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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주현 May 31. 2023

나는 왜 창업하려 하는가.

지금까지의 과정과 생각들.


“예술은 질문을 내놓지만, 디자인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라는 존 마에다(John Maeda)의 말처럼 디자이너의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반인들은 문제 자체에 집중하여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사용자 중심적인 디자인 접근 방식과 미적인 감각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하는 사고와 기술적인 능력을 가진다. 하나 대표적인 예시로 1945년 전후로부터 석유파동(1973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드센추리 모던의 시작을 알렸던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 한스 베그너(Hans Wegner, 1914~2007),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1902~1971)과 같은 디자이너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폐기된 군용 원단, 강철 등 통상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전쟁 폐자재를 활용하여 대담하게 사용하여 '결핍의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인류 역사에서 최대 인명 피해를 낳은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인들의 삶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꾸게 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큰 동기부여 없이 열심히만 학업을 수행하던 나는 어떻게 보여지고 느껴지며 기능하는지 고민된 디자인의 영향력을 몸소 느끼며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고찰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이 순간들이 나에게 있어 20살의 퀸텀점프(Quantum Jump)였으며, 많은 고민과 해답을 부단히도 노력하며 찾아나갔다. 사실 이 과정은 나를 지독히 괴롭혔다.  하나의 의문에 철학적 깨달음이나 해답을 얻기에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질 지경까지 치닫거나, 오히려 이성적인 사고들이 얽혀 머릿속에 생각들로만 시끌벅적해져 매일 밤 깊은 수면을 방해했다. 하나의 의문은 물방울처럼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산개했다. 가지처럼 뻗은 생각의 잔재들은 나를 지극히도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일상의 평정심이 깨어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는 해결되지 않은 미제들을 해결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무엇인가 내 머릿속의 코어를 찾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생각들은 머릿속 고통을 수반하며 아주 천천히 해답을 찾게 되거나 아직도 생각의 잔재로 남아있다. 하나 다행인 건 그 근본적인 코어, '하고 싶은 것'를 우연히 길을 수척거리며 걸으며 생각하다 번뜩 깨달았다. “아, 나는 브랜딩을 하고 싶었구나”.  


지금까지 해왔던 디자인은 뭐랄까, 목적성이 뚜렷한 행위는 아니었다. '이 걸 해내면 난 조금 더 성장해 있겠지?'라는 알량한 믿음으로 바쁘게도 지내왔다. 숱하게 해 왔던 디자인들이 사실 브랜딩의 일환이었다는 것도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다양한 브랜딩의 영역들을 탐구하며 생각을 좁히기 시작했고, 비즈니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었고 브랜딩이 기업의 가치를 품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일을 하고싶다.-는, 이제는 비즈니스을 향하게 되었다. 일순간, 지난 과거들에 겪었던 모든 괴로운 시간들과 무용했던 순간들과 이별하고 있음을 느꼈다. 차가 경적을 울려대고 공기를 휘가르며 나아가는 소리,  사람들의 전화 통화 이야기 소리, 온갖 잡다한 소리들이 난무한 도시 속에서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간 듯, 그제야 머릿속이 고요해지고 이제야 앞을 알 것 같았다. 온 열정을 하나를 위한 브랜딩에 쏟고 싶다. 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해내고 싶다. ‘창업’을 해야겠다. 그렇게 창업에 대한 첫걸음을 떼게 되었다. 내가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이자 목적, ‘문제를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창업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설레이는 일이다. 이제는 창업이 내가 가장 주체적으로 나답게 사는 방식이라는 것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가?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군주론]에서 ‘군주가 되는 것은 반은 운명 반은 역량이다.’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반은 초라한 인간의 능력 밖에 운이나 알 수 없는 힘으로, 반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늘 그래왔다. 나는 타고난 성향이 내가 생각하는 리더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다지 주목받는 것도 싫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다. 누군가를 이끌고 가르친다는 건 꽤 큰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걸 잘 알기에 하루 바삐 살아가는 나한테 그때 당시는 적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학생 때부터 반장, 부반장, 부장에서 대학교 과학생회장까지 이어져온 것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인가, 나의 선택이었겠느냐는 물음은 아직도 명확히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다. 대학교 2학년, MT 한 번 가본 적 없는 내가 MT를 기획해야 하는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라던가, 펜데믹으로 끊어진 교내 자치단체의 업무 체계와 직급체계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도 심혈을 기울였다. 시간이 흘러 좋은 평가들과 지지를 받으며 학생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리더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업무 자체는 높은 수준으로 수행했지만 리더가 가장 바빴던 것, 모두가 희생하는 리더를 걱정하는 조직 문화가 되었던 것에 깊이 통감하고 있다. 특히 일에 있어 집중한 나머지 조직력에 있어서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던 부분이 많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길지만 짧은 시간이었기에, 책임이 막중한 리더는 처음이었기에 많은 상황과 예의, 대처, 가치관을 배우면서도 좋은 조직이란 무엇인가.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인 것인가. 결속력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와 같은 끊임없는 생각에 잠식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책임감의 그림자는 길었다. 하지만 실수 없는 인생은 성공하기 어렵다기에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오늘날 조직에 있어 회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보다 안정적 이어 보이지만 실상 언제든지 바뀔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는 당연하게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가지며 혁신적인 문화를 추구하며 고객 경험을 중요하시하고.. 이러한 욕망들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조금 더 넘어서 바라보아 비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선한 영향력은 사실 우선적으로 스스로를 위한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이전에 먼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더욱이 이 시대에서 옳은 방향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지속적인 자애와 자기중심적 노력으로 자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선한 가치관이 선한 영향력으로, 선한 가치관에서 비전으로, 그 비전이 회사의 장기적인 성공을 추동하기를 바란다. 나의 비전이 곧 우리의 비전이 되며, 우리의 회사가 이 복잡하고 얽혀있는 사회문제 중 하나 라도 해결하길, 유의미하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내가 만들고자 하는 회사일 것이다. 아직 터무니없게 부족한 스스로지만, 비약하게 성장한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보며 앞으로의 나에게도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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