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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대군인 김반장 Feb 05. 2023

직업군인이여, 이 글을 읽기 전에 전역하지 마라!

전역을 준비 중인 군인 또는 제대군인들에게,,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당신은 전역을 준비하고 있거나 훗날 전역을 하게 될 현역일 것이다. 전역하기 전에 이 글을 만나게 되었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하라. 


철저한 준비 없이 전역하였다가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고 깨달은 실전 경험을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 이미 전역한 제대군인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방향을 다시 잡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전역을 하면 취업과 창업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유망업종을 찾아 창업하거나, 큰 틀은 변함이 없다. 결국 하고 싶은 일보다는 먹고사는 일을 선택하게 될 확률이 높다.


나도 틀에 갇힌 생각을 벗어나지 못해 먹고사는 일을 선택하였다가 2년의 세월을 헛되게 보내고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먹고살기 위한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 경험하고서 ‘나는 누구인가?’를 끝없이 외치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이렇게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전역 후 어려움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 역시 전역 이후 실패와 사기를 경험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과를 내기도 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2주일 만에 2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하고 세계적인 문구 기업 LEGO 아시아 10개국에 수출을 보내기도 했다. 순수익으로 월 1,600만 원까지 벌어 보니 돈 버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돈 욕심에 사업 확장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주위의 만류에도 신규 사업을 시작했다가 인생의 쓴맛을 보았다. 불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대출금이 연체되기도 하였다. 견고함 없는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무기력감, 회의감, 불안감 등 살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부정적인 마인드가 다가왔다. 전셋집을 정리하고 월셋집으로 이사를 알아보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군대 선배의 도움으로 보증금 1,000만 원 월셋집으로 겨우 이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100m도 안 되는 아파트에서 통학하다가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연립에서 살게 되었다. 아빠로서 정말 미안했다. 그리고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괴로웠다. 잘살아 보겠다고 전역지원서를 던졌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당장 먹고살기 바빴고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직업 채용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30대 후반을 채용하는 회사는 많지 않았고 무경력자를 뽑는 곳은 거의 없었다. 군대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는데 이 기간이 사회에서는 무경력자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하는 수 없이 제대군인을 우대해 주는 회사를 찾기 위해 보훈처 산하 제대군인지원센터를 찾았다. 제대군인들의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다. 30대 후반 기혼자가 취직하기에는 보수도 맞지 않았다. 전역 전에 4천만 원 후반의 연봉이었는데, 채용공고 대부분 2천만 원 후반대의 연봉이었다.


더 이상은 나를 사회에 맞추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먹고살기 위해 사회에 나를 맞추기 시작했다. 알바 채용사이트를 통해 ‘소방설비 보조’ 일을 시작으로 대리운전, 분양 컨설턴트, 부동산 중개보조인, 애플리케이션 판매 영업, 기업컨설팅, 양말 노점, 식당 주방 등 짧은 기간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군복무 시 취득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으로 소방설비 보조 일을 시작했지만 급여는 최저시급으로 한 달 월급이 200만 원 초반이었다. 이 월급으로는 생계유지 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먹고살기 위한 일이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서 부동산 일을 시작했고 단기간에 돈을 벌었다. 영업직은 기본급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성과를 낸 만큼 수익은 천차만별이었다. 아쉬운 점은 급여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느 달은 목돈을 수령하고 어느 달은 급여 없이 지나칠 때도 있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때부터 도움이 될 만한 강의와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그제 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조금씩 알 수 있었고, 배움이 늘어날수록 욕심이 생겼다. 최상의 교육을 듣기 위해 고액의 강의료도 서슴없이 지불하였다. 


최고의 비즈니스 전문가들에게 컨설팅을 받으면서 뭘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배우면서 성과는 나타나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역 후 2년간 먹고살기 위한 일을 하며 즐거움과 보람은 전혀 없었다. 그저 가족들 밥 굶기지 않는 것에만 만족해야 했다. 전역 후 2년간 끔찍한 악몽이었지만 그 속에서 배움을 돈으로 바꾸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 


당신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회에서는 군 생활을 적게 했든 많이 했든 전역한 군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지 않다. 쉽게 말해 사회 초년생이다. 군과 관련된 직종을 제외하고는 군 경력이 필요 없다는 말과 같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상대는 이미 우리보다 한참 앞에 서있다. 그런 상대를 무작정 따라잡으려고 덤비기 때문에 번번이 넘어지게 된다. 이는 제대군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환경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당신들의 숙제이다. 숙제는 급하게 할수록 결과물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두 경험해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당장 전역을 앞두고 있지 않다고 해도 천천히 시작하기를 바란다. 앞으로 연재될 글을 읽고 전역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를 바라며, 전역 이후에도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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