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Quinn Jan 10. 2023

A(Adultery)를 A(Able)로 바꾼 힘

『주홍 글자』

#주홍글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159 #너새니얼호손




[줄거리] 간통을 저지른 혐의로 옥에 갇힌 이 여자는 불륜으로 태어난 갓난아이와 함께 출옥한다. 평생 'A(adultery)'를 주홍 글자로 만들어 가슴에 달고 다녀야만 했던 헤스터 프린은 어린 딸 펄을 데리고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한편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나간다. 이 마을에는 만인에게 존경받는 젊은 목사 딤스데일이 있었는데, 헤스터 프린의 석방 이후 7년간 점점 수척해져 가던 그는 어느 축제일에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헤스터 프린의 불륜 상대였음을 고백한 후 그대로 절명한다.



  이 소설 『주홍 글자』의 주제를 하나로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민음사 번역본 작품 해설은 죄에 대한 접근, 그리고 개인과 사회에 대해, 페미니즘과 해체주의적 관점 등 다양한 방향에서 이 작품을 해설한다. 나는 이 소설이 가진 한계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해설하고자 한다. 



  소설 바탕이기도 한 '청교도 사상'은 금욕, 절제, 규율을 기본 윤리로 삼은 종교 사상이다. 미국 사회를 일군 힘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죄의식과 규율 속에 가두는 등 독선적 경향도 강했다. 19세기를 살고 있던 호손이 그때로부터 "적어도 2세기 전 어느 여름날 아침" 그러니까 17세기 청교도적 삶의 허구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본다면 호손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 명확해진다.



  가슴에 주홍 글자 A(adultery, 간통)를 달고 다녔던 여자 헤스터 프린. 죄를 지었지만 그 이유로 사회적 낙인을 찍힌 채로 살아간다. 간통하여 낳은 딸은 종잡을 수 없는 아이면서 살아있는 주홍 글자다. 청교도적 관점에서 그녀는 다른 삶을 살 기회가 전혀 없어 보인다. 헤스터는 A(Adultery)의 삶 즉 인내와 소외의 삶을 살지만 "오히려 꿋꿋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꾸려나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가령 "그녀에게는 놀라울 만큼 남에게 도움을 주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주홍 글자 'A'를 본래의 뜻대로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주홍 글자가 '능력(Able)'을 뜻한다고 했다."라고 하기도 하며, "'A'자는 이번에는 '천사(Angel)'를 뜻하는 말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A(Adultery)를 A(Able)로 바꾼 힘, 세간의 손가락질(간통)을 '능력'으로 바꾼 힘은 그녀 자신에게 있었다.



  헤스터는 여성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가장 행복한 여성일지라도 여성으로서의 삶이란 과연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첫 단계로 사회조직을 모두 깨부수어 새로이 세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남성의 천성 자체나 오랫동안에 걸쳐 천성이 되다시피 한 유전적인 습관을 여성도 정당하고 적절한 지위 비슷한 것이나마 차지하게 될 때까지 뿌리째 뜯어고쳐야 한다. 여성 자신이 크게 달라지기 전에는 이런 초보적인 개혁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듯 주체적 여성으로서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헤스터를 작가는 묘사하고 있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사실을 떠올린다면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을 당당함과 강인함으로 무장시킨 호손의 의도는 더욱 또렷해진다.



  그러나 헤스터와 딤스데일이 숲에서 7년 만에 재회하는 장면, 그들이 인간 본성에 충실하여 맺은 영원한 사랑의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딤스데일은 죄의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절명하고 만다. A(Adultery)를 A(Able)로 바꾼 힘이 그녀에게 있을지라도 아직 세상은 그것을 품을 수 없는 미성숙한 상태에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본다면 청교도적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비판, 그리고 주체적 여성을 제한하는 당시 시대에 대한 비판을 한 진보적 소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헤스터가 한계에 직면했다면, 세상이 아직 그것을 품기에 모자랐다면, 딸 펄을 통해서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줬어야 한다. 그녀의 딸 펄은 가까스로 사회의 모든 압력을 벗어나 타지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 간다. 하지만 미국 사회를 떠나 신비로운 귀족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서만 펄은 자유를 얻는다. 헤스터의 좌절이 딸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남성에 종속된, 오히려 퇴보한 결말을 맺고 말았다.


  끝.



  『주홍 글자』는 청교도 역사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을 가져온다. "가령 존 벨링엄 총독을 비롯하여 존 윌슨 목사, 앤 히빈스 등은 하나같이 실제로 살았던 역사적 인물"이다. 여기에 더해 화자가 소설 속 사건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술해 나가는 모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몇 년 몇 월 며칠 어느 장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전개하는 방식이다. 마치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전개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소설 속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이에 대해서는 지금 뭐라고 단정을 짓지 말기로 하자."처럼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기도 하고, "지금 막 저 불길한 감옥 문에서부터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들장미 덤불을 그렇게 직접 발견했으니 우선 그 꽃 한 송이를 꺾어 독자들에게 선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처럼 실제 벌어진 일을 들려주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너새니얼 호손이 이와 같은 소설 장치를 꾸민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소설을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닌 '사실'로 받아들일 때, 이 소설 주제에 대해 더 진지한 태도로 고민할 수 있을 거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별책불혹 #서평

작가의 이전글 제인 오스틴 그리고 『오만과 편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