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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철 Jul 25. 2022

뜨거운 청춘의 여름

썸머 필름을 타고! (2021)

*<썸머 필름을 타고!>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여름은 환상의 계절이다. 청춘, 열정, 생기, 온갖 뜨거운 것들이 넘치는 기운을 최대치로 발산하는 계절. 적어도 창작물 속에서는 그렇다. 창작물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넘치는 에너지의 계절이지만 현실의 여름은 그리 녹록지 않다. 내게 누군가 여름과 겨울 중 어느 계절이 더 좋은지를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겨울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창작물의 배경으로 더 좋아하는 계절을 묻는다면 생각이 조금 바뀔 것 같다. 나는 숨 막힐 듯 더운 열기가 마음의 열병인지 계절의 더위인지 알 수 없는 아다치 미츠루의 여름을 좋아하고, 정말로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새파란 여름 하늘을 좋아한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머리칼이 이마에 다 붙는 <족구왕>의 여름도 좋아한다. 정확히 하자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족구왕>은 봄과 여름이 엇갈리는 시기지만 뜨거운 청춘은 여름의 이미지를 완성하기에 충분하다. 여름과 청춘은 특권적인 이름이다. 벌레와 더위, 습기가 우리를 괴롭히는 그 계절일 때가 아니라 환상의 계절일 때 그렇다. 

    그렇기에 고교생들이 의기투합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계절로 여름보다 더 적합한 계절은 없었을 것이다. <썸머 필름을 타고!>(이하 <썸머 필름>)는 사무라이 영화와 같은 시대극을 좋아하는 고교생 맨발이 영화 동아리에서 거절당한 자신의 각본을 들고 친구들과 여름 동안 영화를 찍는 영화다. 새파란 하늘과 초록색 풀들은 맨발과 친구들이 통과할 청춘의 계절로 완벽한 배경이다. "이번 여름 동안 너희들의 청춘을 빌려 쓸게!" 영화동아리 부원들이 아니라 또래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성격 좋은 친구를 배우로, 소리만 듣고 누가 던진 공인지를 알아맞히는 친구를 음향 감독으로, 자전거에 특이한 조명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친구를 조명 감독으로 캐스팅한 <무사의 청춘> 제작부는 어딘지 엉성해도 마음만큼은 진지하고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맨발의 절친이자 카메라 감독 킥보드도, 또 다른 절친 무술감독 블루 하와이도, 그리고 <무사의 청춘>에 가장 적격인 주연배우이자 미래에서 온 미스터리한 청년 린타로까지 <썸머 필름>은 어느 인물 하나 빼놓지 않고 사랑스럽다. 영화 동아리에서 만드는 작품의 감독이자 맨발의 마음속 라이벌 카린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썸머 필름>에서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 여름의 주인공이고, 그렇기에 더없이 사랑스럽다. 

    시대극이나 SF 장르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장르가 충돌하고 결합하는 쾌감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썸머 필름>은 청춘 영화라는 장르 위로 SF와 시대극 같은 장르를 포개어 스스로의 외연을 전후좌우로 넓혀나간다. 린타로가 영화가 사라진 미래에서 왔다는 SF적 요소는 영원히 복제되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영화 매체의 영속성을 생각하게 하고, 시대극의 요소는 사무라이라는 옷을 영화에 입혀 독특함을 부여한다. 다소 난감할 수 있는 라스트 씬은 난감하기에 매력 있다. 카린이 만드는 사랑 영화와 맨발이 만드는 사무라이 영화가 결국 다르지 않음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마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 그런 모든 마음이 청춘이라는 에너지를 타고, 썸머 필름을 타고 펼쳐진다. 원래 청춘은 그렇게 엉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기에, 라스트 씬의 난감함은 그런 청춘을 닮아있다.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날지 몰라도 존경하는 감독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출연을 결심하는 과감함.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매진하는 열정. 사랑하는 영화가 사라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 공허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함께 쌓은 추억, 그리고 그 추억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씁쓸함. 청춘의 여름은 흘러넘칠 만큼 많은 에너지와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청춘의 여름이 그렇게나 뜨겁고 더운 것은 에너지와 감정들이 넘쳐 온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상영을 앞두고 맨발과 린타로가 학교 축제를 즐기는 모습은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곧 이별을 고해야 하는 아쉬움이 행복 속 또 다른 감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후회하고 한숨 쉬는 동안, 청춘은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믿고 전진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는 감각,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다는 감각, 달려가다 한풀 꺾이더라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다시 전진하는 감각. <썸머 필름>은 새파란 여름의 하늘 위로 사랑하는 영화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그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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