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30대의 갑작스러운 여행

곰팡이는 시간과 비례한다.

by Biryong

작년과 올해, 하나의 프로젝트로 시간을 보냈다. 프로젝트가 나고, 내가 프로젝트가 되는 혼연일체를 경험하고 무언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함과 용기 끈기를 얻었고

지저분함 어지러움 그리고 곰팡이를 얻었다.

겨울 내내 문을 닫고 뜨거운 샤워를 했던 탓일까, 화장실에 동그란- 꽤나 귀엽게 생긴 검정 모양이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원래 이런 모양이었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웬걸 곰팡이네.

청소 후의 사진인데, 어지럽게 생긴 모양새가 원래 모양인가? 라고 오해할만하다.

자,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해 보자.


그 외에도,

네 개의 이불을 동시에 세탁하기.

그리고 어느샌가 세탁 후 빠지지 않는 물의 원인을 찾아내어 청소하기.

냉장고에 썩어 문드러져가는 야채들 버리기.

집안 곳곳에 올려져 있는 물건들 버리기.

어쩐지 집이 갑갑하고 쉴 공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왜 그 당시에는 미룰까? 조금씩 청소하는 마음으로만 지냈어도.

갑자기 어딘가 홀린 것처럼 한꺼번에 해치우려 하니 (당연하게) 무리가 왔고 몸살 날 뻔했다.


세탁기의 수평이 맞지 않아 탈수가 되지 않는 위기,

집 안 전체 락스의 냄새가 빠지지 않는 위기,

보수할 곳에 페인트를 칠해 페인트 냄새 또한 빠지지 않아 이틀간 집에서 못 잔 위기,

삼일 내내 환기를 시켜 놓아 집안 바닥이 얼음장이 되어버린 위기.

아, 그리고 하나만 보느라 삶의 기본인 '돈'에 관심을 끄고 살아버려 자금난을 겪어버린 가장- 가장 큰 위기.

카페인 때문에 심장이 뛰는 건지 불안함으로 심장이 뛰는 건지 알 수 없는 질병의 위기까지.

무언가 꽉 찼다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가는 찰나

동료의 제주도 여행 소식을 들었다. 별생각 없이 스카이스캐너를 열어보니, 제주도가 삼만 원이네 웬걸? 당장 모레부터 삼 일간 난 아무 일정이 없는걸?

지방에 케이티엑스 타는 것도 십삼만 원인데. 제주도가 삼만 원이라고?


그럼에도 ‘내 주제에 무슨‘이란 생각이 지배했다. 당연히 안 가야 하는 게 맞는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왜 계속 끌리는 거냔 말이다.


그래!


당장 다음 주부터 물류센터도 지원하고 노예처럼 일 하고자 하는데 지금을 놓칠쏘냐. 나 같은 프리랜서 백수가 좋은 게 뭐냔 말이다. 비수기에 여행을 가는 거지.

변명과 핑계의 인생이지만 무리해서 결제를 했다.

아무래도, 안 오면 안 될 것 같았다.

김녕의 모습

언제나 그렇듯 뚜벅이다.

1인 숙소에 묵었는데 책상 한편에 여러 권의 방명록을 발견했다.

오 년 정도 간 묵은 투숙객들의 글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 여행 온 것.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혼자 여행이라함은- 모두가 각자의 사연으로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순적이게도 난 그들과 연결되어있음을 느꼈다.

혼밥 혼커를 해본다.

아,

야채튀김과 소바를 먹을 때엔, 제주의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내 통장에게 양심이 찔려 먹지를 못 했다.

(다음부터는 장항준의 마인드로 팔천 원만 줘하고 구걸해서 먹어야겠다. 아쉬우니까.)


여행을 마무리하고,

무언갈 통쾌하게 얻어가진 못했지만

꽉 채워진 곰팡이만큼이나, 아픈 시간이 길었나 보다. 중요한 건 이제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청소했다는 것. 또 여행했다는 것.


자- 이제 일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