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피알 Feb 25. 2022

이번에는 입장료 내고 훔쳐볼까요?

훔쳐라! 한 번도 없던 아이디어인 것처럼


저는 예술 작품들을 볼 줄도 모르고,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닙니다만 전시회는 자주 갑니다. 인스타용 사진을 찍으러 가는 건 물론 아닙니다.  제가 전시회를 고르는 기준은 (좀 민망하기 하지만)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이 있느냐 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한 가, 마지막은 굿즈가 다양한 가. 그렇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아이디어를 훔치기에 적합한 전시회인가를 선택하는 기준입니다.  제가 그동안 소개했던 서점, 마트, 몰은 공짜로 들어가 아이디어를 훔쳐오는 곳이었지만 (물론 구매를 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지만요) 전시회는 당・당・히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전시된 아이디어를 훔쳐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도 이상하게 보는 이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아이디어 도둑질에 최적화된 곳이란 말입니까!




DDP 아니면 대림미술관

상업적인 성격의 전시회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우선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DDP입니다.  ‘샤넬’, ‘루이뷔통’, ‘티파니’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폴스미스’ 모두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DDP보다 규모는 작지만 놓칠 수 없는 전시들이 열리는 또 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대림미술관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는데 저는 ‘디터람스’, ‘코코카피탄’, ‘린다매카트니’, ‘슈타이들’ 같은 이곳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훔쳤습니다. 이외에도 성수동으로 자리를 옮긴 디뮤지엄이나 청담동의 K현대미술관, 여의도 더 현대 서울의 ALT.1 등이 제 선택 기준에 맞는 전시들을 많이 개최합니다.  전시회에 걸린 아이디어를 훔치러 가고 싶다면 제가 지금 말씀드린 이곳들의 SNS를 팔로우하고 전시 일정을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리플릿에서 전시 소개보다 협찬사를 보다

코로나19로 최근 전시를 많이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더 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는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을 다녀왔습니다. 입장료 1만 2천 원 내고 당당하게 말이죠.  (원래 1만 5천 원인데 현대백화점 카드 20% 할인받았습니다.) 저는 전시 리플릿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협찬사 리스트. 왜냐고요? 이들이 어떤 이유로 콜라보를 혹은 협찬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브랜딩을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보는 게 아이디어 훔치기의 시작이거든요.  이 사진전은 노루페인트가 컬래버레이션을 했고, 우리카드, BRiCKIT 등이 협찬을 했습니다.  노루페인트의 아트 콜라보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느껴지니까요. ‘어느 봄날’을 주제로 한 이 전시회는 파스텔톤의 여러 가지 컬러로 공간 곳곳이 칠해져 있습니다. 당연히 노루페인트죠. 또한 항바이러스 페인트를 적용해 방역에도 힘썼다고 하네요. 사진 작품 속 스페인 공동주택 ‘라 무라야 로하’를 블록으로 구현한 공간도 눈에 띄었는데, 이것은 바로 협찬사인 DIY 모듈 시스템 가구 ‘브릭킷’이 만든 것입니다.  오프라인에서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요즘, 자연스러운 브랜드 노출과 체험을 전시회 협업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면...Why Not이죠? 아이.엠 택시는 회원 가입 인증을 하면 20% 할인을 해주더군요. 할인을 꼼꼼히 챙기는 MZ세대들은 아마 가입하겠죠? 봄날의 전시를 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아이.엠 택시 할인 쿠폰도 준답니다.  어디론가 떠날 때 요즘 택시를 탈 것 같지는 않은데...이건 쏘카가 더 어울리지 않나요? 

전시회 협찬사 리스트를 확인하는 것 부터 아이디어 훔치기가 시작된다.


