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세계문학 강의
흥미로운 제목이다. 시작은 이렇다. 1960년대에 문학이 죽었다고 말한 '이론가'가 등장했다. 철학자이며 비평가인 미셀 푸코와 롤랑 바르트이다. 그럼 어떤 '문학'이 왜 죽었고, 아니 그전에, 먼저 '문학'은 무엇이었던가. 죽음에 애도할 시간도 없다. 대체 무슨 근거로 문학이 죽었다는 건가. 문학이 더 이상 희망적이지 않다는 비유일까. 책을 더 들여다본다.
19세기 문학이 발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종교의 실패다. 종교는 그 이전까지 "사회적 접합제 역할"을 수행했으나 "종교의 미신적 요소를 지적하고 깨뜨리는 과학의 발견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 빈자리를 문학이 비집고 들어갔다.
문학의 발전과 더불어 독자의 발견과 확장 또한 중요하다. "문학은 원래 지배층의 소유물"이었다. 지배층에 의한, 지배층을 위한, 지배층의 가치를 담은, 지배층의 언어로 쓰인 것이 문학이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독서 대중이 등장하고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질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값싼 교양교육의 도구"가 되어 문학을 접하기 시작했고, 비평가들은 텍스트들을 분석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독자와 비평가들은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의미를 창출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고정된 의미로서의 문학은 죽게 되었다. 그런데 왜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이렇게 1,2장에서 문학이 무엇인지를 깊이 사유하게 하고 3장 프랑스 문학부터-영국 문학-미국 문학-6장 러시아 문학까지 각 나라별 근대 문학 작품 성립 과정을 주요 작품들과 함께 다룬다. "문학 사조의 변화와 흐름을 보여주는 특징이 강한 작가들"을 위주로 작품 일부도 인용하여 설명하니 마치 대학 강의를 듣는 듯하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한 바, "문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주고"자 했으며, "기초적인 배경과 지식이 되는 내용을 광범위하게, 필요한 경우에는 조금 깊이" 다루기도 했다.
다음으로 7,8,9,10장에서는 모더니즘 시와 소설들 그리고 기법들을 설명하고 문학 이론-해석학, 정신분석학, 해체론까지 다룬다. 저자가 말한 대로 "문학 이론을 공부하면 작품을 읽은 뒤에 받은 충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론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게 하고 넓고 깊게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결론: 이론과 텍스트가 어떤 상호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석학 관점에서 작품은 부분과 전체의 소통, 그 해석학적 순환에 의해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상학 관점에서 텍스트 의미는 "어느 순간에 가능한 해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데리다의 해체론에 의한다면 텍스트의 의미는 "다양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독해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하나의 해석'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현대 철학에 문외한인 내가 본 이들 공통점은 '텍스트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라는 것, 그리고 텍스트들은 항상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의심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소문: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죽었다’는 말이 끊임없이 들리게 되었다. 진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문학은 살아 있다.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평: 이 책은 ‘문학이 죽었다’는 비평가의 말을 제목으로 삼아 세계 문학의 흐름과 이론을 소개한 책이다. 이론 공부와 병행하여 작품을 읽는다면 그 과정을 통해 독서가 주는 즐거움과 작품의 묘한 맛을 좀 더 깊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 한 권으로 모든 문학 이론을 섭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입문용이다. 이 책에 닻을 내려 세계 문학과 이론에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나는 아르놀트 하우저가 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을 기회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