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촌장 [푸른 돛], [숲]
자, 진도를 나가기에 앞서 사전 설문을 진행하겠어요.
이 중에 ‘시인과 촌장’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 있나요? 하나, 둘, 셋, 넷…. 네, 좋습니다. 이분들은 ‘시인과 촌장’ 교양선택으로 해서 연말까지 과제 하나만 제출하시면 되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전공필수로 진행해서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을 듣고 누에바 깐시…….
쿠아아왕!!!!
아앗! 자네 수업시간 중에 이게 뭔가. 두 주먹을 쾅 치며 분연히 일어나다니.
꾸에에에엑! 교수님.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꾸아아악.
이것 보게,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뭔 소리인가. 지금 신성한 강의실에서 이 무슨 망발인가. 자네, 수업 방해하면 퇴장하는 수가 있네.
제게 '시인과 촌장'을 교양선택으로 택하라고요? 어찌 대명천지에 이런 법이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사지가 파르르 떨리고 천지가 격노하고 죽은 관우가 살아 돌아올 일입니두아아아악!
(하! 미친놈 같은데 이를 어쩐다….) 그게 도대체 뭔 소린가. 뭔 얘기를 하는지 들어나 봐야 알 것 아닌가. 진정하고 설명을 해 보게. 밑도 끝도 없이 교수의 방침을 거부하겠다니.
교수님. 일전에도 윤병주 좋아하는 사람 손들라고 해 놓고선 별 희한한 Gov’t Mule 곱드 뮬인가 곱등인가 하는 그놈도 무려 전공필수를 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그 과제를 한다고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십니까. 맞지도 않는 시끄러운 음악 꼬박 밤을 새우며 들어가면서도 ‘허허 그래도 우리 교수님 무언가 뜻한 바가 있으시겠지’ 하며 지금껏 따라왔는데, 오늘 ‘시인과 촌장’을 교양선택으로 제출하라고요?!!! 허허, 하하 이것은 저엉말로 안될 말이지요. 안되고 말고요. 왜냐구요? 잘 모르시겠다구요? 그럴 리가요. 교수님께서도 과거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 어린 시절 금잔디에서 놀던 때 말입니다. 너무 멀리 왔다고요? 그래 봤자 사십 년 안팤 아니겠습니까? 그 어느 집에나 탁상 라디오는 있던 시대 말입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들리던 <사랑일기>를 모르긴 몰라도 들어보셨을 텐데요. 대한민국에서 <사랑일기>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아름다운 가삿말에 감동 먹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구요. 제가 말입니다. 교수님. 무려 그 가사를 국민학교 5학년 때 다 외운 사람입니다. 구구단도 6학년이 되도록 칠구육십일 하던 제가 말입니다. 그 시절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뭐 알겠습니까. 밖에 나가서 닭싸움이나 하고 흙이나 먹고 다니지.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까무잡잡한 애의 귀에도 무언가 솔직하더란 말입니다. 그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기분 말입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날으는 비둘기의 날개 죽지 위에 뭔가를 쓴다나 뭐라나 기분이 이상야릇하지 않겠어요? 까망 봉다리를 들고 골목길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어깨가 다르게 보였던 기분 말입니다. 제가 무려 라디오 방송을 그때부터 들으며 행여나 그 곡이 나올까 오매불망 얼마나 기다렸게요. 아버지 몰래 메들리 전집 카세트테이프 구멍을 투명테이프로 막아놓고 잽싸게 녹음버튼을 눌렀단 말입니다. 제가 공부는 못했어도 말입니다. 근성 하나는 있거든요. 공책 뒷장에다가 플레이 포오즈 플레이 포오즈 눌러가며 귀로 가사를 다 눌러 적었지요. 제가 구구단은 사칠이이십육 해도 그 4절이나 되는 가사는 모조리 다 외워버렸단 말입니다. 아, 교수님 물론 제가 그 가사 좀 다 외웠단 흡족함으로 이런다고 생각하시면 정말 오해입니다. 교수님도 다 아시면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혼자 골방에 들어가 저린 마음을 부여잡고 누군가에게 연서를 쓰지 않으셨어요? 그런 감성을 어디서 돈 주고 구한단 말입니까. 2집 [푸른 돛]을 한번 보세요. ‘시인과 촌장’이 물론 하덕규와 함춘호가 짝짜꿍 했지만 연주인들 면모를 보면 화들짝 놀랄만하지 않습니까. 거, 불멸의 조동익이 베이스 치고 편곡까지 한 앨범을 가지고 누구는 전공필수로 넣고 ‘시인과 촌장’은 정녕 찌끄라지 취급이십니까? 교수님께서는 <비둘기에게>, <떠나가지 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으로 이어지는 3부작을 들으며 그 절절함에 가슴 아픈 적이 정녕 없으셨단 말씀입니까? 