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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0 5년 6개월 80000km 롱텀 리뷰

내 인생 첫 차였던 너에게

누구에게나 처음은 큰 의미가 있죠.

특히 남자에게 첫 차는 그 의미하는 바가 아주 남다릅니다.

운전을 한다는 것, 내 차가 생긴다는 것은

활동 반경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자취를 처음 할 때와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개인 공간이 생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첫 차를 어떤 것으로 고르느냐에서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무엇을 가장 동경해 왔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에서 현실적인 타협을 할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해마다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지고,

수많은 유튜버들이 신차에 대한 영상을 쏟아내며,

내연기관의 시대는 끝났고 전기차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이때,


80000km를 타면서 어떠했는지

무려 5년 6개월 만의 g70 롱텀 시승기이자, 사심 가득 리뷰입니다.



2018년 6월, 당시 만 27살이던 제가 이 차를 왜 선택했느냐를 묻는다면,

수입차가 단점이 어쩌고, 더 실용적인 차가 있지만 어쩌고... 그런 이유는 나중에 합리화를 위해서 말하는 이유이고,

예뻐서입니다.


정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당시 동급의 D 세그먼트 차량 중에 선택 가능한 것이 기아 스팅어, BMW 3시리즈, 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가 있었지만

저는 g70이 가장 예뻤습니다.

전시장에 가서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겨 버려서, 다른 이유는 크게 중요치 않았습니다.

2018년 6월 구매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반짝반짝 이쁘다.



G70이 어떤 차인지, 사심을 가득 담아 설명을 드리자면


우리나라 최초의 D 세그먼트 (소형 후륜) 세단이자,

제네시스가 단순히 차 종류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독립을 선언한 이후 나온 첫 차량입니다.

같은 프레임을 공유하는 형제 차량으로 기아 스팅어가 있습니다.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도 D 세그먼트 중 전 세계 최강자는 BMW 3시리즈입니다.

3시리즈와 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 렉서스 IS까지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현대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세우며 만들어낸 자동차입니다.

가장 스포츠성을 추구하면서도, 한국인의 특성상 세단으로써의 역할도 해줘야 하는 모델이기에, 만드는 게 여간 까다롭지 않았을 것인데

제네시스는 g70의 휠베이스를 과감하게 축소하여 3시리즈보다 더 작게 만들고, 국산 상용차 중 역대 가장 낮은 시트 포지션을 배치하며, 앞 뒤 휀더를 부풀리면서 스포츠성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물론 그 때문에 동반되었던 여러 가지 부작용 (아반떼보다도 불편한 뒷자리 공간, 너무 작은 트렁크 공간 등)이 많았고, 2019년에 출시된 3시리즈 신형이 뒷공간을 키우면서 약간 민망해진 면이 있지만,

주행 능력과 스포츠성만큼은 3시리즈 못지않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출처 - 유튜브 멜론머스크 채널 <G70 이야기>

3시리즈가 가장 기본 모델인 320i로 출고했을 때 당시 할인 적용을 하면 4천만 원 후반대에 구매가 가능했지만, LSD (limited slip differential)인 M 스포츠 디퍼렌셜이 빠져있었다면

G70은 가장 기본 모델인 2.0T 모델에서 LSD가 적용되어서, 코너 탈출이나 유턴 시에 소소하지만 일상에서도 운전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차량입니다.


물론, 그 돈 주고 국산차 살바에 500 더 주고 3시리즈 사라. C클래스 사라.

500 더 주고 중고 4시리즈, 5시리즈, E클래스 사라는 수많은 질문과 "그돈씨"를 감수해야 했지만,


운전 재미. 그리고 너무 아름다운 디자인.

그 2가지만으로도 다른 차를 선택할 이유가 없게 만드는 차였습니다.


그리고 출시 1년 뒤, 한국에서 차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가슴 웅장해질 만한 소식이 전해집니다.

출처 - 유튜브 모트라인 채널 <당신이 몰랐던 현기의 위상 변화 - 모두의 토크>
2019년, 모터트렌드 올해의 차로 G70이 선정된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동차 잡지에서 2019년에 존재하는 전 세계 모든 자동차 중에, G70이 가장 멋지고 성능 좋고 대단한 차라고 인정해 준 것이었죠.

