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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Jun 22. 2023

담론의 광장, 서점

#독립서점 #서점 #김언호 #한길사 #세계서점기행 #김언호의세계서점기행


출처, 알라딘

김언호,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한길사, 2020, 개정판




김언호 씨는 출판인이다. 1976년 출판사 [한길사]를 창립했다. 동아시아 출판 운동 및 독서 운동에 나섰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파주출판도시 건설에 참여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예술인 마을 헤이리를 구상하고 건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언호 씨는 세계 서점을 기행하여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책이 그 기록이다. 



뉴욕의 [맥널리 서점]은 2004년 문을 연 비교적 역사와 전통이 짧은 서점임에도 담론의 광장이 되었다. 1919년 미국 출신 실비아 비치가 만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20세기 유럽 문예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브뤼셀의 [쿡 앤 북]은 "책과 음식, 정신과 신체, 이성과 감성"이라는 다른 차원들을 하나로 묶어 낸 진화된 형태의 혁신적 공간이다.



웨일스의 [헤이온와이]와 펜실베이니아의 [미드타운 스콜라], 안위크의 [바터북스]는 헌책방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저자들의 사인회나 현실적 주제로 강연회와 토론회가 이어지는 곳이다. 오슬로의 [트론스모] 서점은 100여 명의 주주가 함께 참여하는 문화공동체다. 주주로 참여한다는 일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생각을 줄 수 있다.



나는 김언호 씨가 소개한 이 서점들에서 공통점을 읽어 냈다. 인문과 예술과 문화 담론의 장場, 사유하는 공간, 문예 운동의 중심으로서의 서점, 그리고 의미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좋은 책들을 선책選冊하여 어떤 지적知的 공간보다 탁월한 역할을 해내는 공공적이고 문화적인 기구로서의 공간이라는 공통점. 그러므로 어느 곳에는 이런 서점이 있다더라 하는 식의 서점 기행문보다는 '서점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온라인 서점은 몸과 마음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독자들은 책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즐거움을 잃고 있다. 독서의 품질도 떨어져버렸다. 서점에 들르면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남아 있어도 때로는 새 책을 사게 되지만 온라인 서점에서는 그럴 일도 없으니 책을 사는 기회와 양도 줄어든다."(289쪽) 



문예 운동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할 수 있을까. 베이징의 [싼롄타오펀] 서점이 "이윤을 위해 교재와 학습 참고서를 대량으로 출판하고 대중적인 잡지를 출판하자" "지나친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내부의 움직임이 있었고 서점 대표는 사임했다. 지적 문화적 '운동'을 펼치겠다던 서점이 상업주의로 흐르는 상황을 직원들이 견디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서점은 이윤을 포기해야만 할까? 그러면 서점 운영 및 유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징의 서점인書店人 첸샤오화는 이렇게 답한다. "서점은 유행을 쫓아가서는 안 됩니다. 독립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단기 이익을 중시해서는 안 됩니다. 서점 경영은 가치 창조 행위이자 일종의 실험 행위입니다. 서점의 존재 의의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355쪽) 이 말이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들린다면 제대로 보았다. 그는 낭만주의자면서 이상주의자다. 하지만 문화 담론의 장場으로서의 서점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점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뜬구름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서점들이 예쁘게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책을 섬세하게 선별하고 지식을 나눌 수 있는 문화 예술 공간, 그리고 책을 온몸으로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서점이 자리 잡기까지는 어렵고 고된 일이 될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더하여 담론의 장場으로서, 문예 운동의 기점으로 기능하는 서점이 되기는 더 어렵다. 특히 우리는 근近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로서적이 폐점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던가. 



서점이 서점이 되는 일은 서점인들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실존적 실천적 과정으로서의 독서를 생활화하는 것과,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로서의 책의 기능을 알고 이를 사유하는 것, 그리고 사회와 문예에 대한 우리의 관심 들이 더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출판된 시점(2016년 8월), 2016년 12월 종로서적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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