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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가 Feb 09. 2023

너 한국어 잘하니


새로 입사한 동료한테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다가 한국어 잘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 한국에서 왔어.”

“그래서 너 한국어 fluent 해?”

“어, 나 한국인이야.”

“응, 그래서 한국어 잘해?”

“나 한국인이라니까..?”


결국 나는 한국에서 25년을 살았다고 말하고 나서야 그 동료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한국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고 대학교도 한국에서 다녔고 독일에서 산 기간만 따지면 내 인생에서 겨우 사 년이다. 한국에서 취업만 됐어도 기꺼이 평생 동안 한국에 눌러앉았을 정도로 나는 한국어를 쓰는 걸 좋아한다.


대학생 때 미국에서 사서로 일하고 계신 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전공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직접 초청하신 분이었는데 한국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으셔서 그런지 말을 더듬었고 발음도 조금 부정확해서 강연내용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살더라도 한국어는 까먹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에 해외 취업을 와서 산지 이제 겨우 몇 년, 나는 한국어 자신감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 잘하냐는 동료의 질문이 괜히 더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 한국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잠을 설쳤다’라는 표현을 쓰다가 잠깐 멈춘 후 구글에 ‘잠을 설치다’를 검색해 봤다. 분명 아는 표현인데 내가 자주 안 쓰고 안 듣다 보니까 너무 낯설게 느껴져서였다. 심지어는 회사 부엌이 어떤지 엄마한테 카톡으로 설명하려다가 ‘부엌’에 들어가는 ㅋ 모양이 너무 낯설어서 국어사전에 검색해 봤다. 키읔이 들어가는 게 맞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나는 요즘 아주 심각하다.


회사 생활을 독일에서만 하다 보니까 내가 하는 업무 관련 용어가 한국어로 뭔지도 모른다. 영어를 그대로 쓰는지 아니면 한국어 전용 표현이 있는지 말이다. 예를 들면 영어로 “아니 걔는 릴리즈 됐다면서 핀도 없고 타임슬롯도 예약 안 돼있고 엠티데팟도 안 바꾸고 대체 뭘 한 거야?”를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왠지 타임슬롯이랑 엠티데팟은 표현이 따로 있을 것 같아서 궁금한데 굳이 찾아보기는 귀찮아서 궁금해하기만 한다. 예전에 한국 법인에서 일할 때는 한국 본사에 한국어로 예의 차려서 써야 되는 메일이 너무 어려웠다. 이제는 전부 영어로 쓰면 돼서 아예 한국어 업무 용어를 배울 이유도 사라졌다. 요즘 들어 한국어와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진다.


팟캐스트 방송을 녹음하다가 융진이 나의 월요일 발음을 아주 친절하게 지적했다. 내가 늘 [월료일]이라고 발음하는데 [워료일]이 맞는 거라고 했다. 한 번도 내 ‘월요일’ 발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옛날에 어딘가에서 잘못 배웠나 보다. 예전에는 한국어 문법이나 발음을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도 아무 생각 없이 넘겼다. 좀 틀려도 내가 한국어 원어민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다. "내 한국어 어떡하지 ㅎ" 하면서 고민이 찾아온다.


마음이 아주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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