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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Nov 12. 2022

[서평] 작은 파티 드레스


나는 지금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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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짧은 서문과 잇따르는 아홉 편의 텍스트를 모아 엮은 산문집"이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사랑을 말하는 산문인데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조용한 곳,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 음악마저도 불필요한 곳에서 사색하며 읽을 때 비로소 마음에 다가온다. 이 책이 말하는 '당신'이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순간, 물음표를 제거하기 위해 앞뒤를 살피면서 탐구하듯 읽으면 아!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역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자는 이 산문이 "좀 특이한 산문이어서, 독자는 저자가 '당신'이라 부르는 한 사람의 생각의 동선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라고.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이가 책의 저자인지, '당신'으로 지칭되는 그 사람인지, 아니면 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나'인지 어느 순간 경계가 모호해져 있음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나는 조금 확신하듯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당신’은 저자가 묘사하는 장면을 적극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구체적 ‘당신’이다. 그러므로 독자인 '나'는 이 책의 '당신'이 되어야 하며 '독자'='당신'이라는 등호를 갖고 산문 속 실체적 맥락에서 적극적인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가령 "당신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며 그 애를 바라본다."라는 문장 속에서 독자인 '나'는 산문 속 '그 애'를 바라보는 '당신'이 되어 실제 흡연 유무와 상관없이 담배를 피우며 그 아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단, 마지막 텍스트 속 '당신'은 저자가 사랑하는 이를 가리킨다.)



그래서 '나'는 산문 속에 있다.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 저자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저자가 건네는 말들이 구체적 ‘당신’에게 와닿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닿자마자 살아 움직여 손에 닿을 듯 산들바람을 일으키며 물성을 가진다. 그만큼 이 책은 "멈춰 서서 매 문장의 숨결과 향기, 떨림에 몸을 맡겨야 하는, 잦은 숨 고르기가 필요한 책"이다. 책을 덮고, 인과 관계는 당연히 없겠지만, 왜인지 모르지만, 책에 몰입한 독자인 ‘나’ 자신에 반하게 됐다. 나는 지금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이 책 문장들이 참 좋다. 예를 들면, ”책이나 행복처럼 피아노 역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최근의 발명품이다.“라는 문장에서 피아노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발명품이라는 사실 여부나, 얼마 안 됐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오히려 책과 행복이 동일 선상에 위치함으로써, 하나의 비유로 묶임으로써 책 없는 행복이 없고 행복 없는 책은 없다는 표현이 성립하는 그 문장에 주목하게 된다.



매 문장마다 이런 사색이 필요하다. 어렵지 않으나 쉽지 않다. 그러나 깊이와 울림을 가지고 있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이 책, 크리스티앙 보뱅이 쓴 <작은 파티 드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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