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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Jan 03. 2021

친구 어머니와의 전화

누군가의 부재감으로부터 시작된 관계

"반찬 필요하면 말하렴. 물론 너희 어머니가 알아서 잘 챙겨주시겠지만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꼭 아줌마한테 말해주라~ 건강 조심하고. 잊지 않고 전화 줘서 너무 고맙다."


새해를 맞아 친구A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친구A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기 시작한 건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원래는 친구A랑만 친하게 지냈을 뿐, 어머니께 넉살 좋게 찾아뵙는 사이는 아녔기 때문이다.


친구A 어머니를 처음 뵌 건 약 일 년 반 전쯤 친구A의 장례식장에서였다.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A의 소식을 듣고 어떻게 고향까지 내려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슬픔을 체감할 겨를도 없이 집에 있는 검은 옷을 뒤져 입고 가까운 시간대 표를 끊어 정신없이 내려갔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친구의 부고 전화를 받았을 때 마치 밥을 급히 먹었을 때처럼 갑작스러운 소식에 체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장례식장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도 이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냥 아직도 고향에 내려가면 친구A가 잘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저 연락이 뜸해졌을 뿐 아직도 친구A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친구A의 부모님을 처음 뵀다. 친구A의 얼굴이 고스란히 어머니 얼굴에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신기할 정도로 담담하게 나 포함 친구 한 명 한 명 테이블을 옮겨 다니시며 와주어서 고맙다며 인사해주셨다. 그러다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가신 몇 분 후, 방 밖으로 글로 써 내려갈 수 없을 만큼 애달픈 울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다음 날 나는 출근을 위해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그 뒤로 나는 왜인지 그날 내 앞에서 울지 않으셨던, 그리고 친구A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친구 어머니가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 어머니로부터 문자 한 통이 왔다.


'00아. 아줌마가 네 얼굴을 몰랐는데 프사 보니까 그날 네가 00이었구나. 서울에 있는 네가 소식 못 듣고 식장에 못 왔을까 봐 마음이 무거웠는데 왔다 갔구나. 다행이다.'


아마 친구A를 통해서 내 이름만 숱하게 들으셨을 뿐, 내 얼굴은 모르셨나 보다.


그 문자를 시작으로 나는 용기 내어 종종, 그러다 자주 연락드렸다.

단풍이 피면 단풍이 피었다고 괜스레 한번, 면접을 보러 가기 전날 내 앞에서 면접 연습하던 친구A가 떠올라서 한번, 겨울이 오면 감기 조심하시라고 한번, 갤러리 뒤적거리다 우연히 친구 사진이라도 발견했을 때 한번..

그렇게 문자 '한번'이 모여 어느새 전화까지 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다 저번 추석에는 꼭 다시 얼굴을 보고 싶다는 친구 어머니 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처음으로 친구A집에 놀러 갔다. 친구A의 집은 친구의 부재감 때문인지 어딘가 허전했지만, 또 내가 왔다고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웃음 덕분에 따뜻함으로 집안이 가득 찼다.


친구A 어머니는 내가 찾아뵐 때마다, 전화드릴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자기를 잊지 않는 내 마음이 고마워서란다. 나는 누군가에게 선뜻 먼저 연락할 만큼 사글사글한 성격이 아니지만, 작은 용기로 시작한 내 사소한 마음이 누군가에게 거대한 충만함이 됐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하게 인간관계가 이어질 때가 있다. 친구A 어머니와 내가 그렇다. 

대개 친구 가족과 친해지는 계기는 친구 집을 드나들다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와 친구A 어머니는 친구 살아생전 한 번도 만난 적 없다가, 친구가 세상을 떠난 그날 처음으로 안면을 트고 그러다 서로의 슬픔을 넌지시 달래면서 시작됐다. 친구의 부재감으로부터 시작된 관계인 셈이다. 앞으로 내가 결혼할 때,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 등등 살면서 자주는 아니어도 기쁘고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소식 달라는 친구 어머니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하늘에 있는 친구가 다 키워놓은 딸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엄마 걱정 많이 할 것 같다. 

앞으로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에게 전해지지도 못할 말을 삼키는 대신 친구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냥.. 계절이 바뀌었다고, 감기 조심하시라고, 요새 이런 게 유행이라고, 편찮으신 댄 없으시냐고.

별 이유 없이, 그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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