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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창의성에 목마른가?

도서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보이지 않는 가치의 의미를 찾아서

by 이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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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창의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는가?


대부분 긍정적이고 멋진 단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창의성은 당연히 좋은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권장되는 필수 덕목으로 여겼다. 하지만 새뮤얼 W. 프랭클린의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원제: The Cult of Creativity)를 읽고, 그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이토록 창의성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열망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창의성’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오늘날 창의성은 문화 산업을 넘어 기업 경영, 교육, 광고, 과학기술, 도시 정책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핵심 역량으로 요구된다. 개인은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고, 사회는 그런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대체 ‘창의성’이라는 개념은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우리는 창의성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


미국의 역사학자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이 책에서 창의성 열풍의 기원을 추적하며 그 개념에 담긴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파헤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된 거대 대중사회에 대한 우려와 공포 속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대안으로 '창의성'이 주목받았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획일화와 관료주의로부터 개인의 자율성을 지키고, 차가운 자본주의에 인간적인 가치를 불어넣으려는 열망을 담기에 ‘창의성’은 더없이 세련되고 매력적인 개념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하고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1950년대 전후 시대에 ‘창의성(creativity)’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 그리고 당시 사회가 왜 그토록 창의성 개념에 열광하며 이를 정립하려 애썼는지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통찰은 큰 울림을 주었다.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스탈린의 강제수용소로 대표되는 획일화와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 속에서, 우파와 좌파를 막론하고 개인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심리학계를 필두로 한 다양한 분야에서 바로 이 ‘창의성’을 통해 사회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분석은 실체 없게만 느껴졌던 창의력이라는 개념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창의성, 개인의 잠재력인가 자본의 도구인가?

창의성은 고유한 개인이 지닌 잠재력이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 성격을 띠지만, 동시에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기도 하다. 창의적인 개인은 자기실현과 자율성을 추구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 기업들은 이들의 창의성을 활용해 혁신과 이윤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심리학, 기업 경영, 교육, 광고, 공학 등 각 분야에서 창의성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활용하려 했는지를 세밀하게 추적한다.


예를 들어, 심리학계의 창의성 연구는 단순히 지능지수(IQ)로는 측정할 수 없는 인간의 또 다른 잠재력을 증명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식별하려는 실용적인 목표에서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심리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가 소수의 천재에게만 집중됐던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평범한 다수가 지닌 창의적 잠재력에 주목하고 기회를 열어주리라 기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창의성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광고업계가 대중사회의 획일성에 맞서 더 새롭고 참신한 광고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대중에게 희망적이고 순수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는 분석도 인상 깊다. 창의성은 광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을 속이는 기술자’로 여겨지던 광고인의 이미지를 ‘진정성 있는 비전과 혁신을 이끄는 전문가’로 탈바꿈시켰다. 어쩌면 창의성은 소비 욕망의 창출을 인간적이고 고결한 행위로 포장하고, 자본주의를 비판마저 포용하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며, 심지어 반(反)소비주의적 메시지까지도 더 많은 소비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해온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창의적인 인재'를 찾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과 조직이 창의력을 핵심 역량으로 내세우며, 교육 현장 역시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 사고 함양에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창의성이 현대 사회의 인재상이 된 배경에는 이 책에서 파헤치는 깊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창의력'이 단순히 개인의 능력치가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가치이자 사회적 욕망의 반영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는 창의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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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창의성이 때로 의심스러운 사업을 미화하는 데 이용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으로 이어져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계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수입하고 소비하는 데 급급했을 뿐, 그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기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히 시대의 유행을 좇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그 개념이 어디서 왔고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 없던 나에게 이 책은 지적인 유희와 통쾌함을 선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 탄생하고 변모해 온 과정을 따라가며 그 실체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며 ‘창의성’의 가치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창의력이 손꼽히는 지금, 도서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는 우리에게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재해석할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AI 시대에 창의성의 의미는 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를 덮고 나면, 우리가 앞으로 창의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길이 조금은 더 명료해비길 바란다.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는지 그 근원을 탐색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당연하게 사용했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해보고 싶은 분, '창의성'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분,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창의성'이 지니는 의미와 미래를 탐색해보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창의성'이라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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