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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Dec 08. 2024

집도 절도 없는 음악

Eric Clapton [Just One Night]

Eric Clapton 에릭 클랩튼의 음악을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은, 이제 어떤 시대의 음악을 더 좋아하는가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Blues Rock 블루스 록 음악 역사의 초기부터 큰 영향력을 끼쳐왔고, 활동하고 있는 현재에도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칭호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긴 활동의 시간을 비유하자면 한국에서 조용필이 비슷한 위치를 차지할 것 같다. 그만큼 그를 얘기하고자 할 때 가져갈 수 있는 관점 또한 즐비하다. 블루스 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기타리스트로 접근하자면, Yardbirds, Bluesbreakers의 명반부터 거쳐간 슈퍼밴드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것이다. <Change the World>, <Tears in Heaven>, <Let It Grow>,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등 그의 출중한 노래 실력과 팝 적인 감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여기서 나는 그의 솔로 시절을 얘기하되 그가 만들어 내는 기타 사운드로 범위를 좁혀보고 싶다. 그렇지만 1970년부터 솔로로 전환하여 지금까지 발매한 정규 앨범만 22장이다. 이 모든 앨범들에 마음이 끌렸을 리도 만무하다. 70년대의 연주 스타일과, 2000년대 음악 또한 어떤 지점을 중요시 여겼는가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 스튜디오 앨범이 주는 정제된 한계도 존재한다. 그런 여러 가지를 따져서 단 한 장의 쏠쏠한 앨범을 얘기하는 것이 명료할 것이다. [Just One Night] 라이브 앨범이 그것이다.


블루스 록은 잘 녹음된 라이브 앨범이 정교하게 믹스된 스튜디오 앨범보다 큰 감동을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블루스 락은 단순한 후렴구가 있는 노래뿐만 아니라, 중간중간에 넣어주는 추임새부터 간주에 플레이되는 솔로잉이 변화무쌍하다. 그 당시 무대에서만 들어볼 수 있는 현장감 있는 에너지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연주인의 마음이 기타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날것의 시간들이라고나 할까. 즉, 재즈 앨범과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블루스의 고전 역시 재즈 연주인들에 의해 계속 재생산되니, 기실 둘은 하나의 부모를 둔 형제자매이기는 하다. 멜로디가 보다 중시되는 한국 음악 듣기에서 블루스 장르는 심심할 수는 있겠다. 정해진 마디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코드, 구성으로 보자면 말이다. 달리 보자면 그런 단순한 구성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으니 이것이 매력일 것이다. 누구나에게 공평한 하얀 공책 위해 글을 쓰게 한다. ‘뉘앙스로 만들어지는 음악’, 내가 가지고 있는 블루스 음악의 정의이다. 

본 앨범은 1979년 일본 Budokan에서 진행된 공연 실황이다. 삼십 대였던 그의 기타가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라이브 에너지로 가득하다. 내한공연답게 여러 유명한 곡들의 라이브가 더블 앨범으로 빼곡히 포진하고 있어, 초창기 블루스 록의 베스트 앨범을 마주하는 듯하다. 하몬드 올갠, 베이스, 세컨 기타 세션의 안정적인 연주는 스튜디오 앨범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혹자는 본 앨범의 <Wonderful Tonight>을 오리지날 버전보다 더 좋아한다고 얘기할 정도이다. 

또 하나의 축으로 기타 사운드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다른 즐거움이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투명하고 명료한 사운드를 가장 잘 뽑아내는 기타리스트인 만큼, 그가 어루만지는 톤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감상이 될 수 있다. 한 음 한 음에 신경을 써서 연주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가 어떤 필을 가지고 어떻게 기타를 짚어나가고 있을지 눈앞에서 상상하게 된다. 특히 Woman Tone 우먼 톤이라 통칭하는 그의 따뜻하고 매력적인 기타 사운드를 여기에서도 확실히 느껴볼 수 있다. 필시 Neck Pickup 넥 픽업 (프런트 픽업)을 사용했을 것이 분명한 스트라토캐스터의 정체성이 있다. 뭐랄까 얇은 비단을 덧된 것 같은 부드러운 톤 말이다.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깁슨이나 펜더 기타를 선택하며 누군가의 필링을 닮아가려 했을 것이다. Eric Clapton의 매끈한 펜더 기타 톤은 그 교과서의 중심에 있다. 그 가치가 마치 기타 한대를 들고 무심히 서 있는 앨범 자켓에 서린 것 같다. 칼 한 자루가 전부인 무사가 풍기는 포스 같은 것.


블루스 기타의 깊은 맛을 전해 주는 곡을 고민하던 중 느린 블루스로 손을 뻗었다. 이 라이브 버전의 <Double Trouble>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Otis Rush 오티스 러쉬가 만든 고전 블루스는 그의 손에 의해서 좀 더 극적인 요소를 담아 해석된다. 원래 가사 자체가 우울하기는 하다. 가난한 노동자의 기댈 데 없이 암울한 현실에 잠 못 드는 불면을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곡에서 Otis는 흑인 블루스 주자 특유의 해학이 담긴 자조로써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Eric Clapton의 걸쭉한 해석은 해고된 후 갈 곳을 잃은 이가 어느 노포집에서 막걸리 한잔 진하게 들이키며 신세한탄 하는 절절함이 느껴진다. 취업도 못하고, 과시할 돈도 없고, 품위 있게 입을 옷 한 벌 없는 현실. 남들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누군가는 백만장자가 되었다지만, 온통 불운이 따불 트러블로 다가와 잠들지 못하는 심정이 기타로 펼쳐진다. 음을 어찌나 세심하게 고르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앨범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음악 세계를 짧게 훑어보는 데는 충분한 쓰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화이트 블루스의 한 대목을 느껴 보는 부분에서도.



Eric Clapton [Just One Night] 1979년 <Double Trouble>

https://youtu.be/RvgmpBGdZpQ?si=3Msw9bqYDX-Wvp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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