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말은 언제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중요한 말일수록 망설이고 고민하다 꼭 옆으로 새곤 한다. 상대를 향한 말이 엉뚱한 표현으로 점철되면 결국 자책을 부르게 되고, 사과를 할 때도 꼭 그렇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불편한 망상을 동반한다. 일상에서 혼잣말(비밀스러운 일인극을 하기도 한다) 형태로 존재하다가, 특정한 접점이 생기는 날이면 밖으로 퐁퐁 솟아나게 된다. 그러나 말의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을 때는, 어수선하게 방황하다 이내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들어간다. 매번 그렇게 불발하는 폭죽 같은 다양한 말이 있다.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연대는 생각보다 강렬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라, 나는 쉽게 말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거리를 지키는 것, 사람을 존중하는 유일한 법은 존대에서 나오고, 존중이 결여되고 가벼이 여겨지는 발언은 왜곡된 채 전달되어, 제대로 마주 보고 풀어낼 기회를 놓치는 순간 체한 듯 얹히게 된다. 시간이 오래 흘러 새삼 꺼내기도 어려운 이야기들, 이제 와 살며시 마음을 건네도 결국 나의 평안을 위한 변명뿐인 이야기들이 쌓여, 그렇게 미움받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런 감정들이 쌓이다 보니, 말보다 글로 생각을 전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워낙 말주변이 없고 성급하게 내뱉은 말에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는 탓도 있지만, 글을 적는 순간에는 나의 글이 전달될 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레 글을 적고, 고치는 모든 과정에는 마음이 담겨있다.
글이 가진 힘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차가운, 사람의 체온과 같다.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데, 과연 당신의 글에는 손의 온기가 옅게나마 남아있을지, 또 나의 글은 당신에게 어떤 온도로 다가갈지, 글을 적을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완벽한 형태의 글을 적어낸다는 것이 또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온전하다고 여겼던 생각도 막상 글로 적어내면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껏 다양하게 옮긴 생각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이 거의 없으니.
하물며 누군가에게 전달이 되어야 하는 편지의 경우 다른 수단보다 정성을 쏟을 시간을 조금 더 마련할 수는 있어도, 진심을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언어를 통해 마음을 완벽하게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저, 열심히 써 내려갈 수밖에.
- 오늘도 편지를 써. 깜빡거리며 켜진 마음을 종이에 꼭꼭 눌러 담으면, 글씨 하나하나 별빛처럼 반짝거리며 너에게 닿아. 너의 피부에 닿은 나의 별빛이, 너의 체온과 같은 온도이길 바라. 나의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