전시회를 닮은 론칭 행사장 

신제품 론칭 행사장을 꾸미고 제품을 디스플레이하는 아이디어는 전시회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전에 열렸던 루이비통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는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비행기와 기차, 선박을 모티브로 루이비통의 트렁크를 디스플레이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차 창문에 대형 PDP를 설치해 기차가 달리는 듯 연출한 모습은 가성비까지도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트렁크를 소개하는 문구를 가방에 다는 네임택처럼 연출한 디테일까지...버릴 게 없다는 게 이런 거겠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 전통악기 가야금을 담은 트렁크였습니다.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에 한국의 문화와 최고의 셀럽을 접목시켜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포르나세티’나 ‘알레산드로 멘디니’처럼 예술 작품 같은 제품을 탄생시킨 디자이너들의 전시회는 티가 나더라도 그대로 베끼고 싶은 아이디어 천지입니다.  실제 화장품이나 향수 론칭 행사장에 가보면 이런 전시회에서 본 듯한 디스플레이를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전시회에서 훔친 아이디어는 오프라인 이벤트뿐만 아니라 매장을 구성하거나, 디스플레이용 집기를 제작할 때도 꽤나 유용하게 쓰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전시하는 아이디어는 고스란히 제품을 전시하는 아이디어가 되기도 한다


종이, 타이포, 인쇄, 그리고…

전시회에는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 외에 종이, 타이포, 인쇄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훔칠 게 많습니다. 세계 팝업 아트전에서는 작가들이 브랜드와 협업했던 다양한 팝업북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때 훔친 아이디어로 모 브랜드 미디어 론칭 행사 초대장을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작가나 작품을 소개하는 내용들을 어디에 어떤 소재로, 어떤 글자체로 적어두는지를 보는 것도 빼놓지 않습니다. 좀 오래되기는 했는데 종이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던 ‘How to Make a Book with 슈타이들’ 전에서는 브랜드 북이나 프레스킷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때 찍어 두었던 사진들은 요즘도 필요할 때 자주 꺼내 봅니다.  그리고 신선한 책의 향기를 표현한 향수 'Paper Passion'을 보고 여러 브랜드에 ‘향기 마케팅’을 제안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이다 향이 나는 향수, 맥주의 향을 닮은 캔들 같은 아이디어도 어쩌면 여기서 출발한 건 아니었을까요? 

공간 활용법뿐만 아니라 종이나 활자를 잘 활용하는 방법도 발견할 수 있다


인증샷의 개수를 세어보아요

인스타그램 인증 때문에 전시회를 찾는 자칭 인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관람을 하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희한한 건 그런 인싸들끼리는 전혀 짜증 내지 않고 서로 배려하며 사진을 찍을 때까지 잘 기다려주더군요.  전시회 흥행을 위해서는 어떤 포토존을 만들어 인증샷을 유도할지가 너무 중요합니다.  오가닉한 인증샷을 최대한 만들어내고 싶은 것은 사실 업종을 막론하고 다 같습니다.  그러니 전시회에 가시거든 인증샷을 부르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을 집중적으로 훔쳐보시기 바랍니다.  테레사 프레이타스 전에서 눈길이 갔던 건 내가 마치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인증샷을 찍을 수 있게 준비한 포토존들이었습니다.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Afternoon of Delight II’를 보면 바닷가 바위 위에 두 명의 여인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서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을 지운 사진을 포토월로 만들어 설치하고 똑같은 모자 두 개를 걸어두었습니다.  이런 디테일 정말 사랑합니다.  인상적인 포토존을 여럿 발견했다면 인스타그램으로 가서 해시태그 검색을 통해 소비자들이 어떤 포토존에 반응했는지를 세어보는 것도 잊지 마세요!


영감으로 채워진 작가의 작업실

작업하던 공간을 그대로 구현하거나 작가들이 좋아하던 것들로 가득 채운 작가의 작업실을 마련해놓은 전시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멋진 작업실을 와이드 하게 사진에 담고 싶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여기에서는 놓인 물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걸 추천합니다. 그들은 어떤 아이템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그게 어떻게 작품으로 연결되었을까 생각해보세요. 그 속에 나에게도 영감을 주는 아이템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유명 작가들의 작업실은 절대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은 제 책상과도 비슷한 것 같아 위안이 됩니다. 

