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
널부러진 장난감, 뒤엉켜있는 옷가지, 굴러다니는 잡동사니, 나뒹구는 먼지뭉텅이,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들. 지금 이 순간 우리집 모습이다. 어지러운 공간은 어지러운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공간의 어지러움 만큼이나 내 안의 무수한 생각들은 뒤엉키기고 널부러져서 두둥실 떠다닌다.
눈에 보이는 공간의 어지럽힘은 차라리 낫다. 눈에 보이니까 정리하면 된다. 장난감은 분류해서 바구니에 담고, 옷은 하나하나 펼쳐서 개거나 빨아야 할 건 빨래통에 집어 넣는다. 잡동사니는 버릴 것은 버리고, 쓰이는 것은 잡동사니 바구니라는 정리함을 만들어 담는다.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설거지는 고무장갑을 끼고, 그릇을 닦아 식기건조대에 올린다.
한순간에 공간은 깨끗해진다. 비록 돌아서면 다시 엉망이 될지라도 일단은 정리가 된다.
하지만 뒤죽박죽인 내 마음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나라는 이름으로 많은 역할의 충돌이 내 마음속을,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해야 할 일도 많다. 하고 싶다는 욕구조차 나에 대한 충실함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해야만 해’라는 의무감에 뒤섞여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 마음 속 먼지가 되어 내 안을 어지럽힌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서 내 인생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인생을 역할별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마저도 차라리 깔끔할 것이다. 하지만 각 역할 속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일들도 복잡하고 어수선하다. 어쩌면 그 사이에서 잘 하고 싶은 마음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밥을 짓고 육아를 하지만, 다양한 이들의 SNS에 올려진 번듯한 유아식 사진과 똑게육아를 하는 엄마들을 보며 그들처럼 잘 하고 싶은 욕심은 나를 지치게 만든다. 적당하게 밥을 차리고 적당하게 육아를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잘” 하고 싶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하게 된다. ‘적당히’가 아닌 ‘잘’이라는 욕심이 “해야 한다.”를 “하고 싶다.”로 바꾼다. 의무가 아닌 욕구로의 변질.
아내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내조하(는 척만 하)고, 집안일을 하지만 이 조차도 자신만의 컨텐츠로 만들어 내는 인터넷의 여느 인플루언서들처럼 나도 ‘잘’ 하고 싶다. 그러면 그것은 또다시 역할에서 주어진 의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인 마냥 착각하게 된다.
컴퓨터 타자를 치는 지금도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인가. 분명, 내가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건만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시간이라는 외줄타기를 한다. 시간에 짓눌려, 욕심에 짓눌려 해야 할 것들이 잔뜩 나열되는 순간에는 읽고 싶어 사놓은 책들도 어느 순간에는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욕구가 의무로 바뀌는 아리송한 상황이다.
나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 무엇을 향해 이렇게 바쁘게 버둥거리며 나아가는 것일까.
하고 돌아서면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은 하지 않으면 엉망이 되기 때문에 한다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일주일을 보낸다 하지만 길 것만 같던 일 년은 눈 깜짝하면 달력하나가 찢어지고, 뭐하나 남긴 것도 없이 나이만 채워간다.
그러함 속에, 시간의 아득함 속에,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는 욕심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나를 채찍질하며 아무 것도 해 놓은 것 없다는 죄책감으로 나를 벌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같아서 10년 뒤의 모습도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것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남긴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기에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삶에 대한 회의감은 무력감이 되어 나를 붙든다.
박웅현은 『여덟 단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의 작은 점들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알 길은 없다. 삶의 절반도 채 살아오지 않은 날이지만, 이즈음에서 내 인생도 정리를 한번 해 볼 수 있을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내 지난날과 또다시 흘러가버리는 지금 이 순간들을 연결시킬 수 있을까. 지금까지 흩뿌린 이 작은 점들도 별로 연결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은 채근하는 내가 아닌 위로하는 내가 되어 보고 싶다.
적당히 해도 괜찮아,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