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책리뷰
혹시 효율성에 집착하는 일상 속에서,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애석하게도 필자는 게으름과 딴생각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만 해도 몇 번이나 딴짓을 했던가. 글을 쓰며 구글 검색창에 궁금했던 것들을 검색하고, 밀린 카톡을 보내고, 지저분한 책상을 치웠다. 현대사회는 직진형 인간을 선호한다. 목표를 정하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말이다. 반면 나처럼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우회로를 즐기는 사람은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효율성이 능력의 척도가 된 시대에, 나는 분명 모범생은 아니다.
사회는 느릿하고 여러 가지에 기웃거리는 나의 스타일은 환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단히도 집중하려 노력했다. 집중력 향상 앱을 깔고, 포모도로 기법을 시도해보고, 책상 위에 투두리스트 포스트잇을 붙여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다. 잠깐은 효과가 있는 듯 보이다가도, 결국 원래의 나로 돌아갔다. 성과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산만함'과 '게으름'은 부정적인 낙인과 더불어 ADHD라는 질병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잠깐, 아인슈타인의 죽기 직전 책상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라 불리는 그의 작업 공간은 온갖 서류와 책들로 뒤덮여 있었다.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산만함'의 전형이었다.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그 천재적 두뇌도 우리처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여놓고 살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정리된 책상은 정리된 마음을 의미하지만, 그렇다면 빈 책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만약 아인슈타인처럼 위대한 천재들도 산만했다면? 우리가 흔히 외면하던 산만함, 생각의 틈 속에서 창조적 영감이 싹튼다고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도서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우리가 몰랐던 산만함의 미덕을 일깨우며, 지적인 행복으로 이끄는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은 바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게으름과 산만함의 미덕'을 주제로 인문학 강연을 해온 머리나 밴줄렌 교수의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 그녀는 산만함이 인간 고유의 진화적 자산이며 창조적 사유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즉, 집중하려고 애쓰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집중력이 부족하다거나 산만하다고 자책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본래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존재이다. 먹이와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생존할 수 있는 영장류와 달리, 인간은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하고, 타인의 이야기도 듣고, 관계를 맺고, 예술을 창조하고,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산만함'이라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찰스 다윈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생애 대부분 과학 연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여유를 즐기는 법을 잊고 말았다. 좋아했던 시나 문학을 읽고 음악을 들어도 이제 아무런 감정과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아니라면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고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의 정신은 마치 '온갖 사실들을 분쇄해 일반 법칙을 끄집어내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지나친 집중력이 오히려 정신의 유연성과 창의적 사고를 해칠 수 있으며, 감정, 예술적 감수성, 통합적 사유가 사라지면 인간은 단순한 분석 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니체, 몽테뉴, 프루스트, 울프, 데카르트, 베이컨 등 탁월한 지성과 예술 감각을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창조적 영감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니체는 "하릴없이 이리저리 걸을 때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들이 떠오른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스위스 호숫가를 산책하다 '영원 회귀' 사상을 착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 역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침대에서 게으르게 누워 있다가 떠올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처럼 위대한 사상가들은 '무위의 시간'이 결정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몽테뉴는 직선적이고 단순한 사고가 지적 게으름을 유발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글을 '잡문'이라고 고백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유를 중요하게 여겼다.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 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때때로 게으름 속에서, 몽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하며, 느슨하고 유동적인 사유의 힘을 강조했다.
오늘날 신경학자들은 지나친 산만함이 뉴런의 정상적인 기능을 저해한다고 말하지만, 철학자 흄은 과도한 집중 역시 뇌에 과부하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반박한다. 엄격한 통제가 있어야 하는 과도한 집중은 실제로 우리의 사고를 편협하게 하고 자유로운 연상을 방해한다. 특히 과도한 전문화로 우리 사고가 특정 분야에 편중되면,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경험할 기회는 날아가 버린다.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집중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이고 과도한 집중은 우리 시야를 좁게 하고 정신을 황폐화할 뿐이며, 사고와 행동을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만들어 불확정성과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한다.
'유익한 산만함'은 즉각적인 만족처럼 뇌의 시냅스를 자극하지 않지만, 오히려 주의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산만함을 극복하려고 과도하게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그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유익한 산만함'을 오직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에 강력한 반증을 제시했다. 그는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지각과 경험 감각의 형식을 분리하는 "불일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능력과 무능력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감각적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과 놀이, 선형적 사고와 비선형적 사고 경계를 허물고 집중과 산만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평범한 일상을 독특하고 창의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몽상과 현실, 예술과 삶, 우연과 필연 등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서로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연하고 복잡하며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도서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위대한 지성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몰입과 산만함, 집중과 방황 사이에서 '균형'을 바로 잡아야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어쩌면 진짜 좋은 생각은, 생각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만함을 갈망하고 그것을 기꺼이 수용하며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목표지향적인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산만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단순히 산만함에 휘둘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산만함을 갈망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시간 낭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신적 혼란이나 시련, 심지어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권태 속에서 틀에 박힌 논리적 사고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일상 속의 사소한 것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털어낼 수 있다면, 일상의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사소한 적은 틈에서 삶은 의미를 가지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통념상 부정적으로 여겼던 '산만함'과 '게으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머리나 밴줄렌 교수는 이 작은 책을 읽으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기적들에 다시금 눈을 뜰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생산성에 매몰된 정신을 해방하고, 진정한 창조적 영감과 지적 행복을 경험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펼쳐 보길 추천한다.
그러니 산만함을 고치려 했던 모든 독자분들은 자책이 아니라 칭찬을 해보자. 산만함과 몽상, 사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일상과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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