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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20. 2022

제16화 - 고속도로이야기

경부고속도로는 '계획된 졸속' 공사였다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서울의 제3한강교에서 시작해서 종점인 부산의 동래나들목까지 총연장 428km의 4차선 도로 전구간이 완공된 것이다.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연장은 416km다. 한남대교에서 양재나들목 간 6.9km는 서울특별시도로 전환된 데다 일부 곡선 구간은 선형 개량으로 길이가 단축됐기 때문이다. 기점도 2002년 고속도로 노선체계 변경에 따라 부산광역시 구서나들목으로, 종점은 서울특별시 양재나들목으로 변경됐다.

  개통 당시의 제3한강교는 한남대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참고로 제1한강교는 한강인도교라고 불리었던 한강대교이고, 제2한강교는 1965년에 건설된 현재의 양화대교다. 제3한강교 이후 건설된 한강교량에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는데 네 번째가 1970년 5월에 준공된 마포대교로서 당시에는 서울교라고 불렸다.

     

'()개통 후()보완기조 하에 최소 비용으로 건설됐다

  1968년 12월 지금의 120번 고속국도인 경인고속도로가 먼저 개통됐으나 경부고속도로는 ‘국토의 대동맥’이란 상징성을 감안하여 1호 고속도로로 명명됐다. 도로의 날도 경부고속도로 개통일인 7월 7일로 지정하여 정부 차원에서 기념하고 있다. 당시 단군 이래 최대 역사로 불렸을 만큼 국력을 기울인 경부고속도로의 총건설비용은 429억원으로 1km에 1억원 정도씩 투입됐다. 2020년 기준 가격으로 환산해도 1조3,369억원에 불과하다. km당으로는 31억원으로 400억∼550억원인 지금의 고속도로 공사비에 비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뿐만 아니라 설계를 포함한 전체 공사기간도 2년 5개월.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준공했다. 15번 고속국도인 서해안고속도로는 1990년에 착공하여 2001년에야 개통됐다. 총연장 341km로 경부고속도로보다 짧은데도 11년이나 걸린 것과 대비된다.

  싸게 빨리 건설하자니 밀어붙이기식 시공이 불가피했다. 돌관공사로 점철되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와 무리가 있었던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장비 부족으로 터널도 곡괭이와 삽으로 뚫었다. 당재터널(현재 옥천터널) 공사 시에는 낙반 사고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들을 포함하여 총 77명의 아까운 목숨이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에 바쳐졌다. 당재터널에서 가까운 금강유원지 부근에 이들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지속적인 보수공사는 당연히 필요했다. 공기 단축과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터널을 최소화함으로써 곡선 구간이 많았다. 이들 구간을 바로 펴는 선형 개량과 확장도 꾸준히 진행됐다. 지금도 옥천과 동이 간에는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개통 후 10년도 지나지 않은 기간 동안에 들어간 보수비용이 건설비보다 많이 들었다.  1990년대 말까지 투입된 유지・보수비는 건설비의 거의 4배에 해당하는 1,527억원으로 집계됐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사업이었던 셈이다. 당초 기본 방침이 ‘선(先)개통 후(後)보완’이었으니 당연한 귀결이며,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부실공사지만 다만 계획된 부실이었던 것이다. 

    

당시 사회적 할인율이 높아 '졸속과 부실'은 합리적 선택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서독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을 시찰한 후 건설을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1960년대 후반 제3공화국 정부가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할 당시 야당인 신민당은 물론 경제정책 주무부처인 경제기획원도 반대에 나섰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들도 반대에 가세했다. 우리나라 경제 사정에 비추어 고속도로는 시기상조란 것이 이유였다. 건설비 조달도 여의치 않았다. 세계은행(IBRD)에 차관 제공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대일청구권자금에서 689만달러를 인출하고 유류세를 인상하여 건설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429억원은 당시 한 해 총예산의 20%에 가까운 규모였다. 2년 반 동안 정부예산의 10% 정도씩을 단일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전력, 통신, 산업단지 등 주요 생산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시급한 실정에서 말이다. 그래서 고속도로라 하더라도 우수한 성능보다는 투자비를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게 완공을 서두른 것도 이해가 가는 조치다. 1960∼70년대는 우리 경제가 성장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수출물동량만 해도 매년 30% 이상씩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개통하면 사용에 따른 막대한 편익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이 개통 초기에는 화물차량이 경부고속도로 전체 통행량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또한 고도성장 시기에는 사회적 할인율(social discount rate)이 높은 것도 일반적이다. 할인율이 높을 경우 어음할인 후 손에 쥐는 현찰이 적어지는 것처럼 미래의 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비록 ‘적당히,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를 확산시킨 부작용은 컸지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 단기간에 완공해야겠다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정책은 생애주기비용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금문교는 생애주기비용 최소화에 따라 튼튼하게 지어졌다     

  생애주기비용(LCC; life cycle cost)은 초기투자비와 수명을 다할 때까지의 유지・보수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총비용을 의미한다. LCC를 최소화하는 대안은 사회적 할인율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북쪽 마린 카운티 사이의 골든게이트 해협에 세워진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총연장 2.8km의 현수교로 1937년에 완공됐다.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지원 없이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이 다리를 건설했다. 인근 7개 카운티들이 공동 기채로 공사비 2,400만달러를 마련했고 개통 후 1971년까지 35년간 통행료 수입으로 전액 상환했다. 

