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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전하구나. 그래, 잘 살고 있구나.

영화 <멋진 하루>

필자는 삶을 살아가는데 행운을 만나는 것보다는, 불운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연도 마찬가지라,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나쁜 인연을 마주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삶은 한번뿐이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스스로의 내구력을 알기도 전에 "견딜 만큼의 시련"인 줄 알고 섣부르게 마주쳤다가, 견디기도 전에 부서지는 경우를, 참 많이도 보아왔다.


그렇다면, 헤어진 전 남자 친구에게 꿔간 돈 갚으라고 찾아가야 하는 여자는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 걸까? 불운의 결정체 같은 이 상황에서, 이 짜증 나는 하루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희수"는 불운한 여자이다. 그녀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새로운 일을 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병운"과 헤어지고 나서 새롭게 만난 남자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가 부하직원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직장에서 실직해버렸다. 그리고선 그의 이별통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곤란했는데,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잘 됐다는 듯, 헤어져버렸다.


돈 나올 구석도 없는 와중에, 전전 남자 친구 놈인 병운이 빌려간 350만 원이 생각났다. 그래, 재수 없는 면상 한번 보고 돈이나 받아내자.


빌린 돈 갚으라고 찾아갔는데, 하. 이놈. 여전히 답답하고 재수 없다.

"병운"은 참 능글맞고, 여전히 철이 없고, 대책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참 이상한 책임감은 있다. 돈이 없으니 배 째라며 드러누울 법도 한데,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서 희수에게 돈을 갚아주겠다며, 하루 종일 희수와 같이 다닌다.


희수는 그런 병운을 보며 불쾌감이 늘어간다. 여전히 모두에게 친절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예의가 없는 그가 싫다. 그 와중에 반갑다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능청을 떨며 자신의 신변을 묻는 병운에게 짜증이 난다.

"넌 자존심도 없니?"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넌 정말, 여전하구나."

넌 여전하구나.

병운이 마냥 해맑은 데는 배경이 있다. "쟤가 뭐 고생한 적이 있어야지."라는 사촌의 말처럼, 그는 유복하게 자란 듯 보이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런 병운도 불운을 피하진 못했다. 희수와 헤어지고 1~2년 남짓, 그 사이에 새로운 여자와 결혼까지 했었지만, 사업이 기울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이혼하고 말았다.


그런데 병운은, 네가 상처가 뭔지 아느냐고 묻는 희수에게,

희수와 관련 없는 지난 슬픈 과거들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의외의 대답을 먼저 내놓는다.


"나랑 있을 때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 더 행복한 표정이라니. 그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내가 조금, 아팠지."

"널 만나는 동안 진심이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을걸?"


덤덤하게 툭툭 뱉는 말들이 희수를 푹푹 건드린다.


단골 제주 갈치조림 집이 없어지면 헛걸음에 화가 날 법도 한데, 병운은 그 와중에도 주인아주머니를 걱정한다.

희수는 불쾌하게 시작한 하루 동안, 수년간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몰랐던 병운의 모습들을 다시금 보게 된다.

바이크 동호회에서 수줍게 말을 건네는 두 남녀를 보며, 처음 자신에게 말을 걸던 병운의 모습을 떠올린다.
갈치조림 집이 없어져서 헛걸음한 게 화날 법도 한데, 주인아주머니의 안부를 먼저 걱정하는 그의 미련함과 착함을 떠올린다.
생판 남인 여고생에게 수년 동안 친구처럼, 이웃처럼 무심하게 챙겨주는 병운을 보며 그가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친절을 떠올린다.
스페인에서 막걸리 집을 열고 싶다는 그를 보며, 무모하지만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본인의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야.
어릴 적 소꿉친구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하면서도, 돈 좀 빌려달라며 멋쩍게 웃는 그를 보며, 그런 넉살과 따뜻함을 좋아했음을 떠올린다.
"나랑 있어서 불행해지는 모습, 보고 싶지 않더라고."라고 본인의 이혼 얘기를 하는 병운을 보며, 자신이 떠나보낸 전 남자 친구의 아픔과 책임감을 짐작한다.
그렇게 그녀는 병운의 모습을 통해, 그녀 스스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330만 원을 갚고, 남은 20만 원. 희수는 그 돈을 갚으라며 병운과의 작은 접점을 남겨둔다.

그것은 지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오늘을 멋진 하루로 변모시켜 준 병운에 대한 감사함, 일종의 수업료 느낌이다.


병운은 차에서 내린 후, 잠을 잘 집도 없는 신세 이건만, 스페인 상그리아를 시음하며 여전히 밝고 힘찬 모습이다. 희수가 없는 곳에서도 여전히 그는, 그대로이다.


"너, 여전하구나."


너, 여전하구나.

"너 왜 그렇게 사니?"에서,

"너 정말, 잘 살고 있구나."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


희수가 웃는다. 오늘 정말, 멋진 하루였어.

결국 희수가 병운을 찾아감으로 시작된 "불쾌한 하루"는, 병운이 희수의 거울이 되어주고, 현자가 되어주면서 "멋진 하루"로 마무리된다.


병운은 분명 스페인에서 막걸리 집을 차렸을 거라, 에필로그를 보지 않더라도 우린 믿는다.

희수도 그날의 멋진 기억을 바탕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잘 이겨냈으리라, 믿는다.


불운이라 믿었던 삶 조차도 능청스럽게 행운으로 바꿔나가는 병운을 보며,

아픔 없는 삶은 없지만, 희망 없는 삶 또한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 20대 초반, 한때는 병운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즐거운 사람. 무언가 초탈한 듯한, 매사에 너그럽고 좋은 사람. 유쾌한 사람. 대책 없고 무모한 삶.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20대 중반 이후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려고 태어났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 대상이 부모님이든, 내 아내가 될 사람이나, 자식에게든.


영화를 보면서, 병운 같은 사람을 가끔 부러워할 수는 있어도,

비슷하게 살고 싶진 않다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또한 내가 알던 것과 다르게 병운 같은 사람도 무언가를 희생하고, 아파하며 살아왔다는 걸, 역시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삶의 태도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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