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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pr 12. 2021

용산행 기차

작별로 점철된 부모와 자식 사이

다음 달에 또 내려오겠다는 말을 뱉으며 힘차게 기차 안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손 흔드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서른 살이 되기까지, 배웅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기차에 몸을 싣는 일은 숱하게 많았지만 좀처럼 울컥하는 감정은 적응되지 않는다. 다시 또 열심히 살아내야겠다는 뻔한 다짐을 되뇌며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부모님 모습을 꾸역꾸역 눈에 담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학창 시절, 우리 가족은 긴 복도형 아파트에 살았었다. 어느 날 학원에 가기 위해 복도 끝으로 걸어가던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빠의 와보라는 손짓에 걸어왔던 복도를 되돌아갔다. 그런 내게 아빠는 꼬깃꼬깃한 만원 지폐를 쥐어주시며 엄마한텐 비밀이라며 장난스럽게 윙크하셨다. 

복도 끝으로 점점 멀어지던 딸 뒷모습을 보며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던 걸까.

아마 나보다 몇십 년을 더 사신 아빠는 아셨나 보다. 앞으로 살면서 딸의 뒷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재수한다고, 대학에 입학한다고, 시집간다고 등등. 적어도 나보단 인생을 더 많이 사신 아빠는, 부모와 자식 사이는 숱한 작별로 점철되어 있음을 아셨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외할머니를 점점 쏙 빼닮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검은색으로 염색할까?"라는 말을 넌지시 묻기 시작하는 아빠를 보면서, 우리는 서로의 인생시계가 어느덧 훌쩍 흘러버렸음을 체감한다. 맨날 붙어 있었다면 몰랐겠지만, 일 년에 몇 번씩 왕왕 내려가는 탓에 느껴지는 엄마 아빠의 세월의 흔적이 오늘따라 유난히 새삼스럽다.


언제부턴가 기차가 출발할 때 멀어지는 창밖 부모님 모습이 싫어서, 부모님이 역까지 차로 데려다줄 때마다 따라 내리지 말고 바로 가시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뒷모습 보이기 싫은 마음에 후다닥 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헤어지기 싫지만 그 시큰한 감정이 못 미더워 최대한 빨리 역 안으로 사라져 버리는 이 모순된 행동. 어째 나이가 먹을수록 더 애가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숱하게 타게 될 용산행 기차. 고향 기차역에서 용산역 열차를 타고 가는 길은 제법 익숙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용산행 기차를 탈 때마다 묵직하면서도 시큰하게 퍼지는 그 감정. 이 감정은 잠시 느슨해졌던 내 마음에 다시 박차를 가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시 열심히 살아야지, 더 잘 돼서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등등'.


다음날 엄마에게서 부재중이 와있었다. 아마 요 며칠간 재잘재잘 떠들던 외동딸이 사라지니 잠시의 공허함이 찾아온 탓일 거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듯 다시 전화를 걸어 재잘재잘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던진다. 평소 무뚝뚝한 엄마가 툭 던진 "요 며칠 수다쟁이 딸이 있다가 없으니까 허전하네"라는 말에, 나는 애써 "또 내려갈 건데 뭘~"이라는 말로 받아친다.

다시 서울에 올라온 나는 어제보단 조금은 더 옅어진 그리운 감정을 가슴에 안고 한주를 힘차게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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