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이 반짝, 마음은 바빠졌습니다. 예정에 없던 친정나들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둘러 엄마와 아부지에게 전화해서 주말 일정을 여쭤보았습니다. 동생들에게도 왕의 귀환을 예고합니다.
친정은 대구입니다만, 두어해 전 아버지께서 당신의 고향인 경주에도 작은 텃밭을 꾸리며 집을 하나 마련해 두셨습니다. 당신은 엄마와 농사를 짓고, 손자 손녀들은 틈날 때마다 놀러 오라고 하시면서요. 덕분에 코로나로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이 내려질 때마다 저희는 이곳 밭에서 뒹굴고 할아버지표 워터파크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일 낮의 한산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행운도 누리면서요.
남편의 깜짝 휴가 덕분에 - 꼬미는 오늘 있었던 유치원 적응기간 한 시간을 땡땡이치긴 했지만 - 저희는 급히 경주로 내려와서 알차게 놀고 이제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랍니다. 차 밀리는 시간을 피하고, 아이들이 차 안에서 평화롭게 잠잘 시간을 고르다 보니 지금입니다.
경주, 영천, 대구, 군위, 구미, 상주.... 창 밖으로 익숙한 지명이 지나갑니다. 드디어 문경새재가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는 그렇게도 안 보이던 문경새재가, 서울로 올라갈 때는 어쩜 이렇게도 빨리 나타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손 맛 가득한 음식 배불리 먹고, 아부지 덕분에 아이들과 추억도 듬뿍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트렁크에는 또 가득 싣고, 그렇게 서울 가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이 어쩜 이렇게 서운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득 충전한 덕분에 씩씩하고 즐겁게 또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먼 길을 불평 한 번 안 하고 묵묵히 운전대를 잡아주는, 그곳에 다녀오지 않겠냐며 먼저 물어봐주는 그에게 참 고맙습니다.
꼬미와 또미는 연날리기의 고수, 할아버지와 생애 첫 연날리기를 했습니다. 이 공터가 무려 '첨성대' 앞이라는 것을, 주변에 있던 작은 산들이 사실은 '천년왕국의 고분'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