랑스 측 오라노 회사(Orano corporation)가 소유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니제르 국영 광산회사 소유였다. 오라노의 최대 주주국은 주식의 45.2%를 소유하고 있으며,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을 충분히 좌우할 수 있다. 프랑스에게 있어서 니제르에서의 우라늄 채굴 사업은 국가적으로 매우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며 중요한 사업이다. 왜냐하면, 프랑스가 자국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해 매년 사용하는 우라늄의 20%가 니제르 광산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콰메 은크루마: 가나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이다. 그는 신식민주의에 대한 개념을 정의한 인물로 유명하다.

프랑스는 니제르로부터 많은 자원을 가져가지만, 니제르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은 저발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막대한 철광석, 금, 우라늄 및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인데도 니제르 인민들은 월 평균 소득이 51달러에 불과한 빈곤의 수렁에 빠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프랑스에게 막대한 우라늄을 저가에 제공하지만, 니제르 국민 7명 중 1명 만이 전력 혜택을 보고 있다. 니제르 인구의 1/5 미만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는 여전히 원시적인 자급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수준이다. 문해력 수준도 인구 기준 37%다. 즉, 니제르 인구의 63%는 문맹이라는 얘기다. 니제르는 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음에도 이렇게 착취 받았다.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국가들을 보면 하나같이 저발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본질적인 이유는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다. 1961년 가나의 독립운동가 콰메 은크루마는 1965년에 출간된 『신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최후 단계』라는 저서에서 신식민주의에 대한 이론적인 개념정리를 했다. 


은크루마에 따르면,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론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 그 경제체제와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 즉, 형식적인 주권은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국가의 정치경제 체제는 외부 세력이 통제와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은크루마는 신식민주의 체제에 대해 레닌주의적 관점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경제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신식민주의의 결과는 외국 자본이 세계의 저발전 지역들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착취를 위해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식민주의 하의 투자는 세계의 부국과 빈국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넓히고 있다.”

이브라힘 트라오레: 2022년 부르키나파소에서 쿠데타로 집권했다. 현재도 반미 반서방을 표방하면서 이들에 대항하는 정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은크루마의 정의에 따르면, 외국 자본의 통제 및 지배를 받는 신식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모순적이고 기형적인 구조에 의해 제대로 된 발전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를 유지하는 강대국에 의해 소위 제3세계나 경제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들이 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하고도 분명한 연결점이 있다. 물론 종속이론은 자본주의 강대국에 의해 종속되어 착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저발전 상태가 지속되야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서 한국이나 대만, 홍콩, 싱가폴 같은 나라들은 종속이론과는 다른 모습을 역사적으로 보였다. 물론 그 체제가 자본주의 국가 하에서 강대국에 의한 종속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저발전 상태로부터의 탈피라는 점을 보자면 종속이론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리카는 서구 세력에 의해 사실상 지배받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니제르나 부르키나파소를 비롯한 나라들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반서구주의적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023년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브라힘 트라오레가 한 연설을 인용하겠다.


“우리는 러시아를 아프리카의 한가족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가족입니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세계를 나치즘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아프리카 인민들, 우리의 할아버지 들은 나치즘을 제거하기 위해 강제로 유럽에서 추방됐습니다. 우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잊혀진 존재로서, 역사책에서, 문헌과 필름에서 조차도 우리는 나치즘에 대항한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중요한 역할을 망각하려고 합니다. 부르키나파소는 8년이상 오늘까지 가장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의 신식민주의, 제국주의 횡포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에 대한 서구의 노예화는 계속 부과되고 있고, 우리 선조들은 우리들에게 한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개혁하지 못하는 노예들은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하여 불쌍함을 느끼지 않는다. 부르키나파소의 인민들은 자신의 재발전을 위하여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투쟁을 결심했습니다. 이 투쟁에서 20개 종족의 용감한 인민들은 테러리즘에 대항하여 무장을 하기로 맹세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조국수호의용대(VDP)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VDP를 민병대라고 폄하하는데 놀랐습니다. 유럽에서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는 것을 애국자로 대우받는데 비교하면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정작 큰 문제는 이러한 투쟁을 하고 있는 인민들을 돕지않고 있는 아프리카 일부국가들의 수뇌부들입니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들과 한통속이 되어서 우리를 민병대라고 부르며 우리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정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아프리카 국가의 수뇌들은 제국주의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꼭두각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제 푸틴 대통령은 아프리카에 곡물을 보내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그 일에 매우 기쁨을 느끼며 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아프리카 수뇌들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포럼에 우리는 여기에 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인민들이 자급자족할 것이라는 확신이 안 선다면, 그리고 전쟁이 종식될 거라는 확신이 없는 한,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이미 이것을 달성한 사람들의 경험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와서 좋은 관계를 맺고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우리 인민들의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의 영광을 위해, 우리 인민들의 존엄을 위해, 승리는 우리 인민들에게,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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