저는 교수님 심장이 그런 무쇠솥단지는 아닐 거라고 참말로 믿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진짜 있다고 믿던 나이 아닙니까. 착하고 예쁜 것들만 알고 있는 아이에게 <얼음무지개>를 내려 이 세계는 마냥 아름다운 동요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 보답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지개를 만져보려다 절름발이가 되었다지 뭡니까. 아 추운 바람이 불 땐 저도 옷깃을 여매고 그 추위를 함께 견뎠던 시간들, 봄이 그래도 오고야 말 것 같았지요. 별로 안 추우셨다고요? 설마 그럴 리가요. 저는 교수님이 그렇게 살얼음 같은 분은 아니기 때문에 여지껏 따라왔었지요. 교수님은 동물을 키워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으시다고요. 저도 없습니다. 가난해서 먹일 밥이 없었지요. 그래도 저는 그 부드러운 털의 감촉과 앙 깨무는 이빨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지금은 누구나 반려견이다 집사다 집집마다 키우지만 사실 제 고양이는 음악 속의 <고양이>가 첫 반려묘였단 말입니다. 그 부드러운 발과 슬픔 없는 꼬리,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았다니깐요. 교수님, 지금 입술이 달싹이고 혀가 살짝 나오셨습니다. 아, 알겠다. 허공으로 가득 차 있는 [숲]은 왜 얘기하지 않느냐구요? 가시나무요? 아니 그런 당연한 말씀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시나무>에 사시나무 떨듯이 아파해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니 교수님도 그러시다고요? 충분히 이미 인정하시네요. 그렇죠. 내 안에 내가 그렇게 많은 줄은 진짜 진짜 몰랐다니까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안 가르쳐 주는 거를 노래가 가르쳐 주더란 말입니다. 기가 맥힐 노릇이지요. 이거 국가에서 상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위선양도 하고 글로벌로 진출도 하고. 교수님들은 매번 글로벌 인재, 글로벌 인재 하지요. 아,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고 어린 시절부터 얘기를 좀 해 줘야 그런 너른 마음이라도 꿈꿀 수 있지 않겠어요. 딱 눈 가리고 귀 가리고 숲 속에만 있는데 글로벌이 개로벌밖에 더 되겠어요? 우리나라 교육이 이런 데 더 치중해야 한다 이겁니다. 제가 언제부터 대한민국 교육을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했냐고요? 교수님, 제가 이래 봬도 그 덕에 숲에서 나와야 숲이 느껴지는 것 정도는 압니다요. 아무렴요. 교수님, 문득 숲 속을 나왔었을 때 그 파란색 옹달샘 속에 비친 하늘이 기억납니다, 교수님 기억 나시죠. [푸른 돛]의 비둘기가 터져버린 울음으로 <새털구름> 속으로 날아가 버린 사실 말입니다. 저도 그땐 진짜 함께 따라가 보고 싶었다니까요. 비둘기 가지무아아아 그렇게 악을 쓰며 절규하고 싶었답니다. 아아 문득 슬퍼지네요. 그래도 너무 슬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교수님. 슬프던 시간은 때로 아름다움을 동반하지 않을까요? 새털구름을 타고선 슬프던 지난 모습 다 잊고 <좋은 나라>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그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교수님은 그 마음을 잊어버리신 건 아니겠지요? 짝사랑이라도 했냐고요? 물론 저도 소싯적 짝사랑하는 소녀가 있었지요. 암요. 손 한번 못 잡아 봤지만 스쳐 지나듯 새끼손가락이 닿았던 일은 지독하게 기억합니다. 밤잠도 못 이루었었지요. 갑자기 왜 사랑 타령이냐고요? 사랑을 타령이라니 그렇게 폄하하시니 섭합니다. 제가 좋은 나라에서 무언가를 만나고 싶었는지 대체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요? 좋은 나라에는 소녀의 꽃밭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교수님은 한용운 선생님의 시에 밑줄 안 그으셨습니까? 어린아이에게 이런 염원을 가르쳐 주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요. 심지어 시를 썼단 말입니다. '시인과 촌장'이 벌거숭이 까무잡잡한 애를 시로 내몰았다니까요. 장원까지는 아니지만 무려 입선이나 했단 말씀입니다. 고작 입선이라고요? 교수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교수님 개근상만 받으신 것 다 아는데 이런 걸로 트집 잡으실 겁니까?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베낀 것 아니냐고요? 흠흠, 거 무슨 과거의 아이에게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시원한 나라에서 살던 새봄 바람이었단 말입니다. 