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사고 아이디어도 훔치기 좋은 주류마켓 추천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로 큰 인기를 모았던 '술꾼도시여자들' (개인적으로는 원작 웹툰 제목인 '술꾼도시처녀들'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보셨나요? 이 드라마 때문에 티빙 유료 가입자가 크게 증가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요,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한 달만 보고 끊었지만요^^) 그런데 이번에 이 드라마의 주인공 3인방이 tvN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산꾼도시여자들'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 등산에도 빠져 있는지라 이번 예능 프로그램도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한선화, 정은지, 이선빈 모두 '코오롱스포츠'로 그야말로 도배를 하고 나옵니다. 네, 다 PPL이죠. 드라마 '지리산'의 네파보다 스마트한 PPL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 오늘 이 프로그램이나 PPL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조만간 'TV 보면서 아이디어 훔치는 법'도 한번 써보려고 생각 중이기는 합니다.) 생활밀착형으로 아이디어를 훔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주변에 아이디어 훔치기 좋은 장소들도 많이 찾아보고 다니는 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술꾼도 산꾼도 좋아할 만한, 다시 말해 '술 쇼핑'을 하면서 혹은 '등산하고 술 쇼핑'을 하면서 아이디어나 영감도 채울 수 있는 장소 2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 저는 술은 좋아하지만 와인은 이제 마시기 시작한 초보입니다. 와인 전문가의 시각으로 쓴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보틀벙커, 웬만하면 차는 놓고 가자
오픈하자마자 와인의 성지로 등극한 보틀벙커. 지난 12월 23일에 오픈해서 단 3일 만에 매출 6억 원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와인을 파는 곳 중에 면적 하나만으로는 여기가 원탑 아닐까요? 론칭 기사를 보면 면적이 1,320㎡달하고, 판매하는 와인은 4천 여종, 시음을 할 수 있는 와인의 수도 80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잠실 롯데마트 1층 면적의 70%를 할애해 와인을 판매한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을 것 같은데, 일단 출발은 좋습니다. 덕분에 시외로 나가지 않고도 서울 시내에서 손쉽게 다양한 주류를 접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술꾼 도시 남녀들에게 큰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보틀벙커에 방문한다면 테이스팅 탭은 꼭 한번 이용해 봐야 하니까 웬만하면 차는 놓고 가는 걸로!
전지적 술꾼 시점에서 본 보틀벙커
1천 원에서 9천만 원까지! 한잔에 1천 원짜리 시음 와인에서부터 한 병에 9천만 원짜리 와인까지 모두 보틀벙커에서 만날 수 있는 와인의 라인업 입니다. 이제 막 와인을 시작하는 와린이나 와인에 돈 꽤나 쓰는 와인 애호가들들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가격보다는 다양한 라인업에 강점이 있습니다. 가격은 물론 백화점보다야 저렴하지만 가격차가 크게 느껴지는 편은 아닙니다. 단, 할인이나 프로모션이 많으니 잘 이용한다면 가격적인 메리트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한 와인을 구경하고 싶거나 특별한 선물이 필요할 때는 매장 제일 안쪽에 자리한 그랑크뤼(Grand Cru) 구역으로 가면 되는데, 솔직히 저는 보기에도 부담스러워 금방 나왔습니다. 워낙 갖춰진 제품의 종류가 많다 보니 다른 와인샵에 비해 내추럴 와인의 종류가 풍성한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술꾼들을 유혹하는 보틀벙커의 가장 큰 매력은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는 테이스팅 탭(TASTING TAP)입니다. 다양한 맥주를 원하는 만큼 마셔 볼 수 있는 탭하우스의 와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카드에(제가 갔을 때는 카드였는데, 팔찌에 충전했다는 후기들도 많네요) 원하는 금액을 충전한 후 마시고 싶은 와인을 골라 카드를 대고 버튼을 누르면 1회분 50ml가 추출되는 방식입니다. 한 병을 사기 부담스러운 가격의 와인을 살짝 맛보고 싶다거나, 실패 없이 와인을 구매하고 싶을 때 미리 시음을 해볼 수 있어 좋습니다. 간단한 안주거리도 구매할 수 있어 가볍게 한잔하기에도 괜찮습니다.
와인 이외에도 거의 모든 종류의 술들을 만날 수 있고, 술꾼들을 유혹하는 액세서리들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좀 더 수준 높은 진짜 술꾼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큐레이션 되어있는 와인 서적이나, 와인과 위스키 시향 키트 같은 것들을 한번 사봐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가격은 만만치 않습니다.
