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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식 Dec 14. 2023

떠나지 말고 옮겨라

인도에 있는 로렌스학교(www.thelawrenceschool.org)에서 전임으로 선생님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중에 하나는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을 떠나보내는 일이었다. 가르친 기간이 길수록 더 어려웠다. 학생들은 가정 사정 때문에 학교를 옮기기도 하고 10학년 과정을 마치고 이과가 강한 학교로 전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12학년을 마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졸업하고 떠났다. 특별히 그 학교에 가는 첫 해부터 태권도를 가르친 아이들 중에 3년의 시간이 흘러 졸업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의 졸업행사에 참석할 때는 좀 더 남달랐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학창 시절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그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 중에 오래도록 근무하는 선생님들을 더욱 존경했다. 

    교회와 학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 혹은 실제적으로 유사한 점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성도들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금교회를 세 가정과 함께 시작했다. 그리고 2년 안에 네 가정이 왔다. 모두 일곱 가정일 때 단독 예배공간을 얻고 설립예배도 드렸다. 그리고는 지난 1년 안에 두 가정이 떠났다. 사실, 성도들이 교회를 옮기는 것은 자유이자 권리이다. 그러니 막을 이유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이것은 이 땅에 모든 지역교회들이 이 일을 겪는다. 다만 우리처럼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이 더욱 실감 날 뿐이다. 

   나는 그것이 목회자와의 관계이든 성도들 간의 관계이든, 자신의 영적 필요에 대한 문제이든 자녀 교육에 대한 문제이든, 현재 다니는 교회를 떠나는 것을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줄곧 교회를 옮기라고 권면해 왔다. 그러한 고민을 나한테 말한다는 것은 이미 그 한계점에 가까이 왔거나 넘어섰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 교회에 계속 머물면, 달리 말해서 "내가 참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교회를 다니면 그것은 성도 개인에게도, 그 성도가 다니는 교회에도 결국은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긴 독은 결국 성도를 죽이고 교회를 죽인다. 성도를 죽인다는 것은 때때로 그 성도가 교회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서도 떠나는 경우도 있다는 의미이다. 교회를 죽인다는 것은 그 독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는 경우도 있다는 의미이다. 1991년 세례를 받은 이후로 지난 30년 동안 성도로 그리고 사역자로 경험한 여러 교회들에서 나는 그런 예들을 자주 봤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떠나지 말고 옮기라고 권면한다. 한 성도는 삶과 병행하는 신앙의 여정 속에서 다양한 지역교회들을 다닐 수밖에 없다. 직장 때문에 이사하면서, 집을 마련해서 그리고 자녀들 학교 때문에 등 현대 사회에서 1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교회만을 평생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언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지도 영향을 미친다. 집을 마련하고 자녀들이 장성하고 더 이상 직장 이동이 없다면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그 교회에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납득할 만한 이유들이 있을 때는 교회를 옮기는 것을 자타가 받아들이지만, 그밖에 관계의 어려움이나 교회 내에 문제가 있어서 교회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맞지 않아도 교회를 쉽게 옮겨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 옮기는 것 자체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나머지 옮겨야 할 때를 놓쳐버려서 서로 더 깊은 상처를 갖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지난 1년 동안 두 가정이 교회를 떠나면서 내 마음에 미안함이 들었던 대상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작은 교회의 특성상 몇 명 안 되는 아이들이 서로 아주 친밀한 친구들이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최근에 한 가정이 떠나면서 인사를 나눌 때 이제 또래 중에 혼자 남게 된 한 아이가 울었다. 이제 같이 놀 친구가 교회에 없다면서. 그래서 나는 지난 1월에 첫 가정이 우리 교회를 떠났을 때 아이들에게 성도가 교회를 옮기는 것을 "전학"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이 비유는 교회를 떠나는 가정의 신앙을 존중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역 교회를 넘어서서 한 성도를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다.

   이처럼 지역 교회를 옮길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회를 옮기는 것이 성도의 최후 의사표현이거나 절교를 통보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일정한 기간을 함께 보낸 것을 감사하며 축복하는  일이 되면, 영적으로는 보다 소모적인 일이 아니라 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해질까? 성도는 한 지역교회를 떠나면서 무엇을 스스로 물어야 할까? 한 지역 교회는 한 성도가 그 교회에 새롭게 나왔을 때 무엇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까? 나는 "신앙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한 학교에서 12년까지 다닐 수 있는 인도 학교와 달리 우리나라는 초중고를 거치면서 최소한 3개의 학교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양하고 많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경험한다. 세 번의 입학식과 세 번의 졸업식을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각이 성장 마디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어떤 학교를 "댕겼느냐"가 아니라 그 사이에 나는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성도는 한 지역교회를 일정기간 다니고 그 교회를 떠날 때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자랐는가?" 그리고 그 자란 부분에 대하여 그 지역교회에 감사를 표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혹 내가 그곳에서 자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한 성도가 그 교회에 옮겨왔을 때 그 성도가 언젠가는 그 교회를 떠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있는 동안 열심히 일만 시킬 것이 아니라 그 성도가 신앙적으로 자라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이러한 나의 주장이 혹자에게는 이상적으로 들릴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나도 여전히 성도가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데 성도가 나가는 것은 적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목사가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도 한 지역 교회의 목사로 이 교회를 떠날 때 스스로 물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자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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