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부부의 세계/부부유별夫婦有別
‘부부유별夫婦有別’ 즉, ‘부부에게는 구별이 있다’라는 말은 전통 유학에서 강조했던 오륜五倫 중에서 세 번째 덕목이지만, 오히려 현대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관계의 시작은 가족인데, 가족의 시작은 또한 부부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유별’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잘못 이해되고 있다.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부부유별’을 ‘가족 안에서 남녀 역할의 구별’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부부유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미 관심을 가졌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있었고, 그 의미를 구분하고, 도식화하기도 했다. 정약용은 이러한 해석을 계승하여 ‘부부유별’에 대해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고, 기존의 해석을 틀렸다고 단정지었다.
‘부부유별’은 《맹자》 <등문공> 상편 4장에 등장하는 ‘오륜(五倫)’의 세 번째 윤리 항목이다. 맹자는 주요한 인간 관계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부부의 관계도 그 중 하나이고, 순서상으로는 부자관계, 군신관계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 부부관계 다음에는 장유관계와 붕우관계가 이어진다.
성인이 이를 걱정하여 설에게 사도벼슬을 주어 인간 윤리를 가르치게 하였으니 부자간에는 친애의 정으로, 군신 간에는 의리를 주로하게하고, 부부 간에는 직분을 달리하고, 장유는 차례를 따지고, 붕우 간에는 신의를 맺어야 함을 가르친 것입니다.
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등문공> 상편 4장
오륜의 논의는 ‘인간의 도리’를 논하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것인데, 맹자는 부자관계에 ‘친함[親]’이 있어야 하고, 군신관계에는 ‘의로움[義]’이 있어야 하고, 장유관계에는 ‘차례[序]’가 있어야 하고, 붕우관계에는 ‘믿음[信]’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네 가지 관계에서 언급되는 네 개의 ‘덕(德)’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물론 현대에서 이 네 가지 덕을 이해하는 것은, 맹자가 활동했던 전국시대의 이해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이해하는 ‘친親’, ‘의義’, ‘서序’, ‘신信’의 개념은 전국시대의 개념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부부관계에서 지켜야할 도리로써 ‘구별[別]’의 개념은 지금도 오해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조선중기 이전에 이미 고착되어 버린 ‘부부유별’의 이해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었다. 간재 이덕홍艮齋 李德弘, 1541-1596은 하도河圖에 문자를 첨가하여 <부부유별도夫婦有別圖>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부부유별’의 ‘별’ 자字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개 ‘부부유별’의 ‘별’ 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천지 생성의 수와 합치한다. 한 남편과 한 아내가 각기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다른 사람과 난잡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하나의 의미다. 비록 부부가 한 집에 함께 산다 하더라도 남자는 바깥채에, 여자는 안채에 있으면서 안팎이 서로 어지럽지 않는 것이 또 한 가지 의미이다.
大抵有別之別, 有二義, 合天地生成之數. 而一夫一婦, 各共居一室, 更不亂於他人, 此一義也. 雖夫婦同居一室, 男外女內, 內外不相褻, 亦一義也.
《간재집艮齋集》 <부부유별도>
지금도 ‘부부유별’을 이해할 때, 두 번째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덕홍은 당시까지 상식처럼 여겨졌던 기존의 ‘부부유별’의 의미를 두 번째로 소개하고 있다. “남자는 바깥채에, 여자는 안채에男外女內”로 정리되는 기존의 ‘부부유별’의 의미에 앞서, 이덕홍 자신이 생각하는 ‘부부유별’의 본의本義를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부부유별’의 원래의 의미를 확실히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덕홍이 제시한 ‘부부유별’의 본의는 ‘남외여내男外女內’와 같은 부부관계 안에서의 ‘구별’이 아니라 부부관계 바깥에 있는 다른 사람과의 ‘구별’이라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조선사회에서 ‘부부유별’은 ‘남녀유별’과 같이 부부 사이에 있어서의 ‘차이’에 더 주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성리학의 이기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근원이 되는 하늘과 땅이 바로 부부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윤리에 있어서 부부의 관계는 가장 근원적이며 매우 중요하다. 정약용의 ‘부부유별’에 대한 이해는 이덕홍이 구분한 ‘부부유별’의 첫 번째 의미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정약용이 유배 말기에 저술한 《소학지언小學枝言》에서 ‘부부유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부부유별’이란 각자 그 배우자를 정해서 서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다. (…)《예기》에서 “폐백을 가지고 서로 만났으니 그 구별을 삼가 드러낸 것이다. 남녀의 구별이 있게 된 뒤에야 아버지와 아들이 친하게 되고, 부자가 친하게 된 다음에 의가 생겨나고, 의가 생겨난 다음에 예가 일어나며, 예가 일어난 다음에 모든 일이 안정된다. 분별이 없고 의가 없는 없는 금수가 사는 길이다”라고 했다. 또한 “백성에게 남녀의 구별을 드러내어 백성으로 하여금 혐의가 없도록 한다”라고 말했다.
夫婦有別者, 各配其匹, 不相瀆亂也. (…)禮曰執贄以相見, 敬章別也. 男女有別然後父子親. 父子親然後義生, 義生然後禮作, 禮作然後萬物安. 無別無義, 禽獸之道也. 又曰章民之別, 使民無嫌.
《소학지언》
정약용은 부부유별에 대해 “각 배우자를 정해서 서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다.各配其匹 不相瀆亂也”라고 정의하면서, 이어지는 《예기禮記》의 자료들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들어 쓰고 있다. 이어서 정약용은 다른 《시경詩經》에 대한 해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더욱 타당하게 만들어 간다.
《시경집전詩經集傳》에 ‘물수리는 정분이 지극하면서도 구별이 있다’라고 하며, 또한 ‘네 마리가 함께 살거나 한 마리만 머무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각각 정해진 짝이 있다’라고 하였다. 《예기》에서는 “혼인의 예는 남녀의 구별을 가누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안과 밖의 구분을 엄격히 하는 것을 ‘부부유별’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이다.
詩傳稱睢鳩摯而有別, 亦謂其乘居而匹處, 各有定配也. 禮曰昏姻之禮, 所以分男女之別也. 今人以嚴內外之分, 爲夫婦有別, 誤.
정약용은 ‘별別’이라는 글자가 다른 경전에 대한 해석에서도 ‘정해진 짝[定配]’이라는 용례로 쓰여진 것을 주요 근거로 삼아, ‘부부유별’의 ‘남외여내’와 같은 ‘안과 밖’의 구분이 아니라, ‘정해진 짝’에 대한 구별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감하게 ‘내외지분內外之分’의 ‘별’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