보틀벙커는 워낙에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고, 저녁 10시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퇴근 이후에 가볍게 들러 다양한 와인과 위스키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도시 술꾼 남녀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공간입니다. 그날 저녁 홈술 할 와인을 한병 픽해 갈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전지적 홍보·마케터 시점에서 본 보틀벙커
제가 오후 시간에 보틀벙커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매장에 교복을 입은 고객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전문적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곳인데 신분증 검사는 좀 철저히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심지어 교복을 입고 테이스팅 탭에서 시음을 하는 커플들까지 눈에 띄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지..." 하며 꼰대 기질이 막 발동하려던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교복을 대여해 입고 롯데월드에 놀러 온 성인 커플들이었습니다. 보틀벙커가 '어른들의 롯데월드'로 불린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식상한 표현이지만) 무릎을 치게 되었습니다. 탭하우스가 익숙한 MZ세대들에게 새롭게 와인을 즐기는 방법인 테이스팅 탭은 인싸력을 뽐낼 좋은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롯데월드와 붙어있는 위치적인 장점뿐만 아니라 결국 같은 회사라는 이점까지 잘 활용한다면 MZ세대의 놀이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MZ세대를 타깃으로 어떤 마케팅 활동을 펼칠지 기대해봅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신대륙 이런 전형적인 원산지에 따른 구분 이외에도 시즈널리티를 살린 다양한 큐레이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봄을 맞아 꽃내음이 피어나는 스파클링이나 로제 와인을 소개하는 전형적인 큐레이션도 있었지만 특이한 것도 발견했습니다. 가장 눈길이 간 건 '요즘 필요한 그 와인, 우먼파워'!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와인메이커와 그들의 와인을 소개하는 큐레이션이었습니다. 술꾼 도시 남녀들에게 여성의 날의 의미를 거부감 없이 생각해보게 하는 정말 좋은 어프로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엄마는 방학!'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들의 개학은 엄마들의 방학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방학을 맞아 브런치에 마시기 좋은 와인들을 모아서 추천한다고. 롯데마트를 찾는 고객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스마트한 큐레이션이 아닐 수 없죠.
보틀벙커는 대형마트 컨셉이지만 위스키 코너만큼은 프리미엄 한 느낌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마치 보석이나 시계의 전시를 보는 듯한 로얄살루트 한정판 보틀 디스플레이는 특히 돋보였습니다. 한편에는 조니워커 보틀에 카빙을 해주는 기계도 설치되어있습니다. 아재들의 술에서 MZ세대의 술로 거듭나고 있는 위스키 브랜드들도 이곳에서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등산보다, 닭갈비보다 세계주류마켓!!
여러분들은 춘천에 왜 가시나요? 막국수, 닭갈비 혹은 감자 빵? 저는 여행을 핑계로, 등산을 빙자해, 사실은 세계주류마켓을 가기 위해 춘천에 갑니다. 곧 '레고랜드' 때문으로 바뀔 것 같기는 하지만요. 보틀벙커가 등장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와인의 성지는 춘천 세계주류마켓이었습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보틀벙커를 벌써 몇 번이나 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 원픽은 이곳입니다. 춘천 IC 바로 앞에 위치해있어 춘천 여행을 하거나 등산을 한 후 들리기에 딱입니다. 춘천에는 블랙야크 100대 명산에 선정된 '삼악산', '오봉산', '봉화산'을 비롯해 '마적산', '부용산', '경운산' 등 산꾼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등산코스가 지천입니다. 특히 '삼악산'과는 차로 10분 거리라서 등산하고, 유명한 학곡사거리 막국수 한 그릇 먹고, 술 쇼핑까지 하면 완벽한 코스죠. 그런데 워낙에 규모가 크고 다양한 시설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주류 브랜드들의 마케팅도 활발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보니, 산꾼 홍보·마케터라면 아이디어를 훔친다는 목적을 하나 더해 당당하게(몰론 술을 사러 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도 당당하지 않을 이유는 일도 없습니다!) 떠나보시라고 강추합니다.
전지적 술꾼 시점에서 본 춘천세계주류마켓
3년 전인 2019년 4월 27일 춘천 동내면 학곡리에 문을 열었습니다. 무려 13,223㎡에 달하는 부지에 마켓 외에도 와이어드 카페, 레스토랑 와우, 반려견 놀이터, 주류창고 등이 자리를 잡고 있어 주말에 친구나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가기에도 좋습니다. 전체 부지에서 마켓의 규모는 660㎡라고 하는데 그 안에 4,500여 종의 와인과 다양한 술들이 빼곡합니다. 일단 제품이 많다는 게 이곳의 최고 장점입니다. 맥주, 위스키, 보드카, 진, 리큐르, 사케, 막걸리, 소주까지 없는 술이 없습니다. 특히 춘천이나 강원도에서 만든 막걸리나 수제 맥주도 여럿 만날 수 있습니다.
