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소중한 것을 위해 버립니다.
항상 브런치를 구경하며 '다들 글 너무 잘쓴다..', '대단한 사람이다.' 등의 생각만 하다가 어쩌다보니 이렇게 저장글을 쓰고있습니다.
제목처럼 저는 저에게 너무 소중했던 무언가를 버렸습니다. 사실 아직 버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제 전공이요. 저는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래픽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다지 긴 경력도 아니고, 누군가의 심금을 울릴만한 배경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을 써내려갑니다.
정말 진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려서부터 예체능에 번뜩이는 재능을보여 그림을 그렸고, 집안 사정의 한계로 입시학원은 단 1분도 다녀보지 못했지만 어찌저찌 미술대학에 진학해 시각디자인학과 학생이 되었습니다. 생에 처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배우던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타이포그래피 지식에 눈이돌아가 서울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밤새 노트북을 들고 디자인에 빠졌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리 대단한 학교는 아니였지만 1개의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A, A+를 받았고 학기가 끝날 때 쯤엔 작은 장학금도 받아 행복한 1년을 보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답게 성실한 군복무를 마치고 독립을 위해 1년간 열심히 고향에서 돈을 모으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향해 달렸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시련이 찾아와 꿈에그리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학업을 이어나갔고 정말 감사하게도 전공교수님께 좋은 학생으로 기억되었는지 졸업을 반년 앞둔 시점에 학교대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되어 스타트업이었던 저의 첫 회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고향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때면 저의 근황을 소개하는 것이 행복하고 뿌듯했습니다.
"나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해." 친구들은 '멋있다.', '대단하다.', '진짜 부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고
특히 제주도에서 올라온 친구는 그리 크지않은 건물임에도 제가 퇴근하는 모습을 회사앞에서 보며 저에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남겼습니다.
사실 하는일이 크게 어렵지 않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지만 주변인에게 관심받고 칭찬받는게 즐거웠습니다. 현실은 정말 적은 연봉에 서울살이로 인한 지출로 인해 힘들었지만 사회초년생, 게다가 디자이너면 이정도는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버티겠노라 다짐했었죠.
저는 디자인을 너무 사랑했던 '디자이너'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