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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Nov 26. 2024

그녀는 사실 사운드 엔지니어

Agnes Obel 아그네스 오벨 [Aventine]

덴마크 코펜하겐이라니, 얼핏 숨겨진 신비로움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이미지가 함께 한다. 하얀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검은색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그녀의 이름은 아그네스, ‘순결’이란 뜻을 지닌 영미권 성과 매혹적인 목소리는 잘 어울린다. 그녀의 외모는 적어도 한 번은 더 손을 가게 하는 장점이 될 것이다.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의 실내악 편성이라니 왠지 정적이면서도 독특한 음악을 할 것만 같다. 마케팅적인 관점이라면 여러 면에서 끌릴 만한 요소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런 모든 것을 제쳐두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하게 된다. Agnes Obel 아그네스 오벨은 지금까지 네 장의 앨범들을 내면서 전부 자신이 작사, 작곡, 피아노 연주, 보이싱은 물론, 프로듀서, 녹음과 믹싱 과정까지 진행하였다. 특히 녹음과 믹싱을 직접 진행하였다는 것은 가장 주목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신의 의지가 앨범 모든 곳에 개입되어 있다는 말이다. 어떤 공간에서 연주를 할지, 마이킹을 어느 위치로 진행할지, 보컬의 리버브라던지 이펙터는 어느 레벨까지 조절할지를 직접 결정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음악인의 내면에서 표현의 덩어리가 쌓여 간다. 그리고 이것이 형식미를 가질 때 어떤 소리의 결을 통해 발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Agnes는 단순한 자작곡뿐 아니라, 보이싱과 각 악기가 내보이는 톤을 특정 레벨로 녹음하고 융합시키고 여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집중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흡족한 결과물로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만든 자신의 소리 자체에 상당한 공을 들였을 거란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앨범들은 여러 가지 집중해야 할 거리를 청자들에게 남겨 주었다. 음악이 뭐라고 집중해서 들어보아야 한단 말인가. 흘려 들어도 좋은 게 음악일 테지. 단, 개개의 파트를 녹음하고 믹싱을 통해 다져 나갔을 호흡을 상상해 보았을 때, 확실히 더 즐겁게 다가오는 음악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은 라이브에서도 잘 볼 수 있다. 피아노의 그녀와 첼로, 바이올린, 이 세 여인이 보컬과 코러스까지 소화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라이브에는 신중한 우아함이 있다. 클래식 공연은 아니지만 숨소리를 죽이고 집중하게 만든다. 소리의 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앨범에서의 곡들이 실황 라이브에서 부족함이 없이 펼쳐지는 경험은 또 다른 맛이다.


십 년의 다이어리를 들추어 보면 근본적인 중심은 가지고 있되, 내용면이나 형식적인 면에서 계속 변화를 가지려는 면이 보인다. 첫 번째 앨범은 ‘피아노’와 ‘나’라는 자아를 바탕으로 세상에 나오는 출사표 같은 음악이다. 여기서 피아노는 그녀의 두 번째 인격과 같다. 두 번째 앨범은 그동안의 복합적인 감정을 현악기의 도움으로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세 번째 앨범은 한발 더 나아가서 음향의 기술적인 면을 적극 활용하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Familiar>에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낮게 변조시켜 굵직한 남성의 톤으로 일그러뜨린 후 제2의 인물처럼 연기하기도 한다. 형식이란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넘어서는 것이다. 네 번째 앨범은 수 겹의 목소리가 날아다니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하늘이 존재한다.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기에 더욱 자신감 있게 활용하고 있달까. 하긴, 십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동안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세계가 생겨나고 저물었을까. 그리고 그 거대한 시간의 더미에서 담아 올렸을 이야기들이란 말이다.  


실내악의 편성이라니 느긋하게 배경으로 틀어놓기에 편안한 음악일까 싶지만 그렇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현악기는 때로 매우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따뜻함만을 주지는 않는다. 소리에 여백이 많을 때는 비어 있는 공간에 신경이 쓰일 수도 있다. 피아노가 깨끗하고 명료하게 다가올 땐 불안감을 동반할 수도 있다. 공간감이 상당한 그녀의 목소리는 좀 더 무채색에 가까울 지도. 음악은 여러 가지 불확실한 감정을 담고 있어 정확한 답을 내어놓지 않는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그녀의 앨범은 약간의 피곤함을 동반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친절한 편안함은 아니겠지.

그래, 개인적으로 즐기게 되는 음악들은 그런 것 같다. 들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도 함께 다가가서 중간쯤 어딘가에서 만나는 음악, 왜 이렇게 소리를 썼을까 궁금해지는 음악, 여러 가지 겹쳐진 것들이 실타래처럼 물음표를 안겨주는 음악 같은 것들.



Agnes Obel [Aventine] 2013년 <Fuel to Fire>

https://youtu.be/MWUhIURJW_4?si=zLMj_rk360MQ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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