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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Jul 08. 2022

스물여섯,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 (1)

문과생 직장인이 그림을 그리면.

그렇게 갑자기 다니기 시작한 미술학원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늘 내가 원하는 색으로 원하는 것을 그릴 수 있었다. 누가 시켜서 그리는 것도 아니었고 온전히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릴 대상이나 색도 전부 내가 정할 수 있었다. 첫 수업에서 종이에 연필로 자화상을 그린 후 그 위에 내가 원하는 색의 잉크를 떨어트려서 패턴을 만드는 작업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서툴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잘못 그렸다고 다시 해오라는 지시를 받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내가 좋으면 된 것이었다. 그렇게 몇 주 정도 미술학원을 다녔고, 또 한 가지 뜬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짜 그림 배울까? 순수예술은 아니더라도 관련 분야에서 일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출퇴근길에 틈틈이 예술 분야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늘 취향(趣向)을 지니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더 이상 내가 소속한 조직과 부서의 이름을 들이밀며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취향이 뚜렷한 아티스트가 되겠다며 모든 걸 제쳐두고 당장 순수미술에 뛰어드는 건 다소 무리수였고, 내 취향대로 그림을 원 없이 그리겠다며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꼭 순수미술을 해야지만 컬러가 확고한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본인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곧 아티스트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도 내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업(業)을 한다면 점차 내 취향을 가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컬러를 자유자재로 쓰며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리서치를 이어갔다. 그리고 대략 한 가지 분야로 좁혀졌다.


디자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디자인만 한 분야가 없었다. 모든 시각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집합체였다. 미술학원을 덜컥 등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때부터 퇴근 후나 쉬는 날에는 미대 유학원과 입시 학원을 기웃거렸다. 평생을 문과생으로 살아온 내가 20대 중후반이라는 나이에 그림을 시작해 디자인 스쿨을 갈 수 있는지, 준비기간, 비용 등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은 무모함이다. 이거다라고 하는 순간 모든 외부 신호를 차단하고  갈길을 가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6  나의 무모함은 지금보다 더했다. 그리고  무모함에 대해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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