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같이 일하게 된 분들은 모두 나와 나이차가 많이 났다. 나름 직장을 늦게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영락없는 막냉이 노릇을 하게 되었고, 서른이 가까워진 나이에 ‘애기’ 소리를 들으며 서툴게 일을 익혀나갔다.
아침마다 손이 크신 여사님께서 바리바리 음식을 싸 오셔서 오손도손 모여 고구마니 만두니 하는 간식을 먹으며 계절별로 바뀌는 농사 이야기와 ‘그땐 그랬지-’ 하는 옛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시골의 작은 사회여서인지 때로는 따가운 잔소리를 함께 듣기도 했다.
어쩌면 지나친 관심이나 흔히 말하는 라테 이야기(나 때는 말이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같은 말을 해도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에, 내게는 그 꼰대 이야기에 뭍은 일종의 철학이랄까, 미학이 느껴졌다. 단순한 자기 자랑이나 가르침을 가장한 하대가 아닌 시시콜콜한 잡담, 그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 삶의 지혜를 듣는 매일 아침은 마치 특권처럼 느껴졌다.
-무수 전은 무를 소금과 함께 푹 삶고, 건져서 잘게 다진 다음 물을 넣지 않고 밀가루와 반죽해 부친다.
-마늘은 그냥 비닐을 덮어도 되지만, 양파는 활대를
걸고 비닐을 덮어놔야 한다.
- 벽에 물기가 있는 수건을 널어놓으면 가습기가 필요 없다.
-병아리는 20일 지나면 성계가 된다.
-만세 개구리를 먹지 못하면 오므린 개구리를 먹으면 된다.
-인생사는 굿을 볼 필요가 없다. 굿이 아니라 구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하면서 자랐다. 지금 넘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넘어지게 된다.
어쩌면 다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 쉽게 느낄 수 없는, 따뜻한 마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