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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진 Dec 02. 2021

내 이름을 불러줘

경단녀의 설움


 12월의 어느 날, 눈은 흩뿌리다 말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골목길에 정차한 한 대의 차 안에서 누군가 혼자 울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오열하듯 우는 그 사람은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이질적이었다. 마치 혼자만 세상에 동떨어진 마냥 울고 또 울고 한참을 울고 있었다.     

 휴직계를 쓰고, 자질구레한 용품들을 챙겨 나오던 날이었다. 퇴근하던 길에 골목길에 정차를 했다. 교무실 문을 닫고 나설 때부터 차오르던 울음을 결국 터트리고 말았다. 

 또 다시 휴직을 하게 되었다. 휴직을 하고 만세를 부를 거라 생각을 했건만 다시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다시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직장을 잃는다는 의미는 사회로부터 나를 단절시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내 이름 세 글자는 온데간데없고,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만 불리는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 

 이미 4년간의 긴 휴직을 하고 복직을 했던 상황이었다. 아이를 낳으며 육아휴직을 하였고, 남편이 해외로 발령을 받으면서 휴직을 연장했었다. 휴직이 길어질수록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고,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완벽하지 못한 채 잉여인간으로 도태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 더 이상 내 이름은 필요가 없어.     

 아들의 이름이 내 이름을 대신하고 아들 엄마로서 존재하고 남편의 아내로서만 살아갈 뿐.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건 무언지, 어떤 성격인지 나에게서조차도 나의 존재는 잊혀져갔다. 나를 잊는다는 건 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까지 왔다. 긴 휴직은 우울감을 남겼다. 

 우울을 끝내기 위해서 했던 복직이었다. 복직이 힘들거라 생각했지만 날개를 단 듯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접어두었던 날개를 활짝 펼쳐서 날아가듯 내 기분도 날아올랐다. 고이고이 접어두었던 인간관계를 펼치고, 집순이로 충실하기 위해 밀쳐두었던 활발한 성격을 다시 되찾았다. 

비로소 진정한 나로 회복하던 순간이었다. 잊고 있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추억 속 물건을 찾았을 때 마냥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내 이름에 귀를 쫑긋하게 되는 건 소중한 걸 잃어버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그렇게 다시 나는 내 이름 석자로 존재한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어느 날 TV에서 흘러나온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 한 마디에 빨래를 널다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경단녀인 그녀의 대사 한마디가 지난 4년간의 내 마음을 오롯이 표현해주었다. 경력이 단절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내 인생에서 나를 단절시킨 마냥 아프고 아팠다. 

맞아,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일을 하니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분명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지은 직후에는 **엄마라는 이름이 낯설기도 했지만 설렜었다. 하지만 4년이라는 시간동안 내 이름이 없어지는 건 내 존재를 잊게 만들었다. 

온전히 내 이름으로 불리고, 내 이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그게 그토록 한 사람의 자아정체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일이라는 가치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출근을 할 때는 그토록 싫던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서 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일은 결국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방법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복직이라 서툴렀지만 출근하는 것은 엄마에서 나로 변신의 순간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또 휴직이다. 복직한지 겨우 2년을 일했건만 육아로 또 다시 휴직을 하게 되었다. 발달이 느린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별 다른 대안은 없었다. 양가 모두 지방이었기에 돌보아줄 친척 한 명 없었다. 복직한 동안 등원도우미를 구해보았지만 상처만 남은 경험이었다. 등원도우미가 아이에게 폭언을 일삼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서 등원도우미를 바꾸어봤지만 아이의 상처는 이미 깊었다. 소변 실수를 하지 않던 아이가 바지에 그대로 쉬를 하고, 퇴행을 했다. 결국 출퇴근을 하며 아이의 등하원을 맡았고, 하원하고는 곧장 언어치료, 인지치료 등 아이를 치료실로 데리고 다녔다. 날개를 펼치듯 꿈을 펼치듯 했던 복직이었건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그래서 휴직이다.  

 휴직계를 쓰고 짐을 챙겨 나오던 날 왜 하필 눈이 날리던 것인지. 차 안의 나는 울고 있지만 차 밖의 세상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갔다. 오고가는 사람들 속에 내 인생만이 사망선고를 고하듯 정지되었을 뿐이다. 또다시 세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이 되었다.      

다시 내 이름을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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