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 투자
첫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였다. 몇 년 먼저 이직한 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는 평소 잘 안 보던 지인들과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는 계기가 돼서 참 좋다. 가끔 귀인을 만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기도 하다. 이 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퇴직금은 잘 굴리고 있어? 꽤 오래 다녀서 금액 좀 될 것 같은데…”
선배가 내게 물았다. 대답도 하기 전에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숨기고 싶었다. 투자 하수인게 바로 들통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냥 CMA 계좌에만 넣어놨어요. 언제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그럼 정기예금이라도 들지 큰돈을 왜 계속 거기에 둬?”
“그러게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나는 무성의한 답변을 내뱉었다. 대답하면서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참 목돈 굴리기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CMA 계좌에 넣어두면 하루만 둬도 이자가 쌓이고 일반 통장보다 이자를 더 준다. 하지만 자금을 단기적으로 보관할 때나 쓰는 용도이지, 당장 필요하지 않은 돈을 오래 묵혀둘 곳은 아니다. 이자를 더 주는 정기예금에 넣어두던지, 주식이나 채권같이 수익률이 더 높은 곳에 장기 투자하는 게 낫다는 걸 나도 안다.
애초부터 퇴직금을 CMA에 보관해 둘 생각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좋은 투자처가 나타날지도 모르니 그때 바로 인출할 수 있게 잠깐만 두자는 계획이었다. 투자하기 적합한 시기인지 아닌지 볼 줄 아는 눈도 없으면서 더 싸지면 사겠다고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수도 아니면서 수익을 많이 내길 기대하며 타이밍을 보고 있다니 참 어처구니없다.
답답한 후배를 위해 선배는 초보자의 투자법 한 가지를 전수해 줬다. 종잣돈의 일부를 펀드에 매일 분산 투자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리스크 분산을 위해서 투자 금액을 총 4군데 정도로 나누라고 했다. 우리나라 대표 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미국 기술주에 투자하는 펀드, 전기차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몇 년 전 상황이라 테슬라 주식이 인기 있던 시기였다), 안정적인 채권형 펀드에 동시에 가입하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한 달에 투자할 원금을 20일 치로 나눠서 매일 일정 금액씩 적립식 투자하도록 설정해두길 권했다.
나 같은 투자 하수는 언제 어떤 주식을 얼마에 사고팔아야 할지 감이 없다. 이럴 때는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국가 또는 산업에 조금씩 나눠서 투자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 가격이 저점일지, 다음 주 가격이 저점일지 알 수 없다면 매일 사면 평균 가격에 살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A 펀드에 매달 20만원을 투자하고 싶다면 매일 1만원씩 20일에 나눠서 매수할 수 있다. 보통 주식이나 펀드는 영업일에만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에 20일 정도 매수 가능하다. 설마 한 달 내내 아침마다 금융사 앱에 들어가야 할까? 그렇지 않다. 매일 1만 원씩 자동 매수되도록 처음에 한번 설정만 하면 된다.
한 달 중 가격이 가장 쌀 때 사면 수익률은 물론 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알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걸 파악하기 위해 매일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도 만만치 않다. 큰 수익을 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적당한 수익을 기대하니 아주 손쉽게 바로 투자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몇 달 동안 4개 펀드를 매일 자동 분할 매수했고, 기대하는 수익률을 달성했을 때 매도했다. 환급받은 돈으로 또다시 매일 자동 매수, 그리고 몇 달 후 환매하는 방법을 2년 넘게 반복했다.
이렇게 투자하다 보니 수익금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펀드 상품을 고를 때 어떤 항목을 챙겨봐야 하는지 노하우가 조금씩 생겼다. 경험이 쌓일수록 해당 펀드가 어떤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지, 수수료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할 수 있게 됐다. 왜 투자 고수들이 ‘분할 매수, 분할 매도’를 강조하는지 그 이유도 실전 투자를 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크게 한 방 노리겠다며 아무런 투자를 시작하지 못하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공부도 운동도 투자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일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작은 시도와 경험이 모여 조금씩 커져가는 것이다. 굴리면 굴릴수록 서서히 커져가는 눈덩이처럼 말이다.
* 수시 입출금이 가능하고 하루만 보관해도 이자를 주는 CMA는 단기적으로 자금을 보관할 때 사용하면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