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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ru Apr 20. 2024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긴긴밤]

#책 발제 1.

『 긴긴밤』_루리 作



발제문을 쓰려 책을 다시 읽어 내려가자 덜컥 겁이 났다.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순간순간의 장면에 과몰입된 나는 이 책 속에 완전히 휘둘리고 있었다. 책 밖으로 빠져나와 객관적인 시선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하지만 이미 늪에 빠져버렸다. 다른 선생님께 넘기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에 애꿎은 독서회 단톡방만 들락날락한다.      


  『긴긴밤』 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제 어린 펭귄은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검푸린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낼 것이며,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_심사평


     

학창 시절 『갈매기의 꿈』을 참 좋아했었다. 얇은 두께에 14살 나에게 주는 감동은 너무도 컸었다. 특히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조나단이 자신만의 비상에 성공하는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짜릿한 희열로 다가온다. 그 뜨겁고도 편안한 여운이 여기 『긴긴밤』의 펭귄으로 이어진다. 둘째 아이에게 이 책을 권했다. 학교에 들고 가서 읽겠다던 아이는 하교 후 엄마를 보자마자 와락 안긴다. “엄마 책이 너무 감동이었어.” 내가 질문하기 전에는 웬만해선 먼저 입을 열지 않는 10살 아들을 이토록 스위트하게 만들어 버린 책. 내 아이도 그 여운이 오래도록 그와 함께 할 거라는 생각에 왠지 뭉클하다.


갈매기 조나단 시걸의 여운이 펭귄에게로 또 내 아이에게로 이어지는 한편, 나는 코뿔소 노든에게서 『노인과 바다』의 짙은 바닷빛 여운을 느낀다. 비록 내 삶이라도 ‘내가 선택한 삶’이 있고 ‘삶에게 선택된 나’가 실존한다. 그런 인생의 맛을 조금 알아버린 지금의 나는 펭귄의 도전을 엄마의 마음으로 매우 응원하면서도 노든의 인생의 역경과 그의 마지막 선택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p40. 다시 눈을 떴을 때 노든의 하얀 뿔은 반쯤 잘려 나간 채였고, 그의 곁에는 더 이상 앙가부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철조망 앞에는 다음과 같은 푯말이 걸렸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흰 바위코뿔소, 노든을 소개합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분노와 미안함, 노든의 처참한 심정을 대신하는 눈물이었다. ‘삶에 선택된 나’의 상황이 이리도 고통스러울 수 있음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은 인간이 동물에게 하는 잔인함에 마음이 아팠을 장면이다.


『페인트』를 읽으면서, 성숙하지 못한 하나의 인격체로 또 다른 인격체를 돌보는 것 _에 대하여 생각이 깊었던 요즘이었다.

고민하나 가 늘었다.

생명체 vs 생명체의 입장에서 서로의 생명에 대한 윤리란 것이 존재할까? 내 생명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기준 된 윤리 말이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적용해서 그것이 순리인 듯,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내가 또 다른 강자에 의해 노든처럼 짓밟힌다면? 그때도 자연의 순리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진다.      


코뿔소 노든과 펭귄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충만한 사랑과 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코뿔소 노든은 자신의 핸디캡을 서로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당연했던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랐다. 노든이 정체성 찾기를 고민할 때 코끼리들은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노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노든의 거칠지만 따뜻한 품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먹고 자란 펭귄도 그랬다. 펭귄에게 자신의 바다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응원하면서 두려움에 차라리 코뿔소가 되겠다는 펭귄에게 노든은 말한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받은 사랑과 응원이 내 마음 바구니에서 넘치고 넘쳐흘러내릴 때, 비로소 세상에 한 발 내딛는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코뿔소 노든과, 펭귄이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들의 마음 바구니에 넘치는 사랑이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또 그 사랑을 베풀 수 있었으리라.      

".... 그땐 기적인 줄 몰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게. “     

어쩌면 나는, 지금 누리는 나의 기적을 너무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로 내 옆에 "우리"의 기적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 남편,
우리 아이,
우리 친구,
우리 책!






예스24리뷰 주간우수작으로 선정되었 글을 조금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https://sarak.yes24.com/blog/jhrpink/review-view/19032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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