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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재즈는 기세지

Kamasi Washington 카마시 워싱턴 [Epic]

by Jeff Jung

Kamasi Washington 카마시 워싱턴의 첫 만남은 신선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 재즈 뮤지션의 등장과 다른 파격이 있었다. 아마 누구라도 CD 3장짜리에 빼곡히 채워놓은 2시간 53분짜리 데뷔앨범을 대한다면 궁금증이 일 것이다. 도대체 뭐 하다 나온 친구인가. 반짝이는 별들과 행성을 배경으로 자신의 분신을 끼고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전면 포즈엔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더군다나 앨범 제목이 [Epic] 서사시란다. 이거 신화와 우주를 들먹여야 하는 규모인가? 재즈를 듣는 이라면 이 구성만으로도 그 안의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그 안에는 더 한 재미가 흐르고 있었으니까.

재즈는 기세인가?


Kamasi Washington의 음악이 좋았고 앞으로가 계속 기대되었던 이유는 현대 재즈 씬에서 그 만이 자리 잡고 있는 독특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크루의 음악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힙합에서 이 크루란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는 이 집단적인 교감이 가득한 음악 활동을 재즈 씬에 가져왔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은 모두 흑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알다시피 흑인의 공동체 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미국에서 배타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자신들끼리 뭉치고 끌어주는 현상은 매우 강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오랜 시간 차별적인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생존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음악 집단 속에서 그는 한 명의 재즈 색소포니스트이기도 하지만 음악감독으로 임하고 있다. 운이 좋게 최근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방향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었다. 공연은 Kamasi 본인의 연주 역량을 돋보이는 표현의 장이라기 보단, 집단 속에서 펼쳐지는 에너지에 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과거 이와 유사한 유형을 보아 왔다. 바로 Miles Davis 마일즈 데이비스를 통해서이다. Miles가 천재라고 불리는 데에는 그의 선구적인 발자취뿐 아니라,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뛰어난 뮤지션들을 기가 막히게 활용했던 데 있다. 중 후반기의 공연을 보면 그는 재즈 트럼페터라기보다는 오케스트라의 악장 같은 역할을 하였다. Kamasi의 공연이 딱 그러했다. 그가 직접 색소폰을 연주하는 시간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보다 크루의 역량 전체를 이끌어 나가고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아프로 아메리칸의 기수가 추장의 복장을 하고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말이다. 테마를 제시하고 동료들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도록 판을 깔았으며 머리로 돌아오는 타이밍을 정리했다. 초대 가수처럼 여러 명의 동료들이 오고 가며 무대를 새롭게 채워주었다. 이 같은 방향성은 그의 음악이 다른 이들과의 협업으로 풍성해질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기 때문에 윈윈의 방식이라고도 하겠다. 그리고 이 마당발의 역량은 그의 재즈를 특징짓는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의 스케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Epic] 앨범은 그 러닝 타임도 그러하거니와 그 속에서 함께 연주하는 규모도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 재즈 편성과는 아득히 다르며, 빅밴드의 규모도 넘어버린다. 두대의 드러머, 두대의 베이스가 동시에 난장을 벌인다는 것만으로도 음악의 사운드는 꽉 찬다. 재즈를 구성하는 고유 악기들 사이사이를 메우는 음악적인 요소는 다양하다. 스트링 사운드가 분위기를 장엄하게 이끄는 가운데 수시로 치고 빠지는 합창과도 같은 규모의 코러스는 서사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간다. 아마 [Epic]의 사운드를 라이브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3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하리라. 물론 초창기 그는 큰 규모의 인원으로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라이브의 맛이란 상상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이 기세는 2집 [Heaven and Earth]에서도 이어 나간다. 더블 CD 2시간 24분 분량의 퍼포먼스로 말이다. 역시 배포는 크고 볼 일인가.


셋째, 앞서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자면 그는 현대적인 재즈 음악을 할 것 같은데, 나는 그가 좀 더 정통 재즈에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전통이라 함은 비밥과 프리재즈 쪽의 카테고리를 짚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음악을 더욱 재미있게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그 자신이 젊은 음악가이고, 욕심이 많기 때문에 여러 요소가 버무려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근원에는 테너 색소포니스트로서 자리 잡은 정통성이 엿보인다. 재즈에서 개인 선호도를 얘기하자면, 고전을 재해석하는 쪽보다는 새로운 작곡을 하는 쪽, 강한 퓨전 요소보다는 전통을 기반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쪽에 더 흥미가 있는 편이다. ECM 계열의 완벽히 다른 방향성은 논외로 둔다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전통 지향의 재즈를 즐기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Kamasi는 이 정통성 도우 위에 다채롭게 비튼 토핑맛을 선사한다. 물론 이런 시각도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질 것이다. 1집 [Epic]의 컨셉이 다르고 2집 [Heaven and Earth]가 다르다. 그리고 최근 3집 [Fearless Movement]은 보다 다채로운 표현이 보인다. 이는 그간 그 자신의 발전된 경험, 크루들과 협업의 결과일 것이다. 예를 들어 <Interstellar Peace : The last Stance>는 영화와 같은 극적인 면이 부각된다. 마지막 곡 <Prologue>에서 Astor Piazzolla 피아졸라의 <Finale (Tango Apasionado)> 테마가 전진하는 리듬 속에서 터져 나올지는 몰랐다. 하고 싶은 말만큼 계속 도전하는 작가인 것이다.


그가 현재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냐라고 하면 의문을 가질 것이다. 반해 핫한 뮤지션임에는 틀림없다. 자신의 활동 카테고리를 확실히 다지고 착실히 전진하는 음악인임은 분명하다. 이만한 포스와 개성도 드물다. 이렇게 통 크게 노는 친구도 없다. [Epic]이나 [Heaven and Earth] 앨범은 한번 다 정주행 하기에는 러닝타임의 압박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틀어놓고 있으면 즐길 거리가 속속 들어온다. 수많은 악기들이 오고 가며 휘몰아치고, 서사시의 풍경이 죄여오다가 사라진다. 여성 보이스로 잠시 쉼을 주는가 싶더니, 프리재즈로 휘어 갈기는 사자후 같은 색소폰 소리가 들려온다.


세 장의 앨범커버를 바라본다. 무사처럼 경건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서 있다. 마치 자신은 현대 재즈의 초상이라는 것처럼 거창하게 말이다.

아무렴, 재즈는 기세지.

왠지 그렇게 눈짓을 할 것 같지 않은가.


Kamasi Washington [Epic] 2015년 <Change of the Guard>

https://youtu.be/NtQRBzSN9Vw?si=Xq38eq6t05A4Re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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