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의 뮤지컬> 책리뷰: 내 방 책상에서 즐기는 뮤지컬 프리뷰
요즘 뮤지컬 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인기 배우의 조합이 아니면 VIP석조차 비어있는 경우가 잦고, 기획사들은 앞다퉈 50% 할인을 내걸지만 이미 훌쩍 뛰어오른 티켓 가격의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나 역시 뮤지컬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관객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에 덩달아 날뛰는 티켓값 앞에서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특정 배우보다는 작품이 주는 고유의 힘을 믿고 따르는 편이라,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경험하며 그 세계를 넓히고 싶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부터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노트르담 드 파리』, 『킹키부츠』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무대를 만났지만, 여전히 만나지 못한 작품이 훨씬 많다. 『레베카』의 압도적인 댄버스 부인도, 『헤드윅』의 처절한 외침도, 세계적인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4대 뮤지컬조차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채, 나의 '보고 싶은 공연' 목록은 길기만 하다.
그런 갈증 속에서 윤하정 기자의 신간 『30일 밤의 뮤지컬』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내가 보고 싶었던 뮤지컬의 이름들이 차례로 등장했고, 잠시 잊고 있던 설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 거리 없이, 글을 통해 만나는 뮤지컬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뮤지컬도 결국은 한 편의 '이야기'이기에, 잘 쓰인 글은 무대 못지않은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단순한 감상평의 나열이 아니다. 10여 년간 공연계를 취재해 온 문화전문기자의 시간이 촘촘히 엮인 기록물이자, 한 편의 뮤지컬을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프리뷰'다. 저자는 작품의 기본 정보는 물론, 시대적 배경과 제작 비하인드, 배우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생생한 이야기,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과 음악(넘버)까지 세심하게 녹여냈다. 덕분에 독자는 단순히 줄거리를 읽는 것을 넘어,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와 인물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특히 책 속 저자의 문장은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을 보여준다. 가령 익숙한 고전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어릴 때부터 익숙한 콘텐츠라서 너무 얕게 치부한 작품의 심오한 깊이를 알게 한 겁니다. 이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릴 줄이야!"라고 고백하는 부분은, 작품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 또한 "뮤지컬은 제한된 공간에서 그날의 배우와 관객만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함께 만들어가는 특별함"이 있고, "일일이 찾아가서 보는 그 원시성이 '무대'의 매력"이라는 문장은 무대 예술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이러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당장이라도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레베카』는 유독 넘버가 강하게 각인되어 가장 보고 싶은 뮤지컬이기도 하다.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넘버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레베카 파트를 보면서 입에서 자연스럽게 넘버가 흘러나오고 있을 때 쯤, 바로 그 넘버를 볼 수 있도록 QR코드가 등장했다. 상상하고 있던 모습을 실제 무대로 바로 볼 수 있음에 뮤덕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뮤지컬에서는 무대와 세트장의 모습, 캐릭터의 복장 또한 중요한데, 이 책에서는 과감하게 이 책에서는 뮤지컬 무대 실황 사진을 양쪽 페이지에 걸쳐 크게 배치해두었다. 마치 공연 프로그램북처럼 사진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 작가의 글을 읽으며 무대의 생생한 모습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덕분에 책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레베카의 거대한 맨덜리 별장 안 댄버스부인와 나의 대치상황, 방안은 온통 칠흙같고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이 창밖으로 작게 보일 뿐이다. 이 사진이 타이밍 좋게 나와 무대가 얼마나 스산하고 무서운 분위기인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원래 넘버가 유명해서 넘버만 생각하고 보고 싶던 뮤지컬이었는데, 무대연출이 뛰어나다는 평론을 보고 더욱 무대가 궁금해졌다. 고전미와 함께 신선한 장치들이 어우러진다. 맨덜리의 해안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무대 세트 사이로 파도치는 영상이 매우 실감이 난다고 한다. 댄버스 부인과 '나'가 레베카의 방에서 대치하는 장면을 방 안쪽부터 순식간에 발코니, 파도치는 바다까지 연출하여 히치콕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오싹하게 연출한 점이 탁월하다고 한다.
레베카 뮤지컬의 가장 큰 특징은 캐스팅이 섬뜩하다는 것이다. 뮤지컬 제목인 레베카는 존재하지 않고, 주인공은 이름도 알 수 없는 '나'이다. 레베카는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데, 댄버스 부인은 '나'에게 안주인의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편인 막심 또한 레베카 때문에 고통받고, '나'는 스스로 끊임없이 레베카와 자신을 비교한다. '레베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관객들은 그럼으로써 끝까지 '레베카'만 기억에 남게 된다. 마지막 반전이 있는 레베카가 심리적으로도 매력적인 작품임을 확신하게 되어 한번은 꼭 보러가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
이 책은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작품들까지 좋은 평으로 소개하여, 편식하지 말아야 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김종욱 찾기』가 거의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랑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뮤지컬이 영화보다 10배는 더 재미있다는 평가에 어떤 이유 때문일까 하고 읽어보니, 역시 대학로 연극계의 보장된 빅재미 중 하나인 멀티 캐스팅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무려 1인 21역을 소화한다고 한다. 오만석, 엄기준, 원기준, 신성록, 김무열 유명한 배우들이 거쳐가는 등용문처럼 모두 이 작품을 거쳐갔다는 『김종욱 찾기』, 이 유쾌하고 연극의 정석 같은 작품을 진가를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도서 『30일 밤의 뮤지컬』은 '불후의 세계 4대 뮤지컬'부터 '우리 혼이 담겨 더욱 뭉클한 한국 뮤지컬', '2인극, 무대만의 특별함'까지 총 15개의 카테고리로 30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러한 분류는 독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뮤지컬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언젠가 나의 '보고 싶은 공연'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갈 그날까지, 이 책은 뮤지컬에 대한 흥미와 애정을 잃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훌륭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N차 관람 뮤지컬의 감동"이라는 책의 소개처럼, 이 책은 주머니는 가볍지만 마음만은 풍성한 우리 모두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뮤지컬에 이제 막 입문한 초심자에게는 친절한 가이드가, 오랜 시간 무대를 사랑해 온 마니아에게는 행복한 추억 노트가 되어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