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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Nov 04. 2024

수학 선생님의 왼쪽 뺨

Helmet 헬멧 [Meantime]

시끄러운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며 불편함이 있으신 분은 바로 좌측 상단의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초점을 잃은 아이들의 눈빛이 익숙하다. 이미 절반은 넋이 나가 있고, 반쯤은 딴청을 피우기 바쁘다. 엎드려 자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낙심이 일상인 요즈음이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다. 창문 너머 햇살을 흘깃 바라본다. 곧 종이 울릴 것이고, 그럼 오늘의 수업은 끝이다. 조바심으로 쿵쿵 뛰는 심장을 들킬세라 인내심을 가지고 방정식의 해를 도출하는 과정을 찬찬히 설명한다. 딩동댕동! “차렷, 경례.” 지친 아이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천천히 교무실로 돌아간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뒷모습은 태연하지만 마음은 재잘 걸음으로 들떠 있기만 하다. 누가 보면 머리 꼭대기에 선이라도 매어 놓은 듯 둥둥 떠 다닐 태세다. 선생님들과의 짧은 인사로 재빨리 학교를 떠난다.


“대장, 왜 이렇게 늦었어.” 악기 세팅이 한창인 동료들에게 연신 사과하며 뒷문으로 들어선다. 밖은 이미 분주함으로 소란스럽다. 꽤 많은 인파가 줄을 서서 오늘의 기대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활기찬 분위기는 생경하다. 아마 연합 콘서트다 보니 각자 취향에 맞는 이들의 발걸음이 모아졌나 보다. 서둘러 기타를 울러 메고 조율을 한 후 페달보드를 세팅한다. 베이스 드럼에 가세해 스트로크를 쳐 보며 볼륨을 조절한다. 짬이 날 때마다 달려갔던 연습실, 번번이 펑크 나던 합주 타임,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양변이 맞아떨어지는 우아함과 같이 기타란 존재는 내 성격에 잘 맞았다. 남들이 솔로잉에 공을 들일 때 비트 연산을 통해 단 하나의 해가 떨어지는 것처럼 기계적인 스트로크가 더 즐거웠다. 오늘은 그 결실을 내어 놓는 시간이다.  “마지막 곡 연속으로 넘어가는 대목 한번 더 맞춰 보자.”


핫하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작은 공연장 안 공기가 후끈하다. 앵콜! 앵콜! 뜨거운 환호성으로 바로 전 팀이 무대를 마쳤으니 이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 숨을 깊이 들이키고 천천히 내뱉어본다. "알지? 즐겁게 하는 거야. 자! 가자." 의례적이고 싶지 않았기에 베이스와 드럼이 어두운 무대로 먼저 나아가 자리를 잡는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들이 가득하다. 첫인상이 많은 것을 좌우하리라. 언제나 듬직한 친구의 드러밍이 우선 선을 만든다. 둔탁한 리듬이 분위기를 끌어모으며 천천히 고조시키고 있다. 무심한 듯 베이스가 그루브 가득한 색채를 입히기 시작한다. 멤버들에게 눈짓을 한다. 의미심장한 미소이다. 드러밍의 마지막 마디를 첫 곡의 리프로 강렬하게 매칭시키며 자연스럽게 무대로 나아간다. 벌써 객석은 일부 광분하고 있는 관객들도 보인다. 모두들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잘 먹인 기타 사운드가 가슴을 강타하듯 파고드니, 나의 이성이 초 시계를 재듯 기계적인 피킹을 완수하고 있다. 딱 맞아떨어지는 합주의 감동을 사람들은 알까? 느낌이 좋다. 첫 번째 곡에 피드백을 먹인 후 다음 곡으로 성공적으로 넘어가니 그제야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솔로잉에 앞서 자신만만하게 좌중을 둘러본다. 어두움에 눈이 익을 무렵,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하여 다음 리듬을 놓칠 뻔했다. 앞열에서 놀라움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관객이 흐릿하다. 저 사람은, 저분은…. 갑자기 주변에 소리가 사라진 것 같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는 와중에 리듬은 계속 흘러간다. 머릿속에서 사운드가 붕 뜨다가 떨어진다. 뭐지?  

‘헛, 김 선생. 야자 지도 안 하시고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헉, 교감 선생님. 당신이 왜 여기 맨 앞 열에 계시는 겐가요.’