  당시는 대공황으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시기였다. 이자율은 당연히 낮았다. 이 경우에는 초기투자비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LCC 측면에서 유리하다. 공사비 전액을 빚으로 조달했지만 많은 비용을 투입하여 최대한 튼튼하게 지었다. 1989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인근의 베이브리지는 붕괴됐으나 금문교는 별 탈이 없었다. 지진 이후 내진시설을 보강한 외에는 대대적인 보수공사 없이 8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사족으로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인다. 금문교는 경관이 수려하기로 유명하지만 투신 사례도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태평양 쪽이 아닌 샌프란시스코만을 향해 뛰어내린다는 것이다. 2005년까지의 투신자 1,200명을 추적한 결과인데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경치 구경을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주차장이 샌프란시스코만 쪽에 설치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투신자 대부분은 외부인이었으며, 지금은 투신방지를 위한 차단망이 설치돼 있다.

          

현행 고속국도 번호체계는 2001년 8월에 도입됐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총연장 5,033km의 46개 노선이 운영 중이며, 신규 노선으로 601km가 건설되고 있다. 초기에는 노선마다 이름을 붙이고, 착공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다. 1번 경부고속도로, 2번 경인고속도로, 3번 호남고속도로, 4번 영동고속도로, 5번 동해고속도로, 6번 남해고속도로처럼. 노선이 많아지자 새로운 방식이 요구됐다. 2001년 8월에 지금의 노선번호 체계가 수립됐고, 고속도로 명칭도 시점과 종점의 도시명을 붙여서 사용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의 정식 이름은 고속국도인데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번호를 부여한다. 동서간의 간선노선은 0으로 끝나는 2자리 짝수 번호다. 남쪽부터 오름차순으로 10번(남해고속도로)부터 20번(익산장수 및 대구포항고속도로), 30번(당진영덕고속도로), 40번(평택제천고속도로), 50번(영동고속도로), 60번(서울양양고속도로)이 그것이다.

  남북간 간선노선은 5로 끝나는 2자리 홀수다. 서쪽부터 오름차순으로 15번(서해안고속도로)∼65번(동해고속도로) 6개 노선이다. 다만 경부고속도로는 상징성과 함께 대각선 노선으로서 동서와 남북이 혼재돼 있다는 방향성을 고려하여 1번 고속국도를 그대로 존치했다.

  보조노선의 경우 동서간은 2,4,6,8로 끝나는 2자리 숫자, 남북간은 1,3,5,7,9로 끝나는 2자리 숫자가 부여된다. 간선 또는 보조노선 축과 연결되는 지선은 해당노선 번호에 끝자리를 추가하여 3자리 번호로 부여하되 동서간은 짝수로, 남북간은 홀수를 붙인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망         

  자료 : 한국도로공사 홈페이지     

  순환선은 3자리로 해당지역 번호에 00을 붙이고, 순환노선 축에 연결된 지선은 시계방향 순서대로 두 번째 자리 수를 1,2,3 등으로 부여한다. 지역번호는 서울 1, 대전 3, 경기(수도권) 4, 광주 5, 부산 6, 대구 7인데 이는 종전 해당지역의 우편번호 첫째 자리와 같다. 예컨대 수도권 제1순환도로는 100번이고, 100번 고속국도에 연결된 인천공항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는 시계방향 순으로 각각 110번 및 120번 고속국도다.

  고속국도명은 동서간의 경우 서쪽 기점과 동쪽 종점 지역명(예; 서울양양고속국도)을 붙여 사용하고, 남북간은 남쪽 기점과 북쪽 종점 지역명(예; 통영대전고속국도)을 연결해서 명명한다. 다만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와 같이 2000년 이전부터 사용돼 온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2015년 확장 개통한 후 명칭을 다시 부여할 때 대구와 광주에서 대구의 달구벌과 광주의 빛고을 머릿글자를 따서 달빛고속국도로 명명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고속도로의 번호체계와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고속국도 번호체계는 미국과 동일한 형태다. 미국 주(州)간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의 경우 동서로는 4∼96번, 남북간에는 5∼95번의 번호가 부여돼 있다.     

미국 고속도로망     

  국도의 노선번호도 동서는 짝수, 남북은 홀수다. 1번에서 10번 국도의 경우 고속도로 번호체계와 동일하다. 국도 번호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12월에 제정된 「조선도로령」에 의거하여 부여되기 시작했다.

국도 17호선 구간                         

 ※ 국도 8∼10호선은 북한 지역에만 있는 도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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