그 쪼끄만 애가 마음을 표현해 보겠다는데 그게 더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시는데 그럼 우리 아이들 어떻게 자랍니까. 데미안이 거 그럽디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고. 저도 그 순간 알을 까고 나오지 않았겠어요? 어떻게 알 속에 있었는 줄 알았냐고요? 제가 그 작자를 좋아는 하지만서도 사실 애가 뭘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교수님. 저는 느꼈습니다. 그때 <푸른 애벌레의 꿈>이 폭발하며 오줌을 찔끔 흘렸을 때 말입니다. 제 속에 있는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를요. 울보냐고요? 교수님 흙 파먹고 개천에 멱을 감던 감수성이란 말입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릴 기세 정도는 되지 않겠어요? 헛! 눈이 슬쩍 흐려지시는 것 같은데요.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저도 교수님이 숨죽여 훌쩍였던 것 다 압니다. 후련하게 이제는 털어놓으셔도 됩니다. 그게 자유 아닌가요? 자유. 지금 마음이 흔들리시죠. 엄청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와 왜 내가 전공필수로 하지 않았나 자책하시는 것 압니다. 암요. 지금 입술을 또 달싹거리시고 쓰읍 입맛을 다시네요. 아, 물론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압니다. 그 뭐냐 약간은 종교적인 경건함이 인생의 후반부로 가면서 보이더라는 말씀이지요? 알죠, 알구요. 그렇지만 [숲]까지는 괜찮다 이겁니다. 그 이후 행보를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뭐 그럴 수 있구요. 저도 쬐끔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아저씨의 마음이고 지향하던 바이자 가치관인데 범인이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덕규 아저씨가 이렇게 많은 선물을 남겨 놓았는데 더 욕심을 부리는 것도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교수님 그러다가 벌 받습니다. 거, 제가 무교라도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깨어있는 인간이다 이 말입니다. 진짜 저 부처님 오신 날 교회가구요. 크리스마스날 절에 가고, 이스터 데이에 사원 가는 인간이다 이 말입니다. 밸런타인데이에 사탕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저 흥분했냐고요? 아닙니다. 저 아주 말똥말똥하고 명료한 정신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 마음의 일필휘지 같은 겁니다. 교수님도 이젠 참회하십시오. 어서 고백하십시오. 빼앗긴 것이 너무 많아서 모두 되찾으려고 발버둥 쳤던 지난날을요. 가진 어둠이 많아서 모두 버리기까지 아프게 흘렸던 눈물을요. 마음이야 아프겠지만 괜찮습니다. 교수님의 사라진 감성이 여기 다시 돌아올 일 아니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어리석었다고. 비둘기 안녕 하고 내 보낸 내 <나무>를 다시 찾아 올 <때>라는 것을요. 연민을 느끼십시오. 전공필수는 못할망정 교양선택으로 지침을 내린 어리석었던 자신에게요. 천지가 요동하고 잠잠하면서도 광풍이 몰아치고 고요할 일입니다. 제가 학점을 디 마이너스로 받는 한이 있더라도 전공필수로 가야 한단 말입니다아아아아 꾸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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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자네, 거품 물고 얘기하는 것 내 모르는 바 아니네. 그런데 여기가 어디인지 아는가? 자네 전공은 정치외교학과야. ‘시인과 촌장’으로 전공필수를 하겠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가당키나 하는 소리를 해야 맞장구를 쳐주지.
Enough! 미친 짓도 작작이네.
…Professor, I’m goint to quit now. From this moment, I’m a whole new person.
Maybe, I might have to raise my BLUE SAIL, Professor. Good bye.
What…?
절름발이 소년과 함께 무지개 모험을 떠나고 싶다면
시인과 촌장 [푸른 돛] 1986년 <얼음무지개> https://youtu.be/89HIBPAW9VY?si=pi1b0nNjgdojp__z
지난 자신을 안아 주고 싶다면
시인과 촌장 [숲] 1988년 <푸른 애벌레의 꿈>
https://youtu.be/YsKfhYmNn7Y?si=Mgefm_iM278DkM9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