주류 창고 부지에 주류 도매상을 하시던 부분가 만든 곳답게 창고형 매장으로 꾸며져 그 많은 제품들을 부담 없이 구경하고 고를 수 있습니다. 특히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제품을 권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직원이 없다는 점이 저처럼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더 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비비노'를 켜고 천천히 오랫동안 와인 한 병을 골라도 눈치가 일도 보이지 않습니다.
혹자는 아무리 대형 주류마켓이라도 기름값 들여 거기까지 가면 뭐가 남냐고 하는데요. 물론 서울에서 춘천까지 가서 달랑 1병만 사고 온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와인 가격을 비교해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라벨에 혹해 집어 들었다 몇 년째 계속 마시고 있는 스페인 와이너리 까사로호(Casa Rojo)의 마초맨(Macho Man)은 보틀벙커에 비해서는 4~5천 원, 백화점 와인샵에 비해서는 1~2만 원 정도는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매달 특별하게 할인을 해주는 제품이나 이달의 와인세트 들은 더 착한 가격에 만나볼 수도 있고, 강원사랑 상품권이나 춘천사랑 상품권 같은 지역화폐로 결제를 하면 추가 10% 할인도 가능합니다. 이곳에서 구매한 와인은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 와우에서 콜키지 프리로 바로 맛볼 수도 있습니다. 와인이 레스토랑으로 가면 2배 이상 비싸진다는 걸 생각하면 최고의 가성비로 즐길 수 있는 셈이죠.
또한 다양한 주류의 한정판이나 굿즈를 증정하는 프로모션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와인이나 여러 술과 함께 즐길만한 치즈, 사퀴테리, 올리브, 견과류 등도 구색 갖추기 이상으로 다양하게 준비되어있어 원스탑 쇼핑을 하기에도 좋습니다.
전지적 홍보·마케터 시점에서 본 춘천세계주류마켓
술도 사고 아이디어도 훔치겠다는 목적으로 춘천까지 왔다면 이제 시점을 좀 바꿔서 한번 살펴보죠. 100살이 훌쩍 넘은 조니워커의 상징 '스트라이딩 맨'이 맞아주는 입구부터 주류마켓 답습니다. 특히 다른 마트와 달리 기네스가 새겨진 검은색 카트를 비치한 것이 맘에 듭니다. 술꾼들이라면 카트 손잡이를 잡을 때부터 벌써 설렐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둘 다 디아지오 브랜드인데 협찬일까요? 광고를 한 걸까요? (이거 정말 직업병입니다^^) 이런 디테일에서부터 주류 전문 마켓이라는 이미지가 확실하게 각인됩니다. 마켓 뒤편에 반려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까지 마련된 곳인 만큼 입구에 강아지 유모차도 준비되어있습니다. 요즘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에 달한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이들을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필수겠죠. 아무튼 입구부터 훔쳐갈 소소한 아이디어들이 많습니다.
마켓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멋진 시음존이 있었습니다. 마트에서 시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줄 수 있겠다 생각했었는데, 요즘 제품들이 많아지면서 이 자리를 다 차지해버렸습니다. 와인 코너로 가면 화이트, 레드, 스파클링 혹은 지역별로 섹션을 구분해놓은 것 외에도 '데일리 와인', '초보자들을 위한 스윗와인', '호텔 레스토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와인'같은 주제별로도 큐레이션이 되어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독특한 주제로 큐레이션을 해놓은 코너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와인도 이렇게 스토리가 있는 큐레이션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차원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춘천에 위치한 만큼 산을 좋아하는 술꾼들을 위해 산을 주제로 한 큐레이션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등산하고 마시면 좋은 와인이라거나, 어떤 산을 닮은 맛이라거나 혹은 유명한 산악인이 사랑하는 와인을 소개한다거나.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면 창고형 건문들 사이사이에 동남아 비치바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맥주 브랜드들의 테이블, 체어, 파라솔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데 제법 눈길을 끕니다. 주류 브랜드 담당자라면 한자리 차지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마켓 바로 앞에는 와인 교육장으로 만들어놓은 작은 건물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활용을 잘 못한다는 이곳에서는 주류 브랜드의 맥주 시음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브랜딩을 멋지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이미 갖추고 있어 주류 브랜드나 관련 제품의 이벤트 장소로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꼭 주류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바나 펍의 느낌을 살린 이벤트를 하기에도 좋은 공간입니다.
술꾼(혹은 산꾼) 도시 홍보·마케터 여러분을 위해 술 쇼핑을 즐기면서 아이디어도 훔쳐볼만한 곳으로 잠실 보틀벙커와 춘천세계주류마켓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어디를 가셔도 후회하지 않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후회가 된다면 아마 술꾼은 아닌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