놀라움은 식은땀으로 변하고 오랜 시간 구축해 놓았던 양변의 세계가 충돌한다. 붉은 경고등이 켜지며 침입자를 감지한다. 드럼이 강박적으로 스네어를 두드리고 있다.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치는 와중에 고맙게도 무의식 중으로 손가락이 리프를 따라가고 있다. 오늘은 느낌이 좋았다. 암 좋았구 말고. 이 느낌을 유지해야 해. 가까스로 세계가 다시 분리되기 시작한다. 따라가야 해. 나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지었다. 떨떠름한 듯 놀란 둘의 시선이 다시 교차한다. 무언의 대화가 스친다. 미소가 미소를 만난다.

교감 선생님....

김 선생.....

사위가 다시 어두움을 드리우며 각자의 위치를 묻어두기 시작한다.        



…뭐 그런.



Helmet 헬멧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상상했던 것은 그런 그림이었다. 물론 거짓말이다. 리드 기타이자 밴드의 핵인 Page Hamilton 페이지 해밀턴은 재즈기타와 맨하튼 음악 학교를 다니며 밴드를 꿈꾸었던 전형적인 음악인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뮤직 비디오를 보았을 때 이 언발란스한 매칭은 짓궂은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촘촘하고 정교하게 파고드는 기타 리프는 깐깐한 수학 선생님을 연상시킨다. 말쑥하게 자른 머리에 폴로 티, 스니커즈를 신고 들려주는 강력한 사운드는 어리둥절하다. 결코 앙칼지지 않은 목소리로 샤우팅을 해 보려는 노력이 어찌나 방과 후 몰래 밴드 활동을 하던 쌤 같던지 말이다. 이게 왜 그런가 하면 90년대 초반 당시에는 이런 강한 사운드류를 구사하는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클리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스키니 진에 치렁한 머리, 반쯤 가린 눈에 진한 화장, 포효하는 목소리, 8비트와 16비트의 질주, 솔로잉의 퍼포먼스 뭐 그런 거 말이다. 마트에 갔다 오신 듯한 패션으로 전혀 생경한 리프의 패턴과 강렬한 사운드를 무두질하는 이들이 생뚱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사운드를 두텁게 가져가고 기계적으로 재단질하는 성향, 솔로잉의 최소화, 캐주얼한 복장은 훗날 직간접적으로 파워 메탈, 인더스트리얼 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평상복을 입고 있는 슈퍼맨 마냥 짐짓 근엄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난 후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갔을 때 음악에 꼼꼼함을 칠하는 어느 수학선생님의 이중생활, 이런 상상을 즐겁게 해 보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시끄러운 음악이라고 경고문을 붙였지만, 시끄럽다고 치부하기에는 좀 코드가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다. Helmet의 [Meantime] 앨범은 메탈이라고 한정하기에는 아쉬운 지점이 존재한다. ‘헤비’하다는 단어는 어울리지만 시끄러움과는 결이 다르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녹음이 꽤 잘 되어 있기에 좌우 이어폰으로 나뉘는 두 대의 선명한 기타, 지글렁 대는 둔중한 베이스, 탄성이 굉장한 드럼이 오밀조밀하게 뭉쳐 하나의 굵은 선을 유지하고 있다. 유니크하다는 말을 써도 좋을 기타 사운드는 절묘하게 끊어치며 리듬과 그루브를 깐깐하게 만들어 준다. 밀도가 상당하여 그 무거움을 그대로 암기해야 할 것 같다. 드러머 John Stanier 존 스타니어는 [Meantime] 음악 사운드의 또 다른 핵심이다. 중공업 공장의 기계가 반복적으로 망치질을 하듯 간결하게 뽑아내는 리듬은 앨범 전체가 공학적인 깔끔함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 준다. 나는 엔진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런 부분에 동의한다면 이 앨범 또한 즐겁게 들을 수 있으리라. 누구나 인정하는 대곡인 <Unsung>이 1992년에 나왔다. 사운드가 전혀 세월을 타지를 않는다. 탕탕거리는 드럼이 전주를 시작하면 항상 작은 흥분이 일어난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접어들면서 모두가 한껏 피치를 올려 공간 전체를 빼곡히 채울 때의 감흥이 어떠할지.

그래서 내게 이들의 사운드는 세련됨이란 단어가 적절하다.



Helmet [Meantime] 1992년 <Unsung>

https://youtu.be/jBfygUiS50g?si=4QdAa_GE3SIIv_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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