당시 모터트렌드의 평을 보면 "그동안 전 세계에서 BMW 3시리즈의 아성을 넘으려 했으나, 그 레벨에 도달한 유일한 차"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판매량은 항상 세계 3~5위권이었지만, 단순히 싸고 괜찮은 차 많이 파는 현대/기아라는 이미지에서

아, 제네시스는 정말 대단한 차를 만드는 곳이구나.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준 첫 자동차가 바로 G70입니다.

당시 LA모터쇼 전광판을 본 한국 자동차 기자들이 모두 울컥하며 흥분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게 기억이 납니다.


이후, 255마력의 2.0T는 차치하고

370마력의 3.3T G70이 튜닝 후

BMW 고성능 버전인 M3, M4를 서킷에서 추월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실제 경찰에서 암행 순찰차로 G70을 사용해서 각종 스포츠카 과속 단속에 성공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유튜브 멜론머스크 채널 <G70 이야기>



5년 6개월 타고 다니면서 느낀 점 하나는,

아직 미혼이고, 뒷자리에 누군가 태울 일이 많이 없는 분들이라면, G70은 참 매력적인 차입니다.

G70 뒷자리는 아반떼보다 불편합니다...

(뒷자리는 정말 많이 좁습니다. 태울 수 있긴 한데 많이 미안해하셔야 돼요. 그냥 짐칸이라고 생각하는 게...)


2.0T 기준으로 4천만 원 중반 가격에 이 정도의 고속안정성과 빠른 반응속도, 엔진 RPM에 따른 즉각적인 미션 반응을 보여주는 차는 정말 없습니다.


500만 원, 1000만 원을 주면 더 좋은 수입차를 타실 수 있겠지만,

가격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대등한 성능을 보여주는 정말 훌륭한 차입니다.


지나치게 단단하지도, 너무 물렁하지도 않은 하체

소음은 적당히 걸러내고, 바퀴 잔진동은 적절히 실내로 들여보내주는 정숙함

빠른 코너 탈출, 밟았을 때 시원하게 나가는 가속력

LSD가 액셀을 지지면서도 제동 없이 밀고 나가는 험로 탈출 능력까지

작지만 매콤한 팔방미인입니다.


사실 프로페셔널 자동차 전문가, 드라이버가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서 D 세그먼트 세단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편안하고 일상생활에서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가끔 비어있는 국도나 고속도로를 보면

약간은 액셀을 밟고 뒷바퀴를 털면서 달려보고 싶은 소년이 마음속 깊이 들어있는,

그 옛날 사이버 포뮬러나 미니카 열풍 속에 한 번쯤 발을 담갔던 아이.

그렇다고 자동차에 1억이 넘는 돈을 쓰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그런 정도의 20대 후반 ~ 30대 후반의 누군가.


이제 저는 뒷자리에 누군가를 태울 때 불편하지 않은지를 고려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5년/10만 km의 보증기간도 끝나가며 이 차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차를 맞이하려 준비 중이지만

5년 6개월 동안  

저의 가장 힘들었던 레지던트 시절부터

1년 2만 km 가까이를 운전하게 만들었던 공중보건의사 시절

제 가장 가까이에서 저의 거의 모든 모습을 지켜본 녀석입니다.

서울의 막히는 도로에서도, 시골의 한적한 도로에서도 언제나 저의 든든한 두발이 되어주었던, 그런 애정 어린 녀석입니다.

미안하다 ㅠㅠ 잘해주지 못해서...

시골 근무지에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밖에 새워둬야 했지만

혹시나 상하거나 망가질까 때 되면 제때제때 엔진오일 갈아주고, 정기 점검 해주고, 필터 교환해 주며

나름 정성스럽게 이뻐해 줬습니다.


모두가 새로 나온 차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 함께해 온 이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해주고 싶었습니다.


5년 6개월, 긴 시간 동안

큰 사고 한번 없이 안전하게 나와 함께해 줘서

그리고 운전하는 즐거움을 알려줘서

나의 모든 처음을 함께해 줘서

나의 첫 차여서

고마워 G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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