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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Nov 18. 2022

[서평] 에라스무스 평전

광기에 맞선 이성



1.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 철학

14~16세기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되살려 인간 중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려고 한 르네상스가 일어난다. 비잔티움 제국 멸망 이후 많은 학자가 이주해 오면서 이탈리아에서는 고전 문화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는데 그리스 로마 문화를 본받아 인간의 개성과 능력을 중시하는 인문주의가 발달하였다. 인문주의자들은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인문주의의 대표자 에라스무스는 단순한 세계시민 공동체보다 더 높은 것, 즉 국가 위에 유럽이, 조국 위에 인간 전체가 있다는 것과 함께 결속과 화합을 강조하고, 종교 공동체인 그리스도교를 전 우주적 개념으로 확장하여 헌신적이고 겸손한 인류애의 개념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카를 대제와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의 그것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2. 사회적 배경

에라스무스는 교회의 부패를 통해 루터와 갈등을 빚는데, 말과 글보다 더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즉 폭력적인 방법으로 전복을 꿈꾼 루터와 달리 에라스무스는 화합과 평화의 방식으로 교회가 정화하길 희망한다. 본질상 결코 혁명적이지 않은 인문주의-에라스무스는 루터와의 갈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한다.


에라스무스가 저물어 갈 즈음에 <군주론>이 등장한다. 둘은 사상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 유지', 피와 칼로 점철되는 전쟁이 우선인 '현실 정치'의 대표자이고, 에라스무스는 정의롭고 자애롭게 시민을 다스리며 평화를 내세우는 '이상 정치'의 대표자이다.


이 배경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면 당시 16세기 전후 격동의 중세 유럽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3. 한계

에라스무스는 중요한 순간마다 "헌신이나 어떤 절대적 의무가 요구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중립의 차가운 달팽이 껍질 속으로 숨어 버린다." 본능적으로 모든 종류의 결정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본인이 주창하던 화합과 평화의 순간을 지켜내지 못한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책 내용을 토대로 감히 추측하자면 그는 현대 정신의학과적인 측면에서 볼 때, 결벽증 우울증 불안장애의 한 일면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인문주의 자체 결함도 있다. "인간의 조화, 인류에 대한 믿음으로 시대의 정신을 이끌었던 인문주의는 그 같은 인간애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교육받지 못한 하층 민중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저자는 인문주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바로 이 같은 인문주의의 오류를 놓치지 않고 비판한다. 민중과 '함께'가 아니라 민중의 '위에' 군림하려 했던 인문주의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인문주의에 '민중'은 존재하지 않았다.



4. 출간 당시 책이 놓인 자리

저자 츠바이크가 이 작품을 내놓은 1934년, 히틀러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제국 수상이 된 지 1년이 지난 시기다. "폭력을 부정하고 평화와 자유를 갈구한 휴머니스트 츠바이크에게 나치라는 독선적 광신자들의 움직임은 결코 용인할 수 없었다." 저자는 나치를 피해 망명을 했고, 이 작품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저자가 에라스무스를 통해 1934년 독일 국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폭력과 혼란의 시대를 접고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5.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전쟁이라는 개념은 결코 정당함과 연결될 수 없다. 에라스무스는 "전쟁 중에 최고의 행운을 잡는다면, 그건 일부의 행운이지 다른 사람들에겐 재앙이고 파멸의 근원이다."라고 말했듯이,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그의 태도를 몽테뉴, 볼테르, 칸트, 톨스토이, 간디가 뒤를 잇는다.


에라스무스는 "불같은 분열의 순간, 인류의 평화는 가능하다"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인문주의의 이상은 한 번도 실현되지 못했지만 새로운 희망과 활력으로 순수한 도덕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사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남북 관계에, 전 세계시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 화합과 인류애의 정신을, 묵직한 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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