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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in Winter Nov 28. 2023

핀란드 숲

모두에게 주어지는 초록색 금


눈을 감고 내가 숲이라면 어떨지 그려 본다.

인적 드문 호숫가에 자라난 작고 아담한 숲이 있다. 숲에는 얇고 곧게 뻗은 나무가 산다. 나무의 잎사귀는 작지만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손을 흔들며 시원한 파도 소리를 낸다. 땅에는 정리되지 않은 채도 낮은 초록의 이끼가 가득 메우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이 나 있지 않지만 어디로 가든 푹신푹신한 이끼가 반겨준다. 가끔 딱딱한 바위도 불쑥 튀어나와 있다. 조금 거친 그 돌은 잘 보면 앉아서 쉬기 좋은 반질한 면도 가지고 있다. 이름과 향기를 드러내지 않는 작은 꽃들과 풀들이 가득 자라고, 여름이면 새콤한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버섯이 피어나 숲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다. 벨레들도 조용히 우는 고요한 이 숲에는 부끄러움 많은 곰 가족이 산다. 겨울이면 숲에 살고 있는 만물이 하얀 눈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들고, 나무는 달빛을 받고 조금 자란다. 이 숲에서는 아무도 서두르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다.



나라는 숲을 한참 그려놓고 보니 핀란드 숲과 닮았다. 그래서 내가 핀란드에 와서 살게 되었나 보다.


핀란드에서 숲은 모든 이에게 무료로 주어지는 보석과 같다. 나의  선생님인 오이바 아저씨는 숲이 ‘초록색 이라고 말했다. 라플란드에서 나고 자란 아저씨는 나에게 나무와 , 먹을  있는 열매 이름, 순록이 숲에서 살아가는 방법, 숲에서 나무와 개미집을 보고 남쪽이 어디인지 찾는 방법, 장작을 패고,  지피는 (핀란드 숲에는 장작을 지필  있도록 마련된 쉼터  오두막이 어딘가에  있다.), 장작불에 소시지를 구워 먹을  나무 꼬챙이 만드는 방법  숲과 친구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아저씨 덕분에 숲이 내어주는 초록의 원석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있었다.




숲에서 자연이 키운 열매는 숲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사유지가 많은 핀란드 숲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있도록 ‘모든 이의 권리(Jokaisenoikeudet)’라는 법까지 재정되어 있다. 내가 소유한  한평 없어도, 핀란드 땅에 있는 모든 숲에서 철마다 자라고 져버리는 베리, 버섯,  등을 채취할  있다. 심지어 심마니처럼 아주 많이 채취해서 판매한 수익금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항상  자리에 있는 숲의 나무와 , 이끼, 동물 등은 취할  없다.


베리가 한창 열리는 여름부터 가을 초입까지 사람들은 다람쥐가 겨울을 준비하듯이 열심히 양식을 모은다. 짙은 남색의 달큼한 빌베리, 투명한 붉은빛이 나는 향기로운 라즈베리, 금빛 구름과 같은 클라우드 베리, 버건디색의 새콤한 링곤베리, 반짝이는 붉은 루비 귀걸이 같은 레드 커런트를 알알이 따서 집에 차곡차곡 쟁여둔다. 겨울을 준비하는 한국인에게 김치 냉장고가 있다면, 핀란드인에게는 따로 분리된 냉동고가 있다. 열심히 모은 베리와 버섯을 작은 통에 소분해서 냉동고에 가득 채워 놓으면, 다음  여름까지 마음이 든든하다.




숲은 어디에나 있어서 마음먹지 않아도 언제든 찾아갈  있는 곳이다. 해외 살이가 외로울  가까운 곳에 숲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생각이  ,  속을 걸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고향 바다의 파도 소리 같다며 향수병을 달랬다.


겨울의 끝자락 반년이라는 너무 길고 어두운 겨울이 힘들어서 도저히  되겠다 싶을 , 무거운  아래에서도 가뿐히 살아남아 다시 새순을 피어내는 숲에 있는 자작나무 잎을 보면 너무나 대견해서 내가 겪는 고충은 별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날 때쯤, 걱정으로 잠을 설치다 나간 새벽  산책에서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랗고 영롱한 빌베리를 줄줄이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공짜로 주워 담은 영롱한 베리 대여섯 알에 좌절하지 않을 용기가 났다.


정말로 숲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기를 낳고 이유 없이 우울할 때는 거의 매일   숲을 걸었다. 겨울에 태어난 작은 아기가 매일 자라나는 모습과 앙상하던 숲의 녹음이 짙어지는 모습을 함께 보는 것은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는 감동과 에너지를 주었다.


숲이 있었기에 외로움과 슬픔, 고통, 고민, 우울과 친구   있었다.




이제 숲을 생각하면  다른 내가 그곳에 항상 자라고 있는  같다. 내가 애써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아도 항상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자란다.


나는 나를 언제든지 산책할  있다.

게다가 숲이 주는 시원한 향기, 나무가 춤추는 소리, 푹신한 이끼의 감촉, 새콤 달콤한 열매의 , 향긋한 버섯을 발견하는 기쁨.  모든 것이 공짜이다. 만약 미운 사람이 있다면, 밉게 자란 작은 숲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럼  사람도 조금은 맑아 보인다. 모든 이가 마음에 작은  하나쯤 품고 있다면 세상이 조금  청정해지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핀란드산공짜행복 #읊기위한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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