숨은그림을 찾듯 영감을 찾게되는 작가의 작업실


본격적인 레퍼런스 채집

의사결정권자나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때는 100줄의 텍스트보다 단 1컷의 적절한 레퍼런스 이미지가 훨씬 효과적입니다. 만일 그 기획안이 오프라인 이벤트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짧게는 몇 시간 길어야 몇 주 정도 사용하고 부숴버릴 공간을 세우는데 제대로 설계도를 그린다거나 3D로 모형을 만든다거나 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시간이 없죠.  그러다 보니 “이런 느낌으로 하겠습니다”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지금 기획안을 쓰는 건지 이미지 검색을 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전 그럴 때 제 노트북의 ‘전시회 포토’ 폴더를 엽니다.  더 설명 안 해도 되겠죠? 아래 사진들은 제가 실제로 기획안에 레퍼런스로 활용했던 것들입니다.  전시회에는 아이디어가 될만한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카메라를 켜고 그저 채집만 하시면 됩니다. 제가 내부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회만 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꼭 훔치고 싶은 아이디어를 발견하셨다면 와이드 한 앵글을 가로 세로 하나씩 찍어두시고, 좌측과 우측에서 바라본 앵글, 클로즈업도 하나씩 추가해주세요. 나중에 기획안 PPT에 얹을 때 어떤 앵글이 설득력 있을지 모르니까 다각도로 준비해두는 겁니다. 인기가 높은 전시일수록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급적 평일 오전에 방문하셔서 관람객에 가려지지 않은 완벽한 레퍼런스를 채집하시길! 

무조건 많이 여러 각도로 찍어서 나만의 아카이브를 만들어 두자


아트샵에서 굿즈 트렌드 읽기

작품보다는 굿즈 때문에 전시회 가시는 분들 손? 솔직히 전시회를 보지 않고도(다시 말해 입장료를 내지 않고) 아트샵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전시회장을 좋아합니다. 예술의 전당이 그런 편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전시를 보고 기념엽서와 연필을 사서 모읍니다. 매번 도록을 사기는 부담스럽고, 엽서는 전시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보기에 가장 좋은 아이템입니다. 연필은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꺼내서 끄적이는 용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느낌적인 느낌이... 굿즈로 선택된 아이템들을 보면 요즘 MZ세대들의 관심사도 보입니다.  요즘은 다꾸 (다이어리 꾸미기) 관련 아이템들이 가장 많고, 인기도 높은 것 같습니다.  전시회 굿즈로부터 아이디어를 훔치고 싶다면 반드시 개최 초기에 가셔야 합니다.  인기템은 금방 Sold Out이거든요. 

아트샵 굿즈는 요즘 트렌드를 읽는 또하나의 방법이다


One More Thing…

프레젠테이션의 귀재 스티브 잡스는 PT를 할 때 마지막에 ‘One More Thing’이라는 슬라이드를 띄우고 마지막 서프라이즈를 주곤 했습니다. 전시회장을 나서면서 One More Idea는 없을지 눈을 떼지 마세요.  표를 사고 입장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놓쳤던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전시 마지막에 주관한 기업이나 참여한 스태프들의 이름도 확인합니다.  전시장의 공간 연출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아이디어를 훔쳐서 구현하고 싶을 때 연락을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마케팅이 너무 잘된 전시회라면 어떤 회사가 마케팅을 담당했는지도 알아두면 좋겠죠.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보게되는 참여 기업이나 스태프 리스트도 기억해두자.




제가 아까 아이디어를 훔치기에 딱인 전시들은 주로 DDP에서 많이 열린다고 말씀드렸죠?  오는 3월 4일부터는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이 DDP 디자인 박물관에서 개최됩니다.  이걸 홍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이디어 훔치기에 도전해보기 딱 알맞은 전시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레퍼런스를 채집하려면 평일 오전에, 굿즈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면 초기에 가시는 걸 추천드렸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가장 없을 것 같은 첫 주 월요일 첫 타임을 예매했습니다.  네이버에서 예매 가능하고, 심지어 무료입니다. 이제 남은 회차가 거의 없으니 서둘러 예매하고 멋진 아이디어들 많이 훔쳐보시기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글링보다 몰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