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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대적인 클래식 예술가들의 공연

앨런 길버트 & 조슈아 벨 &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

by 이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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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클래식은 여전히 어렵다. '호두까기 인형'이나 디즈니 지브리 OST 오케스트라 정도가 익숙한 '클알못'에게 오케스트라 공연은 왠지 모를 진입 장벽이 있다. 하지만 10월 22일의 라인업은 달랐다. 그래미상 수상자가 두 명이며, 10년 만에 내한하는 독일 정통의 강자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무엇보다 '앨런 길버트'와 '조슈아 벨'이라는 이름이 포스터에서 제일 빛났다.


마치 영화계의 거장 감독과 전설적인 배우가 함께 내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 조합을 한국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런 호기심 하나로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하는 <앨런 길버트 &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클래식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무대를 읽는 열쇠: 두 거장을 만나다

공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이날의 두 주인공은 단순한 연주자가 아닌, 클래식의 '현재'를 이끄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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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앨런 길버트는 뉴욕 필하모닉 단원이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음악적 배경이 풍부했던 '음악 금수저' 출신이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유산이 아닌 '혁신'에 있다. 뉴욕 필 역사상 최초의 뉴욕 태생 음악감독이 된 그는, 전설적인 번스타인처럼 오케스트라에 현대음악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세대교체'를 주도했다. CEO부터 악장까지 공교롭게 앨런 길버트가 지휘자로 있을 때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전 세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채웠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주요 파트의 수석 및 단원을 대대적으로 교체하고 앙상블 개선에 주력했다. 결국 젊은 악단들이 역동석과 신선한 에너지를 가져왔다.


앨런 길버트_2 (c)Marco-Broggreve.jpg


그의 리더십은 '소통'과 '평등'으로 요약된다. 그는 지휘자 단상 위에서 군림하는 대신, 단원들과 '음악적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또한 그는 연주자들과 같은 높이에서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지휘자라 한다. 심지어 연주하는 모든 악보를 암보(암기)해서 무대에 오르는데, 이는 단원들과 완벽하게 교감하고 그들에게 음악적 신뢰를 주기 위함이다. 앨런 길버트는 오래된 악단에 현대적인 감각을 불어넣는, 가장 진보적인 마에스트로다.


조슈아 벨_2 (c) Shervin Lainez.jpg


협연자로 나선 조슈아 벨은 그래미상 수상자이자 40년 가까이 정상을 지켜온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천재'보다 '연결자'에 가깝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실제 연주자로 대중에게 각인되었고, 2007년 워싱턴 D.C. 지하철역에서 연주를 감행한 '지하철 실험'은 예술의 가치에 대한 전 세계적인 화두를 던졌다. 그는 장르와 청중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비르투오소'다. 기교로 압도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따뜻한 음색으로 '사람을 향해' 연주한다. 조슈아 벨은 기꺼이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친근한 완벽주의자라 불린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소통'을 지향한다.


조슈아 벨_1 (c) Lisa Marie Mazzucco.jpg


그리고 이 두 거장이 함께 선 무대는, 브람스의 고향 함부르크에 기반을 둔 '독일의 정통 강자'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다. 10년 만의 내한. 이 거대한 배경을 알고 나자, 무대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1막: 클래식의 틀을 깨다

안나 클라인, '요동치는 바다'


공연은 예상 밖의 풍경으로 시작했다. 첫 곡은 런던 태생의 현대 작곡가 안나 클라인의 '요동치는 바다'. 이 곡이 한국 초연이라는 사실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무대 그 자체였다. 지휘자의 지휘봉이 허공을 가르자, 정적 대신 격렬한 리듬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순간. 연주자들이 발을 구르고, 입으로 소리를 내며 합창을 시작했다. 악보에 갇힌 음악이 아니었다. 이건 거의 한 편의 뮤지컬, 혹은 원시의 제의처럼 느껴졌다. 흑인 여성 시인 오드리 로드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곡은, 문자 그대로 '요동치는' 에너지로 홀을 압도했다. 연주자들은 악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짓과 목소리까지 악기로 사용하며 '표현'하고 있었다. 클래식의 엄숙한 틀을 첫 곡부터 시원하게 깨부수는, 그야말로 '현대적인', 앨런 길버트다운 오프닝이었다



2막: 온몸으로 연주하는 자

브람스, 그리고 조슈아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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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격적인 오프닝을 기획한 앨런 길버트. 그의 혁신성이 1막의 파격이었다면, 2막은 그가 이끄는 '정통'이 얼마나 깊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곡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마침내 조슈아 벨이 등장했다.


그가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에 활을 긋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감동은 청각에서 그치지 않았다. 오페라글라스로 본 조슈아 벨은 '연주'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온몸으로 '음악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선율에 따라 희로애락을 표현했고, 몸짓은 음의 높낮이를 따라 춤을 췄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지금 음악이 어떤 감정인지 문외한이라도 알 수 있었다. '친근한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온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브람스의 고향 함부르크를 기반으로 하는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이 곡은, 마치 작곡가의 영혼과 연주자의 영혼이 만나 뜨겁게 대화하는 듯했다.



3막: 음악은 '함께' 흐르는 강물이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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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막,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은 이 공연의 완벽한 마침표였다. 2막보다 더 많은 단원이 무대를 꽉 채웠고, 소리는 한층 더 풍성하고 장엄해졌다.


이 곡이 왜 그토록 좋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 곡은 드보르자크가 브람스의 교향곡 3번에 감동받고, 동시에 프라하역에 도착하는 체코 시골 사람들을 보며 조국의 정체성을 담아낸, 뜨거운 열망의 산물이다. 그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특히 체코의 민속 춤곡 '푸리안트'에 기반한 3악장은 어깨를 들썩이게 했고, 청량한 플루트 솔로가 귀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광경'이었다. 격정적인 파트에서 수십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일제히 몸을 흔드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 같기도, 달빛에 부서지는 파도 같기도 했다. 조명에 반사되는 악기들의 금빛 물결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완벽한 예술이었다.


이때 깨달았다. 오케스트라는 '듣는' 음악일 뿐만 아니라 '보는' 음악이라는 것을. 음악은 음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푹 빠진 연주자들의 표정, 격렬한 손끝, 함께 호흡하는 몸짓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다.



영혼을 채우는 가장 현대적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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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호강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낯선 클래식의 세계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가장 뜨겁고 인간적인 이야기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졌다. 앨런 길버트는 지휘자 단상 위 높은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단원들과 같은 높이로 내려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인사했다. '소통'과 '평등'을 리더십의 핵심으로 삼는다는, '가장 현대적인 지휘자'라는 그의 평가는 빈말이 아니었다.


음악가와 지휘자의 이야기, 곡에 얽힌 사연들을 알고 보니, 단순한 선율이 아니라 깊고 풍성한 '이야기'로 들렸다. 클래식은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는 음악이라는 친구의 말에, 이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날 밤 롯데콘서트홀에서, 나는 분명 영혼의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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