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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면 우리의 삶이 되는, 포토북 속의 매그넘

80년의 시대를 기록한 매그넘 포토북, 그 위대한 서사를 만나다

by 이소희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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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은 사고의 공동체이자, 인간 공통의 특성,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호기심, 그것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려는 열망이 모여 있는 곳이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시의 초입에서 마주한 이 문장은, 앞으로 펼쳐질 여정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이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라면, 포토북은 그 찰나들을 한데 엮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혹은 한 사람의 농축된 삶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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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 고즈넉한 언덕길 위, 뮤지엄한미에서 열리고 있는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은 바로 그 특별한 이야기였다. 단순히 벽에 걸린 사진을 넘어, 사진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책의 물성을 느끼고 그들의 서사를 온전히 호흡할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여정을 함께 해보자.




여섯 개의 방, 시대의 숨결을 품은 여섯 개의 서사

전시는 잘 짜인 옴니버스 영화처럼, 여섯 개의 방을 지나며 각기 다른 시대와 주제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특히 ‘시대 속의 매그넘’ 파트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베르너 비쇼프의 한국전쟁 기록, 마크 리부가 촬영한 문화대혁명 시기 변화의 중심에 선 공산주의 중국의 모습, 아바스의 이란 혁명 취재, 수잔 메이즐레스가 담아낸 니카라과 혁명, 매그넘 사진가들이 목격한 9.11 테러와 팬데믹 시기의 전세제 현장까지 매그넘은 늘 역사적 전환점의 한가운데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전시장에는 포토북의 원본과 엄선된 사진이 전시돼있었다. 사진 속에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살아낸 이들의 표정, 당시의 상황들이 기록돼있어 희망과 고난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포토북의 기능이 시대를 기록하는 생생한 언론이자 역사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토마스 드보르자크의 포토북 『Taliban』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인간의 묘사가 금지되었던 시절, 탈레반 병사들이 비밀리에 스튜디오를 찾아가 꽃을 배경으로 찍은 매력적인 인물 사진을 찍었다. 이후 정권이 무너져 병사들은 사진을 찾아가지 못했다. 그 사진들을 통해, 이념의 뒤편에 가려진 청년이 보였다. 잘 나온 사진을 갖고 싶은 다분히 평범한 청년들의 맨얼굴을 마주하자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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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북, 사진가의 고뇌와 숨결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사진만큼이나 ‘포토북’이라는 매체 그 자체를 깊이 탐구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는 필립 할스만과 『Dalí's Mustache』이란 포토북을 출판했다. 이 포토북 원본 또한 전시에서 볼 수 있었는데, 두 천재 예술가의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유머 감각이 가득했다. 점프샷으로 유명한 사진 "달리 원자론(Dail Atomicus)"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전에 숱하게 마주쳤던 작품이라 반가웠다. 이 사진은 살바도르 달리가 공중에 뜬 캔버스앞에서 점프를 하여 공중에 뜬 채로 그림을 그리고 있고, 물이 공중에 뿌려지고 있으며 고양이 세마리가 점프하고 있다. 왼편의 의자 또한 누가 잡고 있는 것인지 공중에 떠있다. 이 사진은 합성이 아닌 모두 실사다. 모든 물체가 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기상천외하고 파격적이었다. 또한 뛰고 있을 때 자세나 표정에서 인간의 가장 본모습인 심리적 초상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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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또 다른 책, 『Jump Book』이었다. 할스만은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부터 리처드 닉슨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유명 인사들을 뛰게 했다. "중력을 이기는 순간, 사람은 자신의 표정을 통제할 수 없다. 가면이 벗겨지고 진정한 자아가 드러난다." 그의 말을 곱씹으며 점프하는 인물들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았다. 유쾌함 속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 인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사진가의 집요한 시선, 인물의 진솔함이 느껴졌다. 포토북은 단순히 역사처럼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 수도 있게 했다. 책을 ‘만드는’ 행위가 얼마나 혁신적인 창조가 될 수 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삶이 된 포토북, 메가 아카이브전


모든 여정의 시작과 끝에서 이번 전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났다. 천경우 큐레이터가 기획한 마지막 파트 ‘라이프-타임’과 전시장 초입의 ‘리딩룸’이다. ‘라이프-타임’에서는 포토북을 한 사람의 ‘일생’에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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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북은 사진가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오래되고 대체 불가한 방식이다. 전시실이나 손안의 액정 뒤에서 스치듯 보이는 방식과는 달리 인간의 몸과 연결되어 공간으로서 체험된다. 그리고 세계로 흡어져서 다수의 익명과 사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노화되어 가는 고유한 물성으로서의 생명력을 갖는다. 포토북을 만드는 일은 하나의 안무와도 같으며 정성을 들여서 집을 설계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우리는 손의 감촉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 무게, 심지어 비어 있는 페이지에서도 모든 리듬을 감지하면서 사진가가 바라본 수많은 타인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만난다."


천경우 기획자는 포토북 12권 속 시점과 삶의 순간들을 책의 실물과 함께 우리 모두의 '일생' 또는 '삶 속의 순간들'과 같이 넘겨보는 한 권의 책처럼 펼쳐서 구성했다. 한 장 한 장 선별된 장면은 책을 잡고 있는 손과 함께 사진으로 기록되여 전시된다. "선별된 각 페이지들은, 지난하면서도 찰나적인 우리의 삶 속 변화와 흐름을 대변한다" 전시실 전체는 한 권의 포토북으로 다시 엮였고, 관람자들은 그 속에서 누군가의 일생이나 자신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마주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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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룸에서는 80년간 제작된 매그넘 포토북들의 원본을 직접 한 장 한 장 펼쳐볼 수 있다. 거대한 메가 아카이브전인 것이다. 전시를 둘러보며 큐레이터가 포토북 중 한 장 씩만 선정한 사진에 흥미를 느꼈는데, 전시 초입의 리딩룸에서 포토북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결국 전시를 다 본 후 리딩룸에서 다시 중국의 문화혁명, 911테러, 미국의 재즈문화가 담긴 포토북을 살펴보았다.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직접 손에 들었을 때, 생생한 사회적 역사적 현장이 느껴졌다. 묵직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행위.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읽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삶의 무게와 사진가의 시선을 오롯이 감각하는 깊고 내밀한 교감의 시간이었다.


매그넘 포토스는 전 세계 대중과 소통하며,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 사진의 보고로 자리매김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타협 없는 탁월함과 진실, 존중, 독립성이라는 창립 이념을 지켜 나가고 있다. 지난하면서도 찰나적인 우리의 삶이 가득했던 전시장을 나서는 발걸음 위로, 묵직한 감동과 함께 세상과 사람을 향한 조금 더 깊어진 시선이